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이 해고’ 이스타항공 조종사, 재운항과 함께 하늘길 오를까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몰고 온 한파는 항공업계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하늘길은 굳게 봉쇄됐고 날갯짓을 못하는 항공기들은 공항에 덩그러니 늘어섰다.
조종사들은 이 같은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때아닌 바이러스의 등장은 공무원 못지않은 ‘철밥통’으로 알려진 항공기 조종사들 마저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코로나19 이전부터 경영실적에 부진을 겪던 저비용항공사(LCC) 이스타항공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항공 여객과 화물 수요가 줄어들어 심각한 경영난에 부딪혔다. 한줄기 희망이던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M&A)도 무산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급여는 삭감은 물론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이어졌다.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이스타항공은 2020년 3월 국제선과 국내선 운항을 모두 중단하고 10월에는 항공기 조종사를 포함한 임직원 605명을 정리해고했다. 같은 해 상반기 계약해지 등을 통해 정리해고된 570여명까지 포함하면 1600여명의 노동자 중 1200여명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해고 조종사들은 부당해고 구제신청 등 복직을 위한 기약 없는 싸움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지금 하늘길 재도약을 꿈꾸는 해고 조종사들의 땅위 복직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런데 최근 이스타항공 재운항에 관한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져 이들의 복직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에 올랐다. 과연 이스타항공이 경영 정상화가 이뤄지면 구조조정 대상자들을 재고용하겠다고 약속을 지킬까.
■ “우리는 망망대해에 버려졌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조종사는 늘 인력이 부족한 직군 중 하나다. 이에 따라 항공사간 더 훌륭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경쟁도 치열했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이직의 문이 좁지 않은 조종사들은 이스타항공 존폐위기에도 지금과 같은 막막한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다.
정리해고 후 2년여가 지난 지금 김현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강준 을지대학교 중독재활복지과 교수·이혁구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등으로 구성된 연구팀이 이스타항공 해고 조종사들의 삶을 추적했다. 이번 조사 결과 누구보다 강건했던 이들 해고 조종사들은 하루하루 먹고사는 걱정을 해야 하는 취약한 존재가 돼 있었다.
#. 전투기와 대형항공사·저비용항공사 등 민항기 비행경력 25년 이상의 베테랑 조종사인 A씨는 이스타항공 노조의 간부를 수행했다. 때문에 사측 해고 통보 당시 가장 먼저 대상자에 오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체불된 임금, 복귀를 장담할 수 없는 직장, 가족들, 대출로 인한 두려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는 자식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 억울하게 빼앗긴 자리를 되찾기 위해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매일 땅 위에서 투쟁하고 법원에 출입했고 평생 만나지도 못할 경찰·정보관· 기자들을 만났다. 하늘만 날던 이전의 삶과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 다른 업종에 종사하며 조종사를 준비해 꿈을 이룬 B씨는 해고 후 경제적인 어려움을 크게 느꼈다. 조종사가 되기 윈한 교육비를 장기간 모은 저축과 은행대출금으로 충당했는데 해고자가 되니 대출 연장이 불가해지며 원금 상환 독촉에 시달려야 했다. 안정과 정년이 보장된다고 생각했던 조종사는 돈을 모을 계획마저 세울 수 없는 직업으로 전락한 느낌이었다. 실업수당 수급마저 끝난 후 그는 대출금을 상환하기 위해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야 했다. 그는 항공기 대신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언제가 될지 모르는 복귀에 대비해 동료들과 함께 비행 공부를 하고 있다.
#. 전투기와 민항기 비행경력 10년 이상 조종사인 C씨는 실업급여 수급기간이 끝난 이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어린 두자녀와 배우자 등 가족의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그는 이것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가 어려워 타 업종 이직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이력이라고는 비행자격증과 비행경력 뿐인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고급 자격증을 보유하고도 일할 곳이 없다는 현실은 회의감을 안겼다. 가장으로서 역할을 못한다는 압박은 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나쁜 생각마저 들게 했다.
■ 중노위서도 외면...이스타항공 재운항으로 부활할까
2020년 10월 이스타항공으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은 605명 중 42명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서울지노위는 지난해 5월 이스타항공이 정부의 특별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지 않는 등 해고를 막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해고는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불복한 이스타항공이 재심을 신청했는데 같은 해 9월 중앙노동위원회는 이스타항공의 정리해고가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판단해 상황을 반전시켰다. 육아휴직자와 퇴사자 등 7명을 제외한 35명의 해고는 모두 정당하다 인정한 것이다.
현재 해고 노동자들은 중노위 결정에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코로나19 종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중노위 판정까지 뒤집히며 해고 노동자들은 앞날은 더욱 아득해졌다.
그런데 최근 국토교통부가 예비평가에서 이스타항공의 국제 항공운수사업 운항증명(AOC) 발급을 가인가했다.
앞서 이스타항공은 운항 중단 이후 ㈜성정과의 기업 인수합병(M&A)을 체결했고 지난해 12월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며 국토부에 AOC 발급을 요청했다. 이에 국토부는 이스타항공이 제출한 승무원 등 종사자 업무·훈련 교범이 적합하다고 판단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최종 인가까지 서류심사와 현장심사 등의 평가가 남아있다. 다만 이스타항공에서 AOC 발급까지 대략 3개월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해 오는 3월부터 국내선 운항 재개를 목표로 삼고 있는 만큼 본격적인 준비 단계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이스타항공은 총 3대의 여객기를 보유 중이며 상반기까지 6대, 연말까지 총 10대로 확대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스타항공 관계자에 따르면 6대를 운영할 수 있을 만큼 인력만 남아 있어 만일 10대까지 확대된다면 추가 인력 확보가 필요하다.
이처럼 재운항이 가시화되며 해고 노동자들의 순차적 복직도 점쳐지고 있다.
실제 이스타항공은 대량 정리해고 당시 국제선 운항을 재개하는 시점에 맞춰 인력을 재고용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스타항공을 이수하는 형남순 성정 회장도 해고자 복직을 언급한 바 있다. 근로기준법 제25조에도 ‘사용자는 3년 내 해고자가 발생한 업무의 인력 채용 시 해고자를 우선 재고용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성정과 이스타항공 투자계약서에 ‘이스타항공 직원의 고용을 5년간 승계한다’는 내용은 포함됐지만 해고자 복직에 별도로 명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해고 당사자들은 큰 희망을 품지 않는 모습이다.
이스타항공은 구체적인 복직 계획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경영이 정상화 되면 기존 재직자들을 복직시키겠다는 뜻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항공기 1대당 필요한 필수 인력이 정해져 있다. 해고 당시 재운항을 고려해 6대를 운영할 정도 인력을 남겨뒀던 상황”이라며 “항공기가 늘어나고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면 재직했던 분들이 우선 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존에 계시던 분들을 모셔오는 게 회사 운영에도 가장 효율적일 거라고 생각한다”며 “이스타항공이 할 수 있는 최선은 항공기를 띄우고 어떻게든 새롭게 들여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