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상호국방조달협정(RDP-MOU) 체결 속도조절론 대두, 상호주의 함정 피해야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제도개선 효과와 함께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미국산우선구매법 대응 위해 추진하되, 정부·업계 공감대 형성 중요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달 25일 한국방위산업학회는 한미 방산동맹을 주제로 방산업계 및 전문가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정책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한미 상호국방조달협정(RDP-MOU) 체결의 영향 예측과 대응방안’을 발제한 김만기 KAIST 교수는 아직 국내에는 생소한 RDP-MOU를 소개하면서 윤석열 정부 출범에 맞춰 한미 간 시급히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RDP(Reciprocal Defence Procurement)-MOU는 미 국방부가 동맹국 및 우방국과 체결하는 양해각서로 체결 상호국 간 군 장비의 표준화, 합리성, 상호운용성을 제고하여 군사대비태세를 강화하는데 목적이 있다. 미국은 이미 27개국과 RDP-MOU를 체결했으며, 체결국에게는 미국산우선구매법(Buy American Act, BAA) 면제, 관세 면제 등 미국산 제품과 동일한 혜택이 부여된다.
BAA는 제조품의 경우 미국 내에서 제조돼야 하고, 미국 구성품의 원가가 전체 구성품의 55%를 넘어야 미국산으로 인정한다. 그런데 이 비율은 2024년에 65%, 2029년에는 75%까지 상향된다. 김 교수는 “현재 미 연방조달규정(FAR)에서만 이 비율을 적용하나, 조만간 미 국방조달규정(DFARS)에도 적용될 것”이라며 “한국도 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11조원에 불과한 대미수출에 비해 425조원 규모인 미 국방조달시장이 개방되면 우리가 어떤 부분에서 경쟁력이 있을지 판단해야 한다”면서 “RDP-MOU 체결은 안보전략 차원과 국내 방위산업 보호 및 성장 그리고 대미수출 활성화 전략과 기반 여부 등을 고려한 검토가 선행돼야 하며, 공감대 형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RDP-MOU 체결 추진 긍정적이나 업계 일각 부정적 의견도 제기돼
이어 ‘한미 방산동맹과 글로벌 공급망 확대 전략’을 발제한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도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미국 방산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면서 “양국 간 공동개발·생산·마케팅을 포함한 3세대 방산협력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간 방산협력 틀이 미약하고 공동소요 발굴 시스템이 없는데다 방산협력을 주도할 조직과 전문 인력이 미흡하며 중소기업의 낮은 경쟁력 등이 한계”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남명렬 방위사업청 국제협력관실 총괄담당관은 RDP-MOU 체결에 강한 의지를 보이며 모두가 선구자적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고, 채우석 방산학회장도 “체계적 준비를 위해 학회 내에 '한미방산동맹연구회'를 조직해 대응할 것“이라며 힘을 보탰다. 이처럼 세미나 참석자들은 RDP-MOU 체결 추진에 긍정적인 입장이 다수였다.
게다가 최근 한국의 방산수출이 급격히 증가하자 이 여세를 몰아 미국 시장 진출을 노리는 일부 방산 대기업들도 한미동맹의 복원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RDP-MOU 체결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방산 중소기업일수록 RDP-MOU가 무엇이고 체결 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몰라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송학 전 방사청 계약관리본부장은 “미국과 RDP-MOU를 체결한 27개국의 내용이 모두 다르다”며 “세부조항을 잘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업계 사정에 해박한 이준곤 건국대 산업대학원 겸임교수도 “그동안 미국 수출의 전형적 모델은 절충교역을 통한 부품 납품이었고 최근 산업협력 쿼터제 및 컨소시엄 같은 모델로 확장 중인데, RDP-MOU 체결이 어떤 부가적 가치를 창출할지 실질적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언급했다.
■ “기업 경쟁력 토대로 득실 따져야”…“미국업체의 국내시장 진입 원활해져”
모 방산업체의 임원이기도 한 이 교수는 “궁극적으로 가야 할 방향은 부품 생산이 아니라 국제 공동개발을 통한 새로운 시장 개척이고, 이를 위해선 우리 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관건”이라며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냉정하게 득실을 평가해 차분히 준비해야지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방산업계 일각에서는 RDP-MOU 체결이 아직 시기상조란 분위기도 감지된다.
일부 방산 전문가들 또한 최근 RDP-MOU 체결의 필요성과 기대효과만 부각되는 움직임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 방위산업에 어떤 부작용이 발생될 수 있는지 충분한 검토가 이뤄진 후에 신중히 추진할 것을 주문한다.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정책연구센터장은 “RDP-MOU를 체결해도 미국 및 이미 체결한 27개국과 대등하게 경쟁할 요건을 갖춘 것일 뿐 미국 시장 진입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RDP-MOU가 체결되면 미국업체도 국내 방산시장에 원활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이 원칙이어서 오히려 국내 무기체계 획득제도 및 방위산업 구조 재편을 초래할 수 있다”며 “우리 방산주권이 훼손될 수도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체결 여부는 방산수출 부서가 아닌 방위산업 육성 담당 부서와 사업관리 부서가 주관하여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한미 간 RDP-MOU 체결은 앞으로 우리 방위산업이 지향할 방향은 분명하지만 기대효과와 우려사항이 동시에 존재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급하게 서둘러서는 안 된다. 27개국의 체결 내용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직시하고 이들의 사례를 면밀히 분석한 후 우리 제도와 방산업계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