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50년史] '메모리 글로벌 최강자'에 드리운 그림자 '초격차 기술'로 극복

전소영 기자 입력 : 2024.12.06 05:00 ㅣ 수정 : 2024.12.06 05:00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진출 50년만에 세계 메모리 업체 1위로 '우뚝'
AI 반도체 'HBM' 부진·경쟁업체 D램 시장 추격 등 큰 도전에 직면
2025년 반도체 재도약 원년으로 삼고 전략 강화 등 재정비 나서
'HBM 개발 원조' 삼성전자, 내년에 기술 격차 좁히는 첨단 제품 내놔야
전영현 반도체 수장 중용·반도체 기술통 승진 등 경쟁력 강화 가속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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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왼쪽) 삼성전자 회장이 기흥캠퍼스를 방문해 차세대 반도체 R&D(연구개발) 단지 건설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 삼성전자]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반도체 50년 역사를 발판으로 100년 세계 초우량 기업의 길을 가겠다'

 

6일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1974년 12월 6일 국내 첫 반도체 웨이퍼 가공 생산업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에 나선 삼성전자는 불과 반세기만에 '글로벌 메모리 업체 1위'로 우뚝 서며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없어서는 안 될 대들보로 성장했다. 

 

하지만 최근 AI(인공지능)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이에 필요한 반도체 '고(高)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부진한 모습이다.  설상가상으로 삼성전자가 일반 D램에서도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위기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50년간 쌓아온 전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 위상이 흔들리자 삼성전자는 앞으로 50년을 위한 초격차 기술(경쟁업체가 추격할 수 없는 기술) 경쟁력 회복을 위한 도약에 힘찬 시동을 걸었다. 이에 따라 2025년을 반도체 재도약 원년으로 삼고 전략 강화와 재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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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앞줄 가운데) 삼성 창업회장과 이건희(왼쪽 두번째) 삼성 선대회장이 1983년 경기도 기흥 반도체 공장터를 방문하고 있다. [사진 = 삼성전자]

 

■ 이병철이 밀고 이건희가 키운 삼성전자 '반도체'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 역사는 호암 고(故) 이병철 창업회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 이병철 창업회장은 전자산업, 그 가운데 반도체에 주목하고 1968년 언론을 통해 시장 진출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1960년대 당시 한국은 전자산업 불모지였다. 이에 따라 반도체 사업 진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고 이병철 창업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추진력 있게 밀어붙였다.  그는 ‘이것(반도체)이 곧 고부가가치, 고기술 상품, 즉 첨단 기술 상품이다’, ‘반도체·컴퓨터 등 첨단 산업 분야는 세계 시장이 무한히 넓다’, ‘반도체·컴퓨터 산업은 시장성이 클 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 파급효과가 지대하며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신념을 보였다. 

 

그리고 고 이건희 선대회장 역시 아버지 이병철 창업회장 영향을 받아 반도체 사업 성장 가능성에 깊이 공감했다.

 

1974년 당시 삼성 계열사 이사를 지냈던 고 이건희 선대회장은 주변 만류에도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사업을 본격적으로 키웠다.  강기동 박사가 세운 한국반도체는 국내 첫 반도체 웨이퍼 가공 생산업체로 당시 부도 위기를 맞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TV와 시계에 들어가는 단순한 기능의 칩을 생산하는 기술력에 머물렀다.  그러나 삼성 반도체 사업은 1983년 2월 고 이병철 창업회장이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한 이른바 '도쿄선언'을 통해 전환점을 맞았다.

 

그리고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출발점으로 불리는 경기도 기흥 캠퍼스를 착공했다.  통상 1년 6개월 이상 걸리는 반도체 공장을 삼성전자는 불과 6개월 만에 완성시킬 만큼 반도체 사업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기흥 반도체 공장은 공사 기간이 짧았지만 미국과 일본에 이은 전 세계에서 세번째 반도체 생산기지다. 이 공장에서 64Kb D램의 공정·검사·조립·기술 등 반도체 모든 공정 기술을 독자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삼성전자는 그해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1위 자리에 오른 후 현재까지 30여년째 정상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계에 괄목할 만한 ‘최초’ 발자취를 남겼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256Mb D램 세계 최초 개발 △세계 최초 20나노급 D램 양산 △세계 최초 3차원 수직구조 1세대 V낸드 양산 △세계 최초 10나노급 D램 양산 △게이트올어라운드(GAA·Gate All Around)를 적용한 3나노 공정 세계 최초 상용화 △업계 최초로 1Tb(테라비트) TLC 9세대 V낸드 양산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걸맞는 첨단 기술 경쟁력을 입증했다.  GAA 기술은 전류가 흐르는 채널을 모든 면에서 제어하는 방식의 차세대 반도체 제조 공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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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삼성 테크블로그]

 

■ 한발 늦은 HBM…2025년, 격차 줄이는 원년 삼아야 

 

삼성전자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1위’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AI 시장의 고속 성장과 함께 HBM 수요가 급증하면서다.

 

HBM은 D램 칩 여러 개를 TSV(미세 구멍을 뚫어 수직으로 관통하는 전극으로 연결하는 방식) 공정으로 쌓아 올린 고성능·고용량 D램이다. 쉽게 설명하면 1024개 입출력 통로를 통해 D램 속 정보가 이동하는 것으로 처리 속도가 혁신적으로 개선된 점이 특징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도화된 AI일수록 처리해야 할 데이터 양과 속도가 방대하다"며 "이에 따라 대용량 정보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HBM이 최적의 D램"이라고 설명했다.

 

최초의 HBM 시제품을 개발한 것은 경쟁업체 SK하이닉스다. 그러나 가장 먼저 상용화된  HBM ‘HBM2’를 양산한 것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가 2015년 업계 최초로 HBM2 양산에 성공하자 SK하이닉스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HBM 연구개발(R&D)에 나섰다.

 

SK하이닉스가 HBM 개발에 열을 올리는 동안 삼성전자는 2019년  HBM 투자를 중단하는 정반대 행보를 보였다. 성능은 우수하지만 그만큼 비싼 가격 탓에 수요가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3세대 제품 HBM2E부터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앞서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는 HBM2E에 TSV 공정 기법 가운데 가장 어렵다고 알려진 ‘MR-MUF’ 공정을 먼저 도입했다. 

 

특히 SK하이닉스가 4세대 HBM 제품 'HBM3'를  2022년 6월 먼저 양산했는데 그 무렵 전 세계적으로 AI 시장이 막 꽃을 피웠다. 

 

SK하이닉스는 현재 AI칩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는 미국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에 HBM3를 업계에서 가장 먼저 공급해 사실상 시장 주도권을 거머쥐었다.

 

HBM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삼성전자는2023년 7월 HBM3 양산을 시작했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5세대 제품  HBM3E도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는 올해 안에 HBM3E를 엔비디아에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깜깜무소식'이다. 

 

이에 따라 내년 하반기 출하가 예상되는 6세대 ‘HBM4’ 역시 SK하이닉스가 앞설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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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분기별 실적 자료 [그래픽 = 뉴스투데이]

 

다른 길을 걸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부문 올해 3분기 실적은 매출 29조2700억원과 영업이익 3조8600원이다. 직전 분기인 2분기는 매출 28조5600억원, 영업이익 6조4500억원이다.

 

이에 비해 SK하이닉스는 3분기 매출 17조5731억원과 영업이익 7조300억원을 기록해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나타냈다. 직전 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7%, 영업이익은 29% 증가했다. 특히 HBM 매출이 직전 분기 대비 70% 이상, 전년 동기 대비 330% 이상 증가하며 다시 한번 시장 내 영향력을 입증했다. 

 

업계는 삼성전자의 HBM 기술력이 SK하이닉스와 1년 가량 차이 나는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양사 간 기술 격차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벌어질 지 모른다. 이에 따라 내년 1년이 삼성전자가 HBM 시장 판도를 흔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반도체 업계의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HBM은 SK하이닉스가 1세대를 앞서 있으며 이제는 일반 D램까지 경쟁사가 위협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며 “이에 따라 근원적 경쟁력 회복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부 조직개편에 나섰으며 새로운 조직이 본격 활약할 2025년이 매우 중요하다"며 "삼성전자가 내년에도 기술격차를 좁히지 못하면 회복이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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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회장이 충남 천안캠퍼스를 찾아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며 공장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러한 난국을 해소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지난 5월 원포인트 인사로 전영현 부회장을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부문장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2025년 정기 인사에서 불확실한 대내외 경영환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메모리 사업부를 대표이사 직할체제로 바꾸기로 했다. 이에 따라 메모리사업부가 부회장급 조직으로 격상됐다.

 

이를 계기로 지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간 메모리사업부장을 역임한 전 부회장이 7년만에 메모리사업부를 다시 진두지휘 하게 됐다. 

 

임원 인사에서도 반도체 부문 기술 통(通)을 승진시키는 등 기술 경쟁력 강화에 무게를 두며 DS 사업부 조직력을 강화했다.

 

전 부회장은 “기술과 품질은 우리 생명이고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자존심”이라며 “단기 해결책보다는 근원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세상에 없는 기술과 품질로 재도약하겠다”고 밝혔다.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을 거듭 강조해 온 전 부회장이 삼성전자 초격차 기술력을 회복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의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삼성전자는 어느 기업보다 우수 인력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고 전영현 부회장이 해보겠다고 약속한 만큼 삼성전자를 마냥 부정적 시선으로 보면 안된다”며 “내년 12월 양산이 예상되는 HBM4 결과가 삼성전자 경쟁력 회복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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