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충칭특파원=강병구 기자) 지금 충칭에선 충칭출신 억만장자 사업가의 감동스토리가 화제다.
거지에서부터 시작해 랴오닝성(辽宁省) 선양(沈阳)시의 선양구구이봉그룹(沈阳玖玖利峰集团) 사장이 된 허롱펑(何荣锋) 씨의 사연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의 사연은 이렇다. 허씨는 충칭시 유양현 이구향의 농민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다 1993년 그는 17세이던 때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대륙의 연안지역으로 가 일자리를 구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결국 양쯔강이 시작하는 쓰촨성에서부터 강이 끝나는 머나먼 저장성(浙江省)으로 일자리를 찾으러 간다.
1993년의 어느 봄날, 몇 달 동안 돼지를 도축해 번 돈 1만 위안(약 180만 원)을 가지고 2명의 동료와 함께 쓰촨성을 떠난 허씨는 저장성에 도착하기 전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잃는다. 한순간에 거지가 된 허롱펑과 동료들은 13일 동안 지나가는 사람에게 구걸을 하다 저장성의 선주현 양부향이라는 작은 마을에 다다른다.
그때 당시 허롱펑씨의 양쪽 발은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있었고, 도저히 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른 순간 녹색 목도리를 두른 한 젊은 여자가 그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는 ‘따이싱펀(戴杏芬)’이라 불리는 여자였다.
그녀는 그들의 곤경을 보고 한상의 밥과 반찬을 제공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따뜻한 물을 가져와 그들의 발을 씻겨주었다. 또한 그들이 떠날 때 300위안(약 5만4천 원)과 약간의 음식을 챙겨주었다.
따이싱펀씨와 헤어진 허씨는 연안지방을 전전하며 결국 랴오닝성 선양시에 도착했고, 십여 년동안의 필사적인 노력 끝에 그는 거지에서부터 가구공장 노동자로 들어가 결국 가구공장의 사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자신을 위기속에서 구제해 준 은인인 지에지에(姐姐)에게 은혜를 보답해야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꾸준히 저장성 선주현에 있는 따이싱펀씨에게 7년 동안 수십 통의 편지를 보냈고, 다시 한 번 직접 저장성의 선주현으로 갔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따이싱펀씨는 외지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에 찾을 수 없었다.
또한 저장성 공안의 도움을 받아 그녀의 이름을 찾아보았지만 저장성 선주현에는 '따이싱펀'이라는 호구 등록 정보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끈질긴 노력으로 20년 만에 은인 찾기에 성공한다. 허롱펑 씨는 사투리를 쓰는 그녀 때문에 '따이싱펀'씨의 이름을 '따이신펀(戴信芬)'으로 잘못알고 있어 그녀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2013년 3월, 저장성 선주현에서 온 동료에게 그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드디어 허롱펑씨는 ‘따이지에지에(戴姐姐)’ 따이싱펀을 찾았다. 정확히 20년이 지난 후 그녀를 찾은 것이다.
허씨는 이제는 장년이 된 그녀를 만나 감사의 표시로 100만 위안(약 1억8천만 원)짜리 수표를 건넸다. 하지만 따이싱펀씨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후, 이번 국경절에 허씨는 다시 한 번 따이싱펀을 찾아가 이번엔 5만 위안의 현금과 집수리를 해주었다.
따이싱펀씨는 인터뷰를 통해 “그 당시 비록 나도 힘들었지만, 곤경에 빠진 그들을 외면 할 수 없었다”고 말하며 허롱펑씨를 만난 그날을 회상했다.
허롱펑씨 또한 “17세의 어린 나에게 도움을 줬던 ‘따이지에지에(戴姐姐)’를 생각하며 나 또한 항상 소상인들과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망설임 없이 도움을 주었다. 이런 곤궁함을 직접 겪어본 나로선 결코 외면할 수 없었다. 그때마다 항상 따이싱펀씨를 생각했다”라고 대답했다.
모든 것을 잃고 희망이 보이지 않던 순간, 따뜻한 밥 한 끼가 20년이 흐른 후, 100만 위안짜리 수표로 돌아온 이 사연은 수많은 네티즌들의 마음을 울렸고, 허롱펑씨는 ‘감동 충칭 10대 인물’ 후보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세상에 둘도없는 '친남매'가 되었고 이들의 사연은 '평생의 남매'라는 공익 영화로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