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의 심호흡] 문 대통령이 ‘이재용 석탄일 사면’을 검토해야 하는 까닭

이태희 편집인 입력 : 2021.05.12 10:50 ㅣ 수정 : 2021.05.12 15:04

미중 반도체 전쟁이 사실이라면, 삼성전자 이끌 장수를 풀어줘야/여론은 충분히 성숙, 문 대통령은 친문세력 아닌 한국인의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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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최근 여권 고위인사를 만난 자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에 대한 견해를 물은 적이 있다. 그는 국민여론을 전제조건으로 꼽았다. 기자가 “국민여론은 이미 70% 정도가 찬성이다. 특히 여당이 환심을 사야할 20대 찬성비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만 끄덕이고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0일 이재용 사면에 대해 처음으로 검토하겠다는 의중을 시사했다. 단 전제조건으로 여권고위인사처럼 ‘국민 다수 여론’을 꼽았다. 그동안 재계와 종교계가 이 부회장 사면을 건의한 데 대해 청와대가 “검토한 바도 없고 그럴 계획도 없다”고 싹을 잘라버린 것에서 상당한 변화이다. 

 

문 대통령도 이 부회장 사면여론이 과반을 훌쩍 넘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여론을 운운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다수 여론을 존중한다면 사면을 단행해도 충분한 상황이다. 

 

■ 문 대통령의 고민=이재용 사면, 찬성 국민여론 70%인데 친문세력 기류는 달라

 

이유는 명료하다. 친문세력으로 불리는 여당 지지세력의 견해가 다수 국민여론과 다르기 때문이다. 소위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이 부회장 사면이 법 집행의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라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부회장 사면을 재벌개혁이라는 대명제와 정면충돌하는 ‘부정의(不正義)'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부회장 사면은 친문세력의 균열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문 대통령이나 민주당 지지율을 일시적으로 올린다고 해도 내년 대선 승리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변수이다. 재벌개혁이라는 친문세력의 명분에 혼선을 초래하는 탓이다. 

 

이 같은 표계산이 이 부회장 사면을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이다. 차기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이명박, 박근혜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제기했다가 지지율 폭락을 겪은 게 일종의 ‘학습효과’로 작용하는 딜레마 상황이다. 

 

■ 친문 강경파의 사면 반대론은 ‘침묵의 나선이론’ 작동시켜 / 백신특사 파견하려던 문 대통령도 침묵?

 

더욱이 친문세력의 사면 반대론은 한국사회에 ‘침묵의 나선이론’을 작동시키고 있다. 헤게모니를 쥔 소수가 강하게 주장할 때 다수는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못한 채 침묵한다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이다. 인간은 ‘고립의 두려움’ 때문에 할 말을 못한다는 통찰이 담겨있다.  

 

이재용 사면론도 비슷하다. 문 대통령을 포함한 여권 인사들은 이 부회장 사면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중간 반도체 전쟁으로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하려면 이 부회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을 백신특사로 파견하려고 한 적도 있다. 이 부회장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국정농단사건 최종심에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기 직전이다. 그런데 사법부가 이 부회장을 감옥에 가두는 바람에 무산됐다. 정부여당 내에서도 “사법부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는 소리가 나왔다. 

 

미중 반도체 전쟁에서 발휘될 이 부회장의 역할이 백신전쟁 때보다 훨씬 막중하다는 사실을, 문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 이재용 없으면 삼성전자 더 잘 돌아가?...그렇다면 정부도 대통령 없어야 더 잘 돌아가

 

진보를 자처하는 일부 세력은 “이 부회장이 없으면 삼성전자가 더 잘 돌아간다”고 반박한다. 이 부회장이 구속됐을 때 삼성전자 주가는 더 올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궤변 중의 궤변이다. “대통령이 없어야 정부는 잘 돌아간다”는 말과 다름없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너무 커서 다수가 침묵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여권인사들도 침묵하는 다수 중의 일부이다. 강성 친문들이 그 뿌리인 문 대통령을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글로벌 반도체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삼성그룹으로부터 광고협찬을 더 받으려는 부패언론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프레임이 아니라 정녕 사실이라면, 이재용을 사면하는 게 맞다. 전쟁이 벌어지면 용맹한 장수를 풀어주는 게 맞다. 

 

그 시점도 빠를수록 좋다. 국민여론은 충분히 성숙된 채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갖고, 그 전날에 미 러먼도 상무부 장관은 삼성전자를 포함한 글로벌 ICT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화상회의를 갖고 반도체 투자를 또 다시 압박할 예정이다. 

 

한국측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그 대응전략을 짜야 한다. 옥중의 이재용이 그런 역할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미간 중대사를 앞둔 시점인 19일 석탄일에 사면된다면 한미간 반도체 기싸움에서 극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친문세력의 대통령이 아니라 한국인의 대통령이라는 점을 기억해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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