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 편집인 입력 : 2021.07.22 07:37 ㅣ 수정 : 2021.07.26 16:12
'사면' 말고 '가석방'하면 삼성전자 경영정상화 제약 많아, 인텔과 TSMC만 손뼉을 칠 일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광복절 가석방’이 검토되고 있는 것 같다. 법무부는 최근 서울구치소로부터 이 부회장을 포함시킨 가석방 예비명단을 보고받은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가석방은 대단히 행정적인 절차이다. 일선 구치소·교도소가 예비심사를 통해 추린 명단을 법무부에 올리면 9명으로 구성된 가석방심사위원회가 최종 심사를 진행하고 표결을 통해 가석방 대상자를 진행하게 된다. 위원장은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맡게 된다. 심사위는 표결을 통해 가석방 대상자를 결정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최종 허가하면 가석방된다.
■ 가석방은 대통령과 무관한 실무적 절차?...법무부 가석방 심사기준 낮춰 이 부회장도 예비명단 오른 듯
형식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사법적 절차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부회장을 염두에 둔듯한 사전조치가 발견된다. 형법상 가석방은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채운 수감자를 대상으로 삼도록 했지만, 그간 실무적으로는 형기의 80% 이상을 채운 수형자에게만 가석방을 허가해왔다. 그런데 법무부가 8월부터 가석방 심사 기준을 복역률 60%로 낮췄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18일 ‘국정농단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뇌물 수수’ 등 혐의로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재수감됐다. 이에 앞서 지난 2017년 8월 24일 열린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구속됐으나 2018년 2월 5일 열린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과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354일만에 풀려났다.
따라서 이 부회장의 만기출소일은 2022년 7월 29일이다. 오는 30일이면 형기의 60%를 채우게 된다. 8월 열리는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심사 기준을 정확하게 충족시킨다.
■ 청와대, "가석방은 법무부에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진행"...문 대통령과 무관함 강조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반응도 ‘가석방 결정’ 쪽으로 해석된다. 누구도 “그럴 일은 없다”고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는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1일 출입기자들과의 서면 질의응답에서 “이 부회장의 가석방 문제와 관련해 고려하는 부분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가석방은 법무부에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원론적인 답변이지만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가석방은 특별사면과 달리 최고통치권자의 의중이 작용하지 않는 사법절차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특혜 논란'을 사전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가석방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비슷한 태도이다. 21일 출근길에 출입기자들의 관련 질문을 받고 “제가 언급하기는 적절하지 않다”면서 “특정 인물의 가석방 여부는 절차와 시스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박 장관이 강조한 절차와 시스템에 따르면, 이 부회장의 광복절 가석방은 8월 열리는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의제로 오르는 게 순리이다.
여당내 기류는 더 적극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20일 이재명 경기도 지사와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 부회장 신병과 관련해 “법무부 지침상 8월이면 형기의 60%를 마쳐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 “반도체 산업의 요구, 국민 정서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본다”고 언급, 가석방 가능성을 시사했다.
가장 유력한 여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 지사도 “재벌이라고 해서 특혜도 안되지만, 가석방이라는 제도에서 불이익을 줄 필요도 없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대통령의 특별사면은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재벌에 대한 특혜라는 것이다. 하지만 가석방이라는 사법적 절차와 관련해 재벌이라고 배제되는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논리인 셈이다.
■ 손발을 묶고 풀어 주는 가석방, 정치적 논란을 줄이는 '최선책'?
그렇다면 이 부회장 가석방이 실현된다면 좋은 일일까. 그렇지 않다. 문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검토하는 게 맞다. 이를 가로막는 것은 ‘치명적 인식오류’이다. 특별사면 대신에 가석방을 선택하는 게 정치적 특혜논란을 줄이는 '최선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석방은 ‘삼성전자의 경영정상화’ 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석방은 형을 면제받지 않은 채 구금 상태에서만 풀어주는 사법적 조치이다.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향후 5년 동안 취업제한을 적용받는다. 뿐만 아니라 보호관찰과 거주지 제한, 해외 출국 제한 등과 같은 제약조건을 따라야 한다. 이 부회장이 가석방 되면 수감생활은 끝내게 되지만, 삼성전자의 경영에 공식 복귀할 수 없다. 해외방문도 어렵다. 손발을 묶은 채 풀어주는 것이다.
이에 비해 대통령이 국무회의 승인 절차를 거쳐 명령할 수 있는 특별사면은 남은 형의 집행이 면제된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총수로 복귀해 시스템반도체, 인공지능(AI), 전장사업 등과 같은 핵심사업 투자를 주도할 수 있다.
때문에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가 청와대 측에 건의한 것은 ‘가석방’이 아니라 ‘특별사면’이었다.
언론사 조차도 이 같은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가석방과 특별사면을 묶어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서울신문도 지난 18일 현대리서치에 의뢰해 여론조사를 실시하면서 ‘이 부회장의 가석방 또는 사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찬성이 68.8%로 반대 27.0%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이 신문은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코로나19로 악화된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 부회장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가석방이 되면 이 부회장이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한 기회를 갖기 어렵다. 취업제한 조치에 걸리기 때문이다.
정부여당도 글로벌 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경영정상화를 도와준다는 취지에서 이 부회장의 사면 또는 가석방을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석방은 그런 효과가 없다.
■ 전직 대통령 사면론 제기했던 이낙연의 '악몽'은 재연되지 않아...세분화된 국민 인식 파악해야
문 대통령은 지지기반의 이탈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초에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제기했다가 지지율 폭락을 맛보았던 ‘악몽’이 재연될 것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사면에 관한 국민적 인식은 정치인들의 짐작과 달리 세분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 박근혜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의 순으로 사면에 대한 찬성비율이 높다. 찬성의 이유도 다르다.
박 전 대통령 사면 여론은 ‘연민’ 혹은 ‘재평가’를 기반으로 한다. 그 바탕에는 공정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내로남불’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국민적 인식이 깔려있다. 문 대통령이나 여당 인사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다.
반면에 이 부회장 사면여론은 철저하게 이해타산적인 태도의 결과물이다. 즉 ‘경제 살리기’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다. 다수 국민들은 “이재용이 사면돼야 경제가 성장해 나의 이득이 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자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글로벌 기업 간의 패권 경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국내총생산(GDP)의 25% 안팎을 차지하는 삼성그룹이 그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하는게 국가의 책무라고 보는 것이다.
특히 각각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의 최강자인 인텔과 TSMC는 미국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투자를 확대하며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삼성전자가 인텔과 TSMC와 맞서서 제대로 한 판 승부를 벌이려면 총수인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다수 국민들이 공유하고 있다.
때문에 문 대통령의 철벽 지지층으로 알려진 40대에서도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한 찬성여론이 절반을 넘는다.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에 관한한, 이낙연 전 대표가 겪었던 악몽’의 재연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더욱이 내년 대선을 앞둔 정치셈법보다는 삼성전자의 경영정상화라는 국가경제적 대의명분을 우선시하는 게 최고통치권자의 도리이다. 사면이 아니라 가석방을 한다면 인텔과 TSMC만 손뼉을 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