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비뚤어진’ 충성심, MZ 세대 계엄군이 바로잡아
[뉴스투데이=김한경 시큐리티팩트 편집장]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4시간 전인 3일 오후 6시 쯤 윤석열 대통령을 만났으며, 윤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건의하고 해당 의안을 국무회의에 상정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윤 대통령이 평소 자신의 말에 “맞습니다”를 외쳐온 김 전 장관과 계엄을 긴요하게 논의했을 것이란 추측이 제기됐다. 김 전 장관도 4일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보낸 입장문에서 “비상계엄과 관련한 모든 사태의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김 전 장관이 국군 통수권자인 윤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 벌어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군인의 충성심은 국가를 위한 것이지 정권을 위한 것이어선 안 된다. 이것을 혼동하면 이번 같은 사태가 발생한다. 김 전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의원들의 계엄령 관련 질의에 “(계엄령 발령 시) 우리 군이 안 따를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듯 김 전 장관 자신도 군 병력을 동원해도 임무 수행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윤 대통령이 원하니 따른 것 같다.
국가를 위한 군인의 충성심이 빛을 발한 사례는 1987년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6·29 선언이 나온 과정에 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간선제 호헌 조치에 맞서 시민들의 시위가 계속되자 6월 19일 계엄사 운용과 군 동원을 골자로 한 육군참모총장의 ‘작전명령 제87-4호’를 하달한다. 이때 내전 상태로 번질 수 있는 유혈 사태를 우려한 민병돈 당시 특전사령관은 고명승 보안사령관을 통해 명령 취소를 전두환 대통령에게 건의한다.
전 대통령과 같은 하나회의 일원이었고 전 대통령이 제3공수여단장 시절 예하 대대장으로 근무하면서 돈독한 관계였으나 민 사령관은 ‘군의 정치개입은 안 된다’는 평소 소신에 따라 작전명령이 취소되지 않으면 707특임대대로 청와대를 점령하겠다는 쿠데타까지 염두에 두고 맞선 것이다. 군내 반발 여론을 전달받은 전 대통령은 결국 군을 출동시키지 않았고, 이후 6·29 선언이 탄생한다. 막후에서 군의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발전했다.
김 전 장관이 1987년 당시 민병돈 특전사령관처럼 군의 정치개입은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대통령 개인이 아닌 국가를 위한 충성심을 보였다면 윤 대통령을 만났을 때 비상계엄 선포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 다행히 계엄군으로 출동한 MZ 세대 군인들이 현장에서 슬기롭게 대처함으로써 물리적 충돌이나 유혈 사태로 발전하지 않았고, 김 전 장관의 ‘비뚤어진’ 충성심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됐다.
당시 헬기와 차량을 이용해 국회로 진입한 계엄군은 육군의 최정예 병력인 특수전사령부 예하의 제1공수여단과 제707특수임무단, 수도방위사령부 제35특수임무대대 등으로 밝혀졌다. 국회 사무처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이들은 소총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건물 유리를 깨면서 의사당 내부로 진입했지만, 그 이상의 물리력 행사는 망설이는 모습이었고, 지휘자로 보이는 군인이 의원 보좌진, 사무처 직원들과의 물리적 충돌을 자제시키는 장면도 보였다.
한 야당 보좌진은 “계엄군이 의원들의 출입을 묵인한 듯 보이기도 했다”며 “결국 본 회의 개최를 막으려던 계획은 허사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게다가 이들은 국회에서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다는 소식을 접하자 곧바로 현장에서 철수했으며, 온라인상에는 철수할 때 시민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사진도 나왔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해제 담화는 3시간 이상 흐른 뒤 나와 정부가 받아들이기 전에 계엄군이 먼저 철수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현장에 출동한 군인들뿐만 아니라 일부 간부들도 이번 계엄령 선포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계엄사령부에서 주요 보직을 부여받을 것이 예상됐던 몇몇 인원들은 다가올 전역 시기 등을 언급하며 거절 의사를 표명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 전 장관의 비뚤어진 충성심에서 시작된 계엄 선포였지만 MZ 세대 계엄군들이 현장에서 지혜롭게 행동함으로써 김 전 장관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