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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 이슈 진단 (68)

지체상금 해결하려면 방사청의 ‘수정계약 기피 관행’부터 바로 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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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2.04.25 13:58 ㅣ 수정 : 2022.04.25 20:55

최근 10년(2011~20)간 방산업체 부과된 지체상금 규모 1조 1458억원
방사청 지체상금심의위 결정 불복하고 소송 제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제도개선 효과와 함께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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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9일부터 21일까지 서울공항에서 개최된 ‘ADEX 2021’에서 사단 무인기, 수직이착륙 무인기, 저피탐 무인기, 중고도 무인기 등 다양한 제품을 전시하고 있는 대한항공 부스의 모습. [사진=대한항공]  

 

부정당 제재 876건 중 473건 업체 귀책사유 없고 121건 소송 진행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대한항공은 현재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과 P-3C 성능개량사업, 사단무인기 양산사업에 대한 지체상금 소송을 진행 중이다. P-3C 사업은 2013~19년간 총 사업비 4400억원에 대한 지체상금 1000억원 가운데 면제원 제출로 경감된 390억원을 제외한 679억원에 대한 소송이고, 사단무인기 사업은 2015~19년간 총 사업비 2480억원에 대한 지체상금 2070억원에 대한 소송이다.

 

지체상금이란 국가와 계약을 체결한 상대방이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 이행을 지체하는 경우 국가에서 부과하는 손해배상금 성격의 금액이다. 그동안 방사청은 한국방위산업진흥회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 2018년에는 초도양산까지 계약금액의 10%를 지체상금 상한으로 적용했고, 지난해에는 협력업체의 귀책사유로 지체가 발생한 경우 체계업체는 계약금액 전체가 아니라 협력업체의 계약금액에 대한 지체상금만 납부하도록 제도를 보완했다. 

    

하지만 국회 국방위원회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10월 받은 방사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2011~20)간 업체에 10억원 이상 부과된 지체상금은 총 65건으로 1조 1458억원 규모에 이른다. 앞서 언급한 P-3C 및 사단무인기 외에 K-2전차 1058억원, 3천톤급 잠수함 958억원, 현궁 160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이미 상당수 연구개발사업과 양산사업이 지체상금 소송 중이며, 이 중 감액이 이뤄진 것은 1832억원(16%)에 불과하다. 

 

또한 방사청은 같은 자료에서 최근 9년(2012~2020)간 지체상금 결정에 따른 부정당업체 제재가 876건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담합, 허위자료 제출, 뇌물 공여 등 업체 귀책사유가 아닌 정부정책 변경, 도면 상이, 관급장비 지연 등 단순 계약 불이행이 473건(54%)이나 된다. 이런 연유로 방산업체가 방사청의 지체상금 결정에 불복함으로써 진행되는 소송만 121건(13.8%)을 차지한다.  

 

지연에 따른 수정계약 요구해도 IPT팀은 사업 종료 후 처리하길 선호 

 

대다수 방산업체 관계자들은 “최저입찰제 등에 따른 저가 수주로 최근 4년(2017~2020)간 영업이익률이 0.5~3.8% 수준에 머물러 수익성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라면서 “이런 상태에서 부과된 지체상금을 액면 그대로 납부할 경우 일부 대기업 외에는 대부분 폐업을 심각히 고민할 정도로 경영상 위기를 겪는 기업이 대다수”라고 말한다. 

  

이들은 지체상금이 발생하는 이유가 사업을 관리하는 방사청 통합사업관리팀(IPT)의 ‘수정계약 기피 관행’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다양한 불확실성을 내포한 연구개발 사업은 천재지변(불가항력) 뿐만 아니라 정부의 갑작스런 정책 변경, 시험평가 지연, 형상변경 요구, 제공도면 상이, 해외도입(관급) 장비의 공급 지연, 협력업체 과실의 체계업체 전가 등으로 개발 지연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무기개발 또는 양산사업을 수행하는 업체가 방사청 IPT에 수정 계약을 요구하지만, IPT는 지연 사유를 대부분 인정하더라도 계약 수정에 따른 행정적 불편, 상부 보고 시 질책, 감사 대상 우려 등 여러 이유로 사업이 종료된 이후 처리하기를 선호한다”고 이들은 설명한다. ‘을’의 입장인 업체는 이런 ‘갑’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업체의 사업 지연 이유 제기 요구에도 IPT에 불리한 내용은 공문이나 사업관리회의 회의록 등에서 통상 제외된다고 한다. 하지만 “사업이 종료될 때쯤 IPT 담당자는 대부분 교체되고 공문, 회의록 등에는 사업 지연에 대한 근거가 거의 없어 통상 지연 기간에 따라 지체상금을 결정한 후 업체에 통보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한다”고 이들은 하소연했다.

 

지체상금 확정되면 각종 불이익 받아…“매년 수정계약 의무화해야”

 

이 경우 업체가 방사청의 지체상금 결정에 불복하고 이에 대한 면제원을 제출하면, 방사청 지체상금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하지만 100% 인정 가능한 부분만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이다. 방사청이 업체 애로의 소통 창구로 운영 중인 ‘옴부즈만 제도’ 또한 방사청에 우호적인 인사들이 대부분 임명돼 형식적인 대응에 그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결국 업체는 지체상금심의위원회 결정에 불복하고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관행’으로 굳어지고 있다. 그 결과 2015년 이후 지체상금을 부과 받지 않고 군에 무기체계가 인도된 경우는 거의 드문 실정이라고 한다. 업체 관계자들은 “소송으로 이어지면 수년간 법정 다툼에 따른 소송비용 부담과 행정적 준비는 물론 승소해도 지연에 따른 인건비는 지급하지 않는 등 상당한 불이익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지체상금 부과가 법원으로부터 최종 확정되면, 해당 계약건의 지체로 인한 계약 불이행에 따라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이 부과되므로 신규 입찰 금지 등 각종 불이익을 받게 된다. 특히 지체상금이 부과되는 경우에 무기체계 사업자 선정 간 제안서 평가 시 정성평가 부분에서 감점 요소로 적용되는 등 업체 신인도 평가에 악영향을 미쳐 업체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이다. 따라서 문제 해결을 위한 근원적인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먼저 방사청 IPT의 ‘수정계약 기피 관행’을 없애야 한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획득 사업의 리스크 관리 제도를 본격 시행하고 그 일환으로 매년 수정계약을 의무화하는 등 방위사업관리규정을 개정해 공식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F-35 전투기 사업에서 소량초도양산(LRIP)에 따른 수정계약을 매년 하듯이 우리도 기술 발전에 맞춰 진화적 개발을 확대하고 이를 반영한 연도별 수정 계약을 일반화하자는 얘기다. 

 

국가정책사업 지정, 지체상금 상한 조정, 방위사업계약법 제정 등 필요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정책연구센터장은 “지체상금의 빈번한 발생은 수요자인 군과 사업관리자인 방사청, 사업 수행자인 방산업체, 그리고 일반국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손해를 보는 구조”라면서 “신규 무기체계 획득사업이나 개발 위험도가 높은 사업은 기본적으로 국가정책 사업으로 지정해서 업체가 사업 지연에 따른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빈 전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현재 지체상금은 연구개발·초도양산에 최대 10%를, 후속양산에 30%를 부과하는데, 후속양산도 기술발전 추세에 따라 다양한 성능개량, 성능개선, 형상변경 소요가 있어 지체상금 상한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면서 “최대 10%로 한정한 해외 구매와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연구개발은 관련시설 및 인력을 유지할 경우 면제하거나 5% 이하로 조정하고 후속양산도 최대 10%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계약 전문가인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현재 총사업비관리규정에 총 사업비의 20% 초과 시 사업타당성 재검토 등 제한 조건이 존재하여 수정계약이 제한되는 상황”이라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면서 업체의 부담을 줄이려면 3심제인 소송보다는 단심제인 중재로 다루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는 한편, 궁극적으로 방위사업의 다양한 특성을 고려한 ‘방위사업계약법(가칭)’ 제정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전문가들이 지체상금 해결과 관련한 다양한 해법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방사청 출신 공무원들 사이에선 일부 업체들의 지체상금은 사업 진행 간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럼에도 방사청 IPT의 ‘수정계약 기피 관행’이 대다수 지체상금 발생의 원인으로 식별된 만큼, 방위산업 육성을 근본적으로 저해하는 이 문제만큼은 윤석열 정부에서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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