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가 현실이 되려면
[뉴스투데이=김민구 부국장] 설마설마했는데 결국 현실로 다가왔다. ‘분노와 갈라치기 끝판왕’ 도널드 트럼프 전(前) 미국 대통령이 약 4년간의 공백을 끝내고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번 미국 대선을 앞두고 근거가 없는 분노를 부추기며 각종 추문과 기행, 도발적 언행을 일삼은 트럼프에 미국 유권자들이 집단 이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다.
자신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다른 정보는 무시하는 트럼프의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과 왜곡된 정치생태계는 미국이 추구하는 민주주의와 결을 달리한다.
또한 다민족 사회인 미국 현실을 도외시한 채 정치와 경제 문제를 인종과 문화 충돌로만 여기는 트럼프의 터널 비전(tunnel vision)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트럼프의 기이한 행태를 눈 감아주고 압도적 지지를 보낸 미국 유권자들의 어두운 이면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의 막말 시리즈에 미국 백인사회 등 지지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낄지 모르겠지만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 위상과는 한참 동떨어진 결과물이다.
그러나 미국 대선 결과에 더 이상 왈가불가할 생각은 없다. 미국 유권자 선택에 따른 책임도 고스란히 그들의 몫이다.
이제 전 세계는 ‘트럼피즘(Trumpism)’을 앞으로 4년간 다시 지켜봐야 하는 신세가 됐다. 불만 원인을 밖으로 돌려 위험을 차단하고 국민 결속을 강조해 반대자를 억압하는 것은 나치즘과 파시즘의 공통된 속성이라는 점을 트럼프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세계는 이미 ‘분노의 파도’가 넘실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 양극화가 시대적 화두로 등장하면서 2011년 미국에서는 ‘1%대 99%’라는 구호를 앞세운 월가 점령 시위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이후 유럽과 아시아에서 경제적 불평등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내뿜는 분노를 목도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 아닌가.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 일갈한 것처럼 세계는 분노의 정치학에 뿌리를 둔 ‘극단의 시대(The Age of Extremes)’로 치닫고 있다. 그렇다고 트럼프의 해괴한 정치 행보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재등판으로 한동안 잠들었던 보호무역주의가 관(棺) 뚜껑을 열고 되살아났다. 이에 따라 미국 호(號)는 자유무역주의와 결별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1817년 발간한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칙(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에서 향후 정책적 혜안을 찾아야 한다.
리카도는 한 국가가 상대적으로 더 적은 기회비용으로 제품을 생산할 때 비교우위가 있다며 자유무역을 통해 일반 국민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자유무역주의는 소비자들이 좋은 물건을 싼값에 살 수 있어 개인은 물론 국가에도 좋은 정책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자신의 경제정책 ‘트럼프노믹스’를 강행하면 소비자는 질이 안 좋은 물건을 비싼 가격에 사야 하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미국 인건비가 높지만 트럼프 차기 행정부가 ‘메이드 인 USA’ 레토릭을 강조하면 지난 1990년대 초처럼 제품 가격이 한 대당 200만~300만 원대인 비싼 미국산 노트북 컴퓨터가 등장할 지도 모른다. 비싼 가격에 소비자들은 미국산 제품을 외면할 수 있다. 이는 트럼프노믹스가 원했던 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패착이다.
트럼프는 또한 과거 미국 정부의 실패 사례에서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
미국이 1929년 대공황을 맞은 가운데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는 유권자 표심을 잡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
후버 대통령은 집권 후 미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2만여 가지 수입품에 59~400%의 관세를 부과하는 '스무트 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을 단행했다. 이에 맞서 영국과 프랑스 등 주요 교역국이 보복 관세로 대응해 세계 교역과 소비가 급랭한 점을 트럼프가 되풀이하면 안된다.
그동안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외치며 세계화를 이끌어온 국가가 다름 아닌 미국이다. 미국은 교역국이 자유무역을 따르지 않으면 '슈퍼 301조'라는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며 일방적인 보복 조치를 해왔다. 그런 미국이 이제 보호무역주의 카드를 내세워 자유무역을 도외시하는 것은 자기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주요 교역국 경제를 희생하며 자국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근린궁핍화정책(Beggar thy neighbour)'의 결말은 공동 번영이 아닌 공멸이다.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라는 트럼프 선거공약이 효험을 발휘하려면 자유무역 확대가 정답이다. 리카도가 ‘비교우위론’에서 강조한 것처럼 자유무역에 토대를 둔 국제교역만이 교역에서 재미를 보는 국가는 물론 조금 손해보는 국가에도 혜택을 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트럼프가 추진하는 미국의 신(新)고립주의는 결국 ‘자국 이기주의’라는 국제적 비난을 피하려고 다른 곳에서 명분을 찾으려는 ‘거짓순수(Pseudoinnocence)’에 불과하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챗GPT, 로봇 등 디지털 혁신의 파고가 기존 경제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는 제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국경을 걸어 잠그고 보호무역주의 깃발을 내건 그의 모습은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가는 퇴행적 행태가 아니고 무엇인가.
미국이 진정으로 다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이 있는 국가가 되려면 기술혁신 등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특히 글로벌 전체 발명 특허 출원 건수에서 중국이 전 세계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미국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가 기술혁신의 핵심 지표이자 국가경쟁력 척도인 기술특허에서 경쟁국 중국에 밀린 슬픈 자화상 앞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공허한 구호를 외치며 분노의 정치를 펼치는 게 해법이 아니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