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 I]의 I는 Insight(통찰력)을 뜻합니다.
정부여당, 내년 총선 의식해 무심코 ‘전기료 인하’ 카드 꺼내들어
한전의 재무구조 악화 부각돼, 문 대통령의 ‘탈원전’ 타당성 다시 도마위에
한전, 산자부와 협의 없이 ‘원가공개’ 공언하며 ‘불편한 심기’ 표출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한국전력(이하 ‘한전’)이 올해 여름 전기료 인하를 위해 누진제 개편을 추진하면서 ‘탈원전 정책’의 타당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전기료 인하’는 정부여당이 내년 총선을 의식해 무심코 꺼내든 선심성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실현한 ‘탈원전 정책’을 논쟁의 도마위에 올려버리는 ‘나비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누진제 개편을 통해 가정의 전기세를 인하해줄 경우, 한전의 수익성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주장에 불을 붙였다.
물론 이런 주장은 일반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은 아니다. 한전 소액주주들의 목소리이다.
하지만 국민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탈원전 정책이 전기료 인하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면, 향후 언제든지 전 국민이 불이익을 감수하도록 만드는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전은 누진제 개편안을 둘러싼 공방과정에서 돌연 전기료 원가공개를 추진하겠는 입장을 밝혔다. 원가공개가 이루어질 경우 ‘탈원전’ 논란의 진실 중 일부분이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흑자행진을 거듭해온 우량기업인 한전이 공교롭게도 탈원전 정책 직후부터 적자기업의 나락으로 떨어진 ‘진짜 원인’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원가공개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한전과 정부부처간의 갈등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탈원전 이후 주가폭락 겪어온 소액주주들이 도화선에 불붙여
한전 주가는 탈원전 이후 반토막 이하로 떨어져
정부여당의 ‘누진단계 축소안’, 한전의 2800억원대 추가 적자요인
산자부와 한전은 지난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공청회를 갖고 3가지 누진제 개편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그러나 한전소액주주행동은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부었다. 이 단체는 “지난 2016년 전기요금 누진제를 3배수 3단계로 축소한 것이 마지막인 것처럼 하더니 선거철을 앞두고 또다시 요금인하 정책을 펴는 데 반대한다”면서 “경영진을 배임행위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이 단체의 장병천 대표는 공청회장에서 “패널들의 출연료는 모두 내가 부담할테니 한전은 적자를 심화시키는 누진제 개편안을 포기하라”면서 100만원짜리 수표 2장을 테이블 위에 꺼내기도 했다.
개편안의 내용을 보면,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격분할만하다. 3안을 제외한 1,2안 모두 한전이 추가 적자를 부담해야 하는 내용이다. 1안은 ‘누진구간 확장안’이다. 전기사용량에 따른 3단계의 구간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이 방안이 실현되면 대부분 가정의 전기요금 인하효과가 기대된다. 예컨대 여름철에 전기료를 많이 쓰면 3단계 누진 요금을 물어야 할 가정이 2단계 요금만 내면 되는 식으로 전기료가 줄어들게 돼있다.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지난 해 여름철 전기사용량을 기준으로 추정하면, 1629만 가구가 가구당 1만 142원의 전기료를 할인받게 된다.
2안은 ‘누진단계 축소안’이다. 3단계 요금 구간을 폐지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도 지난 해 여름철을 기준으로 하면, 3단계 누진요금을 물었던 609만 가구가 가구당 1만 7864원의 전기료를 절감할 수 있다. 1,2안이 시행되면 가구들이 할인받는 만큼 한전의 적자요인이 새로 발생하는 것이다.
3안은 ‘누진제 폐지안’이다. 현행 3단계 요금의 중간 수준인 125.5원을 단일 단가로 시행하자는 것이다. 이 방안을 시행하면 지난 해 기준으로 1416만 가구가 가구당 4335원의 전기료 인상을 감수해야 한다. 전기를 적게 쓰는 1단계 구간의 가구들이 부담을 지는 구조이다. 물론 한전은 추가 수익이 발생하는 방안이다.
한전은 지난 4일부터 한 홈페이지에 게시판을 운영해 3가지 방안에 대한 여론을 수렴중인데, 3안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다. 기존 3단계 누진제하에서 2,3단계 구간의 가구들이 모두 이득이기 때문이다. 또 적극적인 한전 소액주주들이 한전의 적자폭을 줄여주는 3안을 집중적으로 지지했을 개연성도 있다.
물론 내년 총선 등을 염두에 둔 정부여당이 3안을 선택할 확률은 거의 없다. 다수 가구에게 경제적 이득을 주는 1안이 최선호안이다. 최대 2800억원의 전기요금 인하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금액은 고스란히 한전의 재무부담으로 돌아간다.
한전 소액주주들은 발끈할 수밖에 없다. 한전의 주가는 공교롭게도 ‘탈원전 정책’과 맞물려 지속적으로 급락해왔다. 한전은 매년 수조원대의 영업이익을 내왔으나 탈원전 정책이 확정된 지난 2017년 4분기에 1294억원의 적자를 냈다. 지난 해에는 2080억원 적자, 올해에는 1분기에만 6299억원 적자이다.
2016년 6만원대 안팎이었던 한전의 주가는 2017년 4분기에 3만원 후반대로 떨어졌다. 12일 종가기준으로 2만 6300원이다. 탈원전 이전에 비해 반 토막 이하로 추락한 것이다.
한전이 하반기 원가공개 강행하면, 탈원전 논쟁의 진실 일각 드러날 수도
탈원전 타당성 논쟁 새로운 국면에 진입
한전의 적자구조가 심화될수록 주주와 임직원은 바늘방석이다. 지난 해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한전 직원의 평균 연봉은 8115만원이다. 한전은 산업은행이 32.9%, 중부가 18.2%의 지분을 보유한 공기업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12일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공시된 36개 공기업 대상으로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곳은 9209만원인 한국마사회이다.
‘적자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힌 공기업은 소액주주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나서 봉급 동결이나 삭감을 주장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런 탓인지 한전은 11일 공청회에서 올 하반기 원가공개 방침을 밝혔다. 산자부가 당황해할 정도로 예정에 없던 사태였다. 권기보 한전 영업본부장은 이날 공청회에서 “공급원가를 포함해 전기요금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이르면 하반기부터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전교감이 없었던 산자부는 한전 측에 불쾌감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12일 해명자료 등을 통해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발전, 송전, 배전, 판매비용 등을 청구서에 상세하게 기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개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에 원가공개를 통해 원가가 낮은 원자력 비중을 줄이고 고가인 LNG(액화천연가스)나 재생에너지를 통해 전기를 조달한 게 적자요인임이 드러난다면 탈원전 정책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그동안 정부는 지난 해 한전의 적자가 ‘국제연료가격 상승’에 기인했다고 반박해왔다.
결국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한전의 재무구조가 악화됐다는 세간의 의혹제기가 한전의 전기료 인하를 가로막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원가공개 사태까지 초래하고 있다. 바야흐로 탈원전 타당성 논란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