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극복해야 할 최우선 과제 중 하나는 갈수록 심화되는 수도권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 상공인, 자영업자 간의 격차 문제다. 균형발전을 위한 분권과 자치강화 등 거시적 해법은 실종됐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한 예산투입 등 정책수단도 효과가 없었다. 이런 가운데 주목되는 것이 지역에서 시도되고 있는 창조도시 혁명이다. 지난 20년 간 지역발전에 의미있는 성과를 꼽자면 서울 강북과 지역도시 골목상권, 제주 지역산업(화장품, IT) 강원 지역산업(커피, 서핑)이다. 그 주역은 창의적인 소상공인으로 자생적으로 지역의 문화와 특색을 살리고 개척해서 지역을 발전시켰다. 이제, 이들 ‘로컬 크리에이터(Local Creator)’가 지역의 미래이자 희망으로 부각되고 있다. 각각의 지역이 창조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육성과 활약이 필수적이다. 뉴스투데이는 2020년 연중 기획으로 지난 2015년 네이버가 만든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가 주도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혁명의 현장을 찾아 보도한다. <편집자 주>편집자>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우리나라에서 창조도시 육성에 가장 큰 애로사항은 크리에이터, 즉 인재의 부족이다. 특히 지역에서 활동하는 창의적인 소상공인, 즉 로컬 크리에이터의 양성과 재교육이 미흡한 실정이다.
도시문화와 골목산업을 창출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체계적인 육성만이 창조도시로 가는 길이다. 이것은 또한 농촌 등 지방의 급속한 노령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청년실업 등 일자리 문제 해결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강원도는 커피산업, 서핑산업, 유기농산업 등 전국에서 창조기반 지역산업의 입지가 가장 우수한 지역이다. 산업화에 부진한 덕분에 오히려 보호된 자연을 기반으로 삶의 질과 독립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인재의 유치에도 유리하다.
▶칠성조선소-속초 도시재생 복합 문화공간 최윤성 대표
칠성조선소는 배를 만드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훗날 속초의 부활이 이곳에서 시작됐다고 기록할 지 모른다. 속초라는 도시, 상생의 한 축이 칠성조선소에서 나오고 있다. 도시 옛 건물의 의미를 찾고 현대공간으로 성공적으로 재생한 속초에서는 보기 드문 도시혁신 사례다.
칠성조선소 최윤성 대표는 홍대 미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뒤 배 만드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미국 보트 디자인 학교에서 공부했다. 귀국 후 2014년에 와이크래프트보츠(YCRAFT BOATS)라는 레저 선박브랜드를 만들어서 칠성조선소 야외 공간에서 카누와 카약을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다.
▶할아버지 때부터 배 만들던 조선소, 5개의 문화공간으로
Y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 썼던 이름이다. 와이크래프트보츠는 'Y가 만드는 수제 보트‘라는 뜻이다. 같은 과 동기동창인 아내 백은정 씨와 이 일을 함께 하고 있다. 최 대표가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청년혁신가로 지정되면서 보트 투어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 경험을 계기로 이후 칠성조선소를 복합 문화공간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속초시 한복판, 교동에 있는 칠성조선소는 최 대표의 할아버지 때부터 어선이나 운반용 철선을 만들던 조선소였다. 조선소 건물을 포함한 배를 만들던 공장건물들은 칠성조선소 뮤지엄으로 변신했고, 가족이 살던 집은 카페-칠성조선소 살롱으로, 제재소가 있던 공터는 놀이조형물 플레이스케입(Playscape)으로, 탁 트인 야외공간은 주민과 방문객이 즐길 수 있는 5개의 문화공간이 되었다.
최윤성 대표가 와이크래프트보츠를 시작한 2014년부터 수상레저 시장은 어려워졌고, 2106년 무렵에는 소형 조선업까지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 만들던 카누 카약이 거의 팔리지 않아 칠성조선소는 지금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이제 배를 만드는 기술은 체험 및 투어프로그램으로 운용되고 있다.
처음부터 복합문화공간을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조선소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수익을 내기 위해 커피숍을 만들었다. 카페 매출은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커피와 디저트 중심으로 운영하지만 여유가 생기면 정통 화덕 피자도 만들 계획이다. 최 대표는 어릴적 이곳을 놀이터로 삼았는데 그 기억과 경험을 살려서 플레이스케입을 만들고 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었지만 이름은 여전히 칠성조선소라고 부른다. 평상시 손님은 대부분 관광객이다. 야외공간은 공연이나 페스티벌 등 문화행사에 쓰인다. 사람들이 와서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준비중이다.
▶동해안 중심으로 서핑 다이빙 등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활성화
칠성조선소라는 원래 업종에 맞게 서핑이나 다이빙 장비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다이빙과 서핑은 이제 국내에서도 매니아층이 형성돼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요즘엔 우드서핑 보드를 만드는 수업을 준비중이다. 서핑용 수트는 주로 네오프랜으로 만드는데 요즘은 국내에서, 특히 인근 양양쪽에서 많이들 만들고 있다고 한다.
최 대표는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우리 사회 또한 로컬로 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까지는 서양 문화를 선호해 왔지만 언젠가는 로컬 콘텐츠가 흥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요즘 속초에도 젊은 층들이 많이 이사를 오고 있는데 서핑을 좋아해서 온 사람들로 양양이 포화가 되니까 고성과 속초로 오고있다는 것.
최근 동해안을 중심으로 이같은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가 활성화되는 양상이다. 최 대표는 서핑과 다이빙을 비교할 때 다이빙이 규모는 크지만 라이프스타일로 까지 발전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다이빙이 취미 정도라면 서핑은 빌리지가 생기고 이를 뒷받침하는 의식주까지 따라붙는 양상이다. 서핑이 아무래도 젊은층들에게 더 패셔너블하다는 것이다.
▶속초 도심재생의 앵커시설 기대
최 대표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속초시내 로컬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극동연합’을 만들어 칠성조선소 주변 속초시 중심가의 탈바꿈을 꿈꾸고 있다. 이와관련 속초 산업의 중심이었던 상징적 건물 속초수협 건물의 재생이 핵심 이슈다. 50년 된 속초수협이 이사를 가면서 철거여부를 놓고 논쟁이 있었지만 지금은 허물지 않고 재생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칠성조선소는 앵커시설로 한 축이 되어 속초도심 재생의 시작지점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극동연합 멤버들이 각각의 ‘핫 플레이스’를 만들어 동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홍대 주변도 처음에는 클럽, 음식점 위주였지만 지금은 많은 산업들이 들어와 있다.
칠성조선소의 장기적인 계획은 레저보트 또는 피크닉보트를 만드는 기술을 공유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아직은 보트시장이 작고 중국제품에 밀리기 때문에 한국에서 제조 브랜드를 갖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보트제조 학교를 만드는 자본을 모으기 위해 칠성조선소 브랜드를 기반으로 모자 머그컵 연필 등 굿즈를 제작하고 있다.
<취재 및 자료협조="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