방산수출의 그늘, 수출절충교역 이행에 정부 차원의 관심 필요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제도개선 효과와 함께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대우조선해양, 노르웨이에 군수지원함 수출했으나 절충교역 이행 10% 수준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우리나라 방산수출에 청신호가 켜졌다. 지난해 약 72.5억 달러의 수출 실적을 이뤄낸 한국 방위산업은 올해 초 ‘천궁Ⅱ’ 아랍에미리트(UAE) 4조원 계약을 시작으로 한화디펜스의 ‘레드백’(호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T-50(동남아·중남미 등), 현대로템의 K2전차(노르웨이·폴란드) 등 약 150억 달러에 육박하는 수출을 달성해 세계 5위의 방산수출국이 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있다.
게다가 지난 21일 개최된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국방상호조달협정에 대한 논의 개시를 포함해 국방 부문 공급망, 공동개발, 제조와 같은 분야에서 파트너십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드디어 방산 분야의 FTA로 불리는 국방상호조달협정 체결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세계 최대 방산시장인 미국으로 방산수출 기회가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방산수출이 성사되면 이행 의무가 부과되는 ‘수출절충교역’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수출절충교역이란 외국에 무기 또는 장비 등을 수출할 때 구매하는 계약 상대방에게 일정한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교역이다. 수출절충교역으로 요구하는 사항이 매우 다양한데다, 수출 금액에 상응하는 수준을 요구하는 국가도 있어 이행에 어려움이 많다. 일반적으로 수출절충교역 계약이 먼저 이뤄져야 본 사업 계약이 체결되면서 수출이 성사된다.
이런 구조임에도 모든 관심은 수출 성사에만 쏠리고 이로 인해 발생되는 의무인 수출절충교역 이행 여부에 대해서는 해당업체와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 절충교역과 이외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게다가 절충교역 이행은 통상 10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이행 과정에 변화도 생기고 관리하는 사람들 또한 수차례 바뀌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현재 수출절충교역 이행 과정에서 드러난 대표적 문제 사례는 대우조선해양의 군수지원함 수출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13년 노르웨이에 2.3억 달러 규모의 군수지원함을 수출했고, 이에 따라 부과된 수출절충교역은 2023년까지 이행을 완료하도록 계획돼 있다. 노르웨이의 절충교역 비율은 본 사업 계약금액의 100%인데, 현재 10% 정도만 이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 만기 도래하는 내년까지 절충교역 이행 못하면 200억원 넘는 페널티 부과
노르웨이는 대부분 자국의 국방관련 부품 수출을 요구해 함정 분야에 한정된 대우조선해양으로선 절충교역 이행 만기가 도래하는 내년까지 실질적인 이행이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만일 만기일까지 대우조선해양이 이행을 완료하지 못하면 미이행 금액(계약금액의 약 90%)의 10%에 해당하는 현금이 페널티로 부과된다. 즉 최소 200억원 이상을 노르웨이 측에 지불해야 한다.
방산수출은 경쟁이 매우 치열해 수출 마진이 5%를 넘기기 힘든데 수출 마진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페널티로 물게 되는 상황이 곧 현실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대우조선해양 외에는 절충교역 이행 여부에 신경을 쓰는 곳은 거의 없다. 방사청 절충교역과가 업무를 맡고 있지만 이행 실적 확인 수준이며 자체적인 해법 마련에는 역부족이다.
이렇게 수출절충교역 이행에 문제가 생기면 수출 성사에 따른 경제적 성과의 의미가 크게 퇴색된다. 나아가 무기구매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수출절충교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국가로 인식돼 국가 간 우호관계는 물론 향후 방산수출 추진에도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 노르웨이, 한국·미국과 3자 가치상계(SWAP) 제안했으나 방사청 미온적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노르웨이가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업체와의 3자 간 가치상계(SWAP)를 대안으로 수차례 제시했다”고 말했다. 즉 노르웨이(콩스버그)가 미국에 F-35 전투기 미사일시스템 수출로 인해 이행할 절충교역 가치와 미국(레이시온)의 한국 수출에 대한 절충교역 가치, 그리고 한국(대우조선해양)의 노르웨이 수출에 대한 절충교역 가치를 3자 합의를 통해 해결하자는 제안이다.
이와 관련, 이미 방위산업발전법(제16조)과 절충교역지침(제45조)에는 방사청이 수출업체의 절충교역 의무 이행을 위해 ‘국가 또는 업체 간의 상호 의무 이행의 가치상계 및 감면 등을 통한 지원’ 조치를 하도록 명시돼 있다. 하지만 방사청은 일부 업체의 형평성 문제 제기, 3자 SWAP 기준 마련 애로, 중소기업 위주 수출 지원, 특정업체 SWAP 지원 시 감사 가능성 등의 이유로 3자 간 SWAP 방식 해결에 미온적인 실정이다.
한편, 정부는 노르웨이에 K2전차를 수출하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 2월 노르웨이를 방문한 서욱 국방부장관은 노르웨이 주력전차 사업의 동계 시험평가가 진행 중인 레나 기지를 직접 방문해 K2전차 사격시험을 참관했다. 이때 서욱 장관과 동행한 강은호 방사청장의 제안으로 양국 간 방산군수공동위원회가 지난 2일 서울에서 조기 개최됐다.
당시 다양한 협력방안들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고, 양국 간 국방연구개발 양해각서 서명식도 있었다. 또 한국방위산업진흥회와 노르웨이 방산협회가 주관한 방산협력 세미나 및 업체 상담회도 열렸다. 하지만 이런 협력 분위기가 이어져도 앞서 이뤄진 방산수출에서 절충교역 이행에 상당한 문제가 생기면 한국정부의 절충교역 이행 역량에 의구심을 갖게 돼 결과적으로 정부가 원하는 K2전차 수출 추진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
■ 전문가들, 범정부 차원의 다양한 해결노력 주문하며 관심 촉구 강조
절충교역 전문가인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출절충교역 이행 문제는 대우조선해양뿐만 아니라 국내 방산 대기업들 상당수가 겪는 문제일 것”이라면서 “방사청 절충교역심의회에서 해소 노력을 강화하되, 범정부 협력이 필요하면 윤석열 정부에서 신설되는 국가안보실 내 ‘방위산업발전범정부협의회‘에 의제로 상정해 해결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절충교역 분야를 연구해온 유형곤 국방기술학회 정책연구센터장은 “정부가 국가별 맞춤형 수출전략을 수립하고 있는데 여기에 국가별 절충교역 요구사항도 분석하여 수출절충교역 이행전략을 추가로 수립해야 한다”면서 “현재 단절돼 있는 수입절충교역 제도와 수출절충교역 지원 제도를 연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년간 방사청 절충교역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인 심상렬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장 또한 “수입절충교역에서 사전가치축적 제도 등을 통해 해외 방산업체와의 기술이전, 부품제작 수출 등이 촉진된 것처럼 방산수출에 따른 수출절충교역 이행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강력한 정책적 의지를 갖고 SWAP 등 새로운 제도의 구체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방산수출 성사에만 관심을 쏟지 말고 수출 계약금액의 100%까지 의무가 부과되는 수출절충교역 내용도 이행 가능한지 사전에 면밀히 살펴야 하며, 이행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범정부 차원에서 해결 방안을 강구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수출 증가에 따라 늘어나는 수출절충교역 이행이 더 이상 수출업체만 고민하는 사안으로 방치되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