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원칙모형' 강조에 보험업계 "IFRS17 취지와 달라" 반발…소비자 부담 증가 우려
'예외모형 허용' 발표 한 주도 안 돼 '로그-선형모형' 원칙 강요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감소폭 적은 롯데‧현대‧DB 타격 클 듯
3분기 인보험 시장 무‧저해지 비중 62%…롯데손보 가장 높아
"원칙모형 근거 빈약…예외 허용은 당국이 모형 한계 인정한 것"
[뉴스투데이=김태규 기자] 금융당국이 보험사의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과 관련해 각 보험사의 특성을 반영한 예외모형을 인정하겠다고 발표한 지 한 주도 되지 않아 '원칙모형' 적용을 강조하자 손보업계가 자율성 침해라며 반발하는 모양새다.
금융당국은 이달 11일 '금리 하락기의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안정화 및 보험사 리스크관리' 간담회에서 실적 악화를 감추기 위한 예외모형 선택을 피해야 한다며 원칙모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달 7일 각 보험사의 특성을 반영한 예외모형을 인정하겠다고 한 입장에서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일부 보험사에 예외모형을 선택할 경우 대주주 면담을 진행하겠다는 경고과 함께 사전 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원칙모형은 무‧저해지 보험 납입 중 해지율 산출 시 완납 시점 해지율이 0.1%에 수렴하는 로그-선형 모형이다. 당국은 예외적으로 보험사의 특별한 사정에 따라 엄격한 요건을 충족하면 선형-로그 모형이나 로그-로그 모형을 적용할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무‧저해지 보험이란 납입 기간 중 해지하면 환급금이 없거나 적은 상품이다. 때문에 보험료가 일반 보험상품에 비해 저렴하다. 계약을 해지하는 고객이 많으면 미래에 지급해야 할 보험금이 적기 때문이다.
보험업계에서는 IFRS17 도입 이후 중요한 수익성 지표가 된 계약서비스마진(CSM)을 확보하기 위해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을 높게 가정해 CSM을 부풀렸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원칙모형을 적용할 경우 무‧저해지 보험 판매 비중이 많은 보험사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손보업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전체 인보험 시장에서 무‧저해지 보험 판매 비중(월납 초회보험료 기준)은 62.2%다. 지난해 1분기 33.2%에 불과했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60%를 넘어선 것이다.
손보사 가운데 무‧저해지 보험 판매 비중이 가장 큰 곳은 롯데손해보험이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누적 기준 롯데손해보험의 무‧저해지 보험 판매 비중은 36.14%다. 이어 △하나손해보험 36.03% △MG손해보험 29.83% △삼성화재 20.77% △흥국화재 20.46% △DB손해보험 18.7% 순으로 뒤를 이었다.
올해 손보사들이 판매한 어린이 종합보험(무‧저해지형)의 남입완료 시점 수렴 해지율은 20년납 기준 DB손보 2.5%, KB손해보험 2.5%, 현대해상 1.7%, 롯데손보 1.4% 수준이다.
DB손보의 경우 납입기간 중 11년차부터 19년차까지는 2.5%로 적용했으나 마지만 20년차에 0%로 급감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KB손보는 17년차까지 2.5%로 적용하고 만기 시점 직전 3개년간 해지율을 낮췄다.
삼성화재와 메리츠화재의 경우 만기 직전까지 해지율을 고정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낮아지도록 설정했다. 반면 이들 보험사는 경험통계가 있는 5년차 내외까지는 해지율을 점진적으로 낮추다가 그 이후 자의적으로 높게 설정했다.
이에 당국은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산정 시 계약 4~5년차까지 보험사의 경험통계를 반영하고 이후 기간은 로그-선형모형을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적용하면 로그-선형모형이 적용되는 시점에 해지율이 급격히 하락해 보험부채가 증가하게 된다.
금융당국이 예외모형을 허용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다수의 보험사가 예외모형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이 사전 조사를 진행한 결과 대부분의 보험사가 예외모형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에 당국은 원칙모형 적용을 강조하며 예외모형 선택을 자제하도록 엄포를 놓았다. 이세훈 수석부원장은 이달 11일 '금리 하락기 IFRS17 안정화 및 보험사 리스크관리' 간담회에서 "실적악화를 감추고자 예외모형을 선택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근시안적 실적경쟁에 얽매여 IFRS17 원칙과 도입 취지를 훼손하지 말라"고 말했다.
당국의 압박에 당초 예외모형을 검토했던 다수의 보험사가 원칙모형을 적용한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현대해상, KB손보는 원칙모형을 적용하기로 했으며, DB손보 역시 원칙모형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화재와 메리츠화재는 처음부터 원칙모형을 적용한다는 입장이었으며 원칙모형 적용의 영향이 크지 않은 생보사들은 당국이 제시한 방향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부 손보사들은 원칙모형을 고수해 실적이 급격히 악화하게 되면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어 소비자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당국이 원칙모형 적용을 고수한다면 다수의 보험사가 급격한 실적 악화를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결국 보험료를 높이는 등 가입자 부담이 확대되거나 제공되는 혜택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로그-선형모형을 '원칙'으로 삼기에도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험통계가 부족한 상황에서 기준으로 삼을 근거가 부족한데다 회사별, 상품별 해지율이 모두 달라 한 가지 기준을 일괄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보험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무‧저해지 보험이 판매된 지 이제 5~6년 밖에 되지 않아 아직 경험통계가 없다"면서 "해지율은 상품별, 판매 채널별로 다른데 한 가지 모형을 강요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원칙모형을 제시하면서 예외모형을 허용했다는 건 당국도 원칙모형이 가진 한계를 인정한 것"이라며 "로그-선형모형이 현실과 괴리가 있는데다 IFRS17의 최선추정 원칙에도 배치돼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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