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42)] 대대장의 순찰과 소통으로 부하를 살리는 보람과 아픔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4.10.29 16:50 ㅣ 수정 : 2024.10.29 16:50

비록 후방지역 향토사단이었지만 무기고 경계초소 야간순찰을 지속 감행했던 결과로 질식사 직전의 부하를 살려
지휘관은 믿고 솔직하게 건의했던 부하를 아쉽게 전역시키는 아픔을 겪게 만드는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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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를 담당한 육군 충용부대의 정문 모습[사진=김희철]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가 대대장 근무시에 담당했던 충청북도 청원군은 현재 청주시와 통합되었고 청원대대는 해체되었지만 당시에 필자의 청원대대는 14개 면대와 1개 기동대 그리고 8개 직장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때에는 각 면사무소의 지파출소에 설치된 예비군 무기고에 해당 면대의 상근예비역들이 24시간 경계근무를 하고 있었고 생활 및 근무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물론 상급부대는 대대장이 지파출소에 설치된 예비군 무기고 경계초소 야간순찰하는 것을 의무적으로 규정하거나 특별히 지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전방의 GOP철책에서 근무하는 대대장들은 매일 야간순찰을 다니는 것처럼 비록 후방지역 향토사단이지만 대대장으로 근무하는 필자도 당연히 무기고 경계초소 야간순찰을 돌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대대장 취임 후에 야간 지파출소 무기고 순찰은 임기를 마칠 때까지 계속 감행했었다.  

 

그러던 중 폭설이 내리며 혹한이 기습했던 겨울 어느날,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 3시에 관사앞에서 대기하던 짚차에 올라 지역 면대 지파출소 예비군 무기고 야간순찰을 위해 출발했다. 

 

운전병의 빙판길 운행도 걱정이었지만 혹한 속에 24시간 경계근무에 임하는 상근예비역들의 열악한 환경과 동계 초병근무에 동상이나 난방에 대한 대비는 잘되어 있는지를 일일이 확인해서 다음날 지역 면대장에게 시정 지시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병원관리였다.

 

이렇게 매번 순찰한 덕분에 낭성면대의 예비군 무기고를 새롭게 신축하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었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34)] 민관군통합작전체계를 빛낸 변종석 청원군수의 애군심(愛軍心)(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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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사앞에서 대기하던 짚차에 올라 지역 면대 지파출소 예비군 무기고 야간순찰을 위해 이동하는 장면과 무기고 경계초소 모습 [사진=김희철][사진=김희철]

 

■ 경계근무에 소홀한 초병을 어떻게 혼을 내줘야 할지를 고려하며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부대 복귀를 고려해 우선 원거리부터 이동하여 야간순찰을 시작했다. 미원면과 낭성면을 지나 가덕면에 위치한 지파출소 예비군무기고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짚차 출입문 틈으로 혹서기 삭풍을 예는 바람이 매섭게 파고들어 발밑의 히타의 온기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추웠다.

 

저멀리 가덕면 지팔출소와 예비군 무기고가 시야에 들어오며 경계초소가 보였는데 그 안에 초병이 없었다. 일순간 날이 추워서 경계근무를 안하고 임시 생활관에 들어가 쉬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며 경계근무에 소홀한 초병을 어떻게 혼을 내줘야 할지를 생각하며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차를 세우고 경계초소로 들어갔다. 헌데 초병인 상근예비역은 초소 밖을 보며 경계근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초소안에 총을 세워놓고 쪼그리고 앉아서 깡통에 피워놓은 장작불을 쬐고있었다. 

 

기습적인 대대장의 방문에 놀란 초병은 옆에 소총을 집어들면서 급하게 일어서서 ‘필...!’하고 경례를 했다. 경례구호도 제대로 하지못한 초병은 백지장처럼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며 필자의 품에서 잠시 기절을 했다.

 

필자는 초병을 안은 채 초소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맞히며 등을 두드렸다. 잠시후 표정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초병은 말을 할려고 했는데 그때까지도 제대로 정신이 돌아오지 못했는지 더듬거리고 있었다.

 

초병은 혹한을 견디기 위해 깡통에 피워놓은 장작불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장시간을 보냈는지 일산화탄소를 흡입하여 거의 중독되기 직전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필자의 품으로 쓰러졌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는 더듬거리며 죄송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비틀거리는 초병을 생활관 대기실로 옮기고 그곳에서 대기하던 다른 상근예비역으로 초병근무를 교대시켰다.   

 

비록 후방지역 향토사단이지만 대대장으로 근무하는 필자도 당연히 무기고 경계초소 야간순찰을 돌아야 한다는 생각해 지속 감행했던 결과로 질식사 직전의 부하를 살렸다는 뿌듯한 보람이 엄동설한 속에서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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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후 간편복으로 생활관 침상에 모여 TV를 시청하는 용사들 모습 [사진=김희철]

 

■ 지휘관은 솔직하게 애로사항을 건의했던 부하를 전역시키는 아픔을 겪게한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

 

조영호 사단장의 사고예방 최우선 부대운영 지침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병사 개개인의 신상파악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여 긴밀한 소통을 통해 사고예방에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대대의 60여명밖에 안되는 현역 전병력의 인적사항을 병원관리(兵員管理)용으로 전산화시켰다. 

 

이는 탁월했던 후배 고(故) 김상철 대위(육사38기)의 포대에서 수년전에 활용했었지만, 당시에는 타부대는 아직 적용을 못하고 있던 상태로 사단에서는 필자가 최초로 시행했었다. 나중에는 일반화된 명암관리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결손가정 등 필요한 요소을 검색하면 전 대대원중에 해당자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 

 

그러나 병원관리 데이터를 입력하려면 수시로 대대원들과 면담이나 소원수리함(대대장만 개봉 가능) 등을 통해 소통할 필요가 있었다. 하루는 화장실에 설치된 소원수리함에 한 병사가 면담을 요청하는 문건을 확인했다.

 

대대장실에서 아담한 키에 다소곳이 마주 앉아서 차를 한잔하던 00일병은 주저하다가 말문을 열였다. “대대장님, 이것을 차마 중대장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시작하자 흠칫 상관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애로사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귀를 쫑긋 세웠다.

 

교육대학을 다니다가 입대한 그는 제대후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입대 후에 생활관에서 단체 생활을 하면서 취침시에 모포가 쓸려내려간 동료의 허벅지를 볼 때마다 흥분되고 몸에 이상한 느낌이 든다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었다.

 

그 말을 들은 필자는 난감했다. 하지만 00일병의 입장이 되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대장이 이 사실을 알았으니 그런 이상 징후 치료가 가능한지를 우선 알아보고 조치하겠다며 안심하라고 달래주었다. 그를 생활관으로 돌려보내며 걱정이 됐으나 연대 인사과장에게 먼저 상의를 했다.

 

다음날 연대인사과 선임하사가 대대를 방문해 00일병을 면담하고 병원 진료를 받게 하겠다며 데리고 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병원 치료차 대대를 떠난 병사는 의사 진료 후에 ‘성도착증세’로 확진이 됐고, 바로 전역 조치가 되었다.

 

한달 뒤에 그의 편지를 받았다. 전역해서 집에서 조용히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었고, 말미에 병명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원망도 적혀있었다.

 

지휘관은 휘하에 부하들을 지휘통솔하는 직책이다. 질식사 위험의 부하도 살리는 보람도 있었으나, 후자같은 경우에는 많은 타부하들을 위해 지휘관을 믿고 솔직하게 애로사항을 건의했던 부하를 아쉽게 전역시켜야 하는 아픔을 겪게 만드는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괴로움을 겪게 만들기도 했다. 

 

어쩔수 없이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게 만들었지만 지금도 희생양이 된 00일병에게 미안함이 가슴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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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프로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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