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4.10.11 15:08 ㅣ 수정 : 2024.10.11 15:08
환향녀(還鄕女), 국방력 강화에 소홀로 인한 전쟁 패배로 백성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정치가들이 잘못한 결과 사단장의 극찬은 고(故) 이완목 부대대장과 참모들 그리고 23명의 예비군 중대장과 현역 대대원들의 열성 덕분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그해 사단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예비군 교육훈련과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동시 시범은 13시부터 시작됐고, 필자의 설명과 VTR 시청 및 해당 참모 주관의 내실있는 토의, 그리고 조영호 사단장의 훈시 후에 약 1시간 30분간의 교장 현장 견학순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시범시에 필자가 과거 역사로 인해 현재까지 사용되는 ‘환향녀(還鄕女)’라는 단어를 돌이키며 안보의 중요성을 설명한 것과 북한 김정일 정권의 현상태가 사이비 종교집단과 유사해 현혹되지 말고 철저히 대비하자고 강조한 내용이 효과가 있었다.
왜란 및 호란 때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일본 및 청나라로 끌려갔다. 이때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온 여자를 ‘화냥년’이라고 불렀는데 한자로는‘환향녀(還鄕女,고향에 돌아온 여자)’라는 뜻이다.
이때부터 ‘화냥년’과 ‘후레자식’이란 욕이 유행하게 되었다. 화냥년은 품행이 단정하지 못한 여자란 뜻으로 환향녀에서 나온 말이고, 후레자식은 ‘호로(胡虜:오랑캐 호, 종 노)자식’으로 오랑캐의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여자가 낳은 자식이라는 의미이다.
■ 병자호란의 후유증은 국가안보에 소홀했던 정치인들이 환향녀 등 희생자들에게 도리어 책임을 떠넘긴 꼴
왜란 및 병자호란의 후유증은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많은 사상자와 가옥 파괴 및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생겨났고, 특히 청군이 철수하면서 끌고 간 50만 명에 달하는 조선 여성의 문제가 심각하였다.
청군이 여자들을 끌고 간 목적이 포로교환 명목의 속가를 받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싸도 25~30냥이었고, 대게 150~250냥이었으며, 비싼 경우에는 1,500냥에 이르기도 하였다. 이런 때문에 청군은 양민보다도 양반집 여자를 더 선호해 포로로 데려갔다고 한다.
일부 비싼 값을 치르고 아내 및 딸들을 찾아온 경우도 있지만, 되돌아온 대부분의 환향녀(還鄕女)들이 순결을 지키지 못한 것은 조상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 하여 이혼의 문제가 조선 정치 및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그 뒤로부터 남의 남자와 잠을 잔 여자를 ‘화냥년’이라 부르게 되었고, ‘호로자식’은 제풀로 자란, 교양이 없는 사람을 욕하는 말로 버릇없는 놈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포로로 끌려간 건 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국방력 강화를 소홀하여 전쟁에서 패배하며 나라와 백성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정치가들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위로받고 보상을 받아야할 환향녀(還鄕女) 등 희생자들에게 도리어 책임을 떠넘긴 꼴이 되었다. 이처럼 국가안보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 ‘정비공’ 건배사처럼 정답도 비밀도 공짜도 없는 이 세상이지만,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은 진리
조영호 사단장은 예비군 교육훈련과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동시 시범을 마치며 참관자들 앞에서 시범 준비를 한 청원대대를 극찬했다.
동시에 2개의 시범을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사단에 건의하자는 의견을 강하게 필자에게 어필했던 대대 참모들은 성공적으로 행사가 끝나자 희열을 느끼며 보람과 성취감을 만끽했다. 그리고 대대원을 비롯한 사단의 전부대에 청원대대가 확고부동한 최고 수준의 선봉부대임을 재확인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사단장이 복귀하자 신현정 연대장은 수고했다고 격려하며 시범의 대성공 때문에 인접 연대장이 농담처럼 “청원대대장을 업어주라....ㅋ”라는 말을 하였다며, 경쟁의식 속에 몹시도 자신을 견제하는 것을 느꼈다고 즐거운 불평도 했다.
헌데 그 불평의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움찔하며 긴장했다. 인접 연대장의 농담이 어떻게 변화되어 필자에게 돌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긴 재활치료의 아픔을 이겨내며 성공해도 불안한 것은 정답이 없기 때문인가?
확실히 정답은 없었지만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은 진리였다. 고(故) 이완목 부대대장과 참모들 그리고 23명의 예비군 중대장과 현역 대대원들이 긴 재활치료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쩔뚝거리며 노력하는 부족한 DJ대대장을 믿고 따라와준 열성에 감사할 뿐이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2개 분야의 동시 시범은 사단의 많은 인원이 분야별 시범을 위해 반복해서 타지역으로 이동해서 소집하는 노력을 감소시켰고, 대대원들의 불평을 감안해서 배려해준 해당 참모의 토의 진행으로 동시에 사단의 지침을 명확하게 전파하는 기회도 되었다.
세월은 쏜 살같이 날아간다. 시범이 끝나자 벌써 대대장 취임 1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앞으로의 대대장 근무도 ‘정비공’ 건배사처럼 정답도 비밀도 공짜도 없는 이 세상에서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으로 자랑스럽고 충성스러운 대대원들과 함께 또다시 헤쳐나갈 것이라 다짐했다.
◀김희철 프로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