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5'에 박수만 칠 수 없는 이유
[뉴스투데이=김민구 부국장] 해마다 1월 초순이 되면 전 세계는 미국 네바다주(州) 라스베이거스로 눈을 돌린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5'가 이달 7일부터 10일까지 라스베이거스에서 ’테크 파티‘의 화려한 막을 올리기 때문이다.
CES는 전 세계 기술 산업 추세를 읽을 수 있는 풍향계다.
이를 보여주듯 올해 CES 홈페이지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기술을 뽐내는 행사(The Most Powerful Tech Event in the World)‘라는 야심에 찬 문구가 등장하고 있지 않는가. 이는 CES에서 등장한 기술이 한 해 세계를 풍미하는 트렌드세터(Trend setter)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유력 테크기업이 이번 행사에서 첨단기술을 선보이며 자웅을 겨루고 있다.
CES가 보는 이의 혀를 내두르게 하는 IT기술 격전지가 된 가운데 삼성, SK, 현대차, LG 등 국내 대기업을 포함해 900여 개 기업이 CES 2025에 참가했으니 그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CES는 기술 근본주의(Technological Fundamentalism)의 대향연이다. 기술은 사회와 경제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물이 넘치는 욕조에서 불규칙한 물체 부피를 측정하는 방법을 발견한 후 ’유레카(Eureka:알아냈어)‘를 외친 고대 그리스 과학자 아르키메데스처럼 첨단기술은 경제에 새로운 성장을 가져오는 촉매제다.
CES는 또한 '빈 카운터스(Bean Counters)’에게 ‘반성의 시간’을 준다.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챙기는 재무-회계 전문가인 빈 카운터스에 대한 평가는 명암이 엇갈린다.
재무통(通) CEO(최고경영자)가 기업을 운영하면 투자나 돈 쓰는 일에 주저하기 마련이다. 지금처럼 경제가 불확실한 가운데 빈 카운터스 경영기법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빈 카운터스는 현장을 경시하는 성향이 없지 않다. 수중에 있는 돈을 의식해 최첨단 기술개발에 필요한 과감한 투자를 등한시하면 결국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 함정에 빠진다.
기업은 한번 일정한 경로에 들어가면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로의존성을 드러낸다.
기존 인기 제품에만 집착하는 경로의존성은 기업을 몰락으로 이끄는 ‘치명적인 처방전’이다. 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첨단기술 홍수에 떠밀리는 신세로 전락하는 길이다.
CES 2025의 또 다른 관전포인트는 중국이다.
중국은 이번 전시회에 1339개에 이르는 테크기업이 도전장을 내밀어 눈길을 끌었다. 이번 행사에 세계 4500여개 업체가 참가하고 있으니 중국이 전시회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셈이다.
중국이 참가업체 수에서 미국(1509개)에 이어 2위에 머물렀지만 CES 2024에 참가한 중국 기업(1104개)과 비교하면 올해 235개 늘어나 첨단기술에 대한 중국의 야심에 등골이 오싹하다.
특히 중국업체는 이번 행사에 시대적 화두가 된 AI(인공지능) 제품을 비롯해 스마트홈 플랫폼, 심지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플라잉카’까지 내놔 이들의 ‘야성적 충동’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는 중국이 ‘기술 굴기(崛起:우뚝 일어섬)’에 대한 집념이 어느 정도 인지를 잘 보여주는 단면이 아니고 무엇인가.
중국이 자국 기술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기술 굴기에 가속페달을 밟아 그동안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 자리 잡은 두꺼운 ‘기술의 벽’도 어느새 허물어지고 있는 게 글로벌 경제의 현주소다.
세계시장을 상대로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우리로서는 중국의 첨단기술에 손 놓고 있다간 낭패를 당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처럼 지구촌은 업종·영역 간 경쟁 칸막이가 사라져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됐다. 이에 따라 경쟁기업 간 ‘적과의 동침’, 전혀 다른 분야와의 합종연횡도 비일비재하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가 문득 떠오른다.
세계가 초접속·초연결 시대에 접어들어 치열한 첨단기술 개발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여의도 정객에게는 한가한 남의 얘기다. 세계 주요국이 AI 등 최첨단 기술 핵심인 반도체 기술 개발에 사력을 다하고 있지만 우리는 ‘기울어진 운동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공산주의 국가 중국마저 국가 차원에서 자국 반도체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법안을 마련하는 게 ‘뉴노멀’이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연쇄 탄핵병’에 걸린 중환자다. 이러다 보니 국가 산업 미래가 달린 반도체산업특별법 등 경제 살리기 법안이 여전히 국회 서랍에서 잠자고 있다.
세상이 급변하는데 여의도 정객들은 반(反)기업 정서에 매몰돼 기업 손발을 묶고 혁신에 족쇄를 채우는 '앙시앙 레짐'에 매몰됐다.
밖으로 눈을 돌려봐라. 각종 규제와 반기업 레토릭이 차고 넘치는 나라 가운데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거둔 곳이 있는지 말이다.
여야가 탄핵 등 정치적 이슈를 놓고 치열하게 주판알을 튕기고 있지만 국민이 관심을 보이는 대목은 정치적 이슈가 아닌 먹고사는 문제다. 정부와 정치권은 경제 성장과 기업 육성 등 경제 활성화 정책에 더 주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율과 감동이 충만한 라스베이거스의 ‘기술 대향연’에 우리는 ‘잠 못드는 밤’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