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절의 고향에서 치룬 동계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하)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조영호 사단장(학군7기)은 예비군 교육훈련과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동시 시범 때 만난지 2주일도 안되었지만, 동계 혹한기훈련을 잘하고 있는지 현장지도를 하기 위해 00비행장 주변에 배치된 대대의 숙영지와 훈련장을 또 방문했다.
사실 대부분의 병력이 전시에 동원자원으로 구성된 향토사단은 임무 백브리핑이 매우 중요하다. 현역 병사들이 자신의 개인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동원되는 소대장 등 간부에게 전투 임무를 전달 및 교육시키는 역할도 수행하기 때문에 ‘병 1인 다역화와 간부화 훈련 브리핑’이 반드시 필요한 전투준비이기도 하다.
훈련장을 방문한 사단장에게 필자가 훈련 진행 전반을 보고한 뒤에 동원되는 소대장에게 백브리핑을 하는 소총병이 ‘병 1인 다역화와 간부화 훈련 브리핑’을 했고, 이어 비행장 외곽을 방어하는 현역 중대장이 자신의 임무를 발표했다.
사단장 앞에서 긴장할 것으로 예상되어 연습을 많이 시켰으나 병 1인 다역화로 소대장에게 전투 임무를 전달 및 교육시키는 역할을 할 병사는 소대 방어지역의 배치와 전투준비 그리고 우발상황 발생시 대처하는 요령까지 자신있게 또박또박 발표를 하자 사단장은 놀란 듯 박수까지 치며 잘한다고 칭찬을 했다.
오히려 중대장이 더 긴장하여 더듬거렸으나 바로 전에 탁월하게 발표한 병사의 백브리핑에 감탄의 여운이 남아있던 사단장은 중대장에게도 칭찬을 가미했다.
그때 변종석 청원군수가 상황실 텐트로 불쑥 들어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사단장의 훈련장 현장지도 시간에 맞추어 바쁜 일정의 군수가 사단장을 영접하기 위해 훈련장을 또 찾은 것이다.
■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사단이 들썩들썩하냐?
고향이 같은 충청북도인 사단장과 군수는 보자마자 너무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충북 괴산군 청안면 출신인 사단장은 충북 청원군 북이면 출신의 군수와 이미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사단장은 청원군수를 만나자마자 군의회 의장과 함께 훈련장을 방문해서 비행장 방어시에 야간 침투하는 적들을 격멸하기 위해 필요한 탐조등 35셋트(630만원 상당)을 구매하여 기부해준 것과 지난번 낭성면 예비군 무기고 신축 예산(약 2000만원) 지원, 그리고 사단에서 필요한 모래를 미호천에서 채취하도록 승인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고, 분위기는 상승고도를 탔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35)] 민관군통합작전체계를 빛낸 변종석 청원군수의 애군심(愛軍心)(하)’ 참조)
덕분에 훈련상황실에서의 현황보고는 부드럽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 두사람은 훈련상황실에서 나와 훈련장 텐트 현장을 함께 순시했다. 모두 시간에 쫒기는 중요 직책이었으나 그들은 할 이야기가 남았는지 현장 순시를 함께하다가 대대장 텐트로 다시 들어가 못다한 환담을 지속했다.
다음날 사단 상황실의 아침 상황보고에서 사단장은 청원대대의 훈련 현장지도시 중대장과 병 1인 다역화와 간부화 훈련 백브리핑에 대한 칭찬의 훈시를 쏟아내며 타부대도 참고해서 훈련에 임하라고 강조했다.
또한 발표한 병사는 포상휴가조치하라고 지시했다는 소문도 들렸고, 얼마뒤에 현장지도 결과가 공문으로 각 부대로 하달되어 대대원들의 사기가 최고로 고조되는 영광도 얻었다.
사단장의 동계 혹한기 훈련 현장지도 결과가 각 부대로 하달되자 연대 및 사단 실무자들과 타 부대장들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사단이 들썩들썩하냐?”고 의문의 전화를 필자에게 계속 날려보냈다. 육본으로 전출간 전임 사단 공병대장과 수방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장연석(육사35기) 선배도 소식을 들었다며 축하 전화를 주었다.
과거 최전방 대성산 기슭의 중대장 시절에는 혹한과 폭설 속에서 얼음집을 지어 숙영하며 적응훈련을 했었지만, 향토사단 후방지역인 충청북도는 전방만큼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제대로 혹한기 훈련을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사단장의 극찬으로 이번 혹한기 훈련도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 손자병법의 선승구전(先勝求戰)이란 뜻과 의미을 명확히 알 수 있었던 연대전투단 훈련
동계 혹한기훈련이 끝나고 3월로 접어들자 군단장이 연대장들을 비교 평가하는 연대전투단 훈련이 바로 다가왔다.
당시 연대장의 임기중 가장 중요한 훈련이기 때문에 필자는 부하된 도리를 다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그동안 소개장, 중대장 등의 군생활에서 네 번에 걸친 연대전투단 훈련 경험을 통해 쌓아온 노하우와 진수를 모두 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뛰어볼 각오를 다졌다.
훈련에 임하는 신현정 연대장의 작전 마인드는 대단히 탁월했다. 부여된 상황에 대한 적시적인 작전 지침은 명쾌했고 단지 예하 부대들이 그 지침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실천하여 구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대대원들은 이미 지난 전투지휘검열시에 후방지역 작전 훈련(‘[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25)] 전투지휘검열도 끝나자 더 바빠진 청원대대(하)’ 참조)을 통해 숙달된 상태라 별로 어렵지 않았고, 훈련 결과는 또 대성공이었다.
특히 이번 훈련을 통해서 손자병법의 선승구전(先勝求戰)이란 뜻과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이미 군단장과 군단 참모들은 신현정 연대장의 팬이었다. 게다가 평가의 주무를 맡은 군단 작전참모는 필자의 교통사고가 아니였으면 무적태풍부대 군자산 대대장으로 취임해 직속상관인 연대장으로 모셨을 유대우 대령(육사30기)이었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90~192)] 잔인한 4월도 나에게는 축복이었다’ 참조)
무적태풍부대의 군자산에서 상하급자 관계로 맺을 뻔했던 인연 때문에 유 대령이 필자를 아껴주는 모습이 확연하게 표출되는 연대전투단 훈련이었다.
물론 호국충절의 고장답게 연대 책임지역내의 괴산·음성·진천군수와 청주시장이 훈련을 격려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그 중에 청원군수의 위문이 가장 눈에 띄었다.
또한 정답도 비밀도 공짜도 없다는 말처럼 성공적인 연대전투단 훈련종료 후 필자는 훈련 유공으로 군단장 표창을 받았고, 더불어 이번 호국충절의 고향에서 치룬 동계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 훈련을 통해 전임 사단장에 이어 신임 사단장에게도 확실하게 신임을 받는 계기도 됐다.
◀김희철 프로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