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산업은행 부산 이전, 밀어붙이기식으론 해법 못 찾는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 추진 2년 넘었는데 여전히 답보
노사는 대화 없이 갈등만..직원들은 불확실성 휩싸여
지금이라도 머리 맞대 국책은행 기능 강화 논의해야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KDB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이전한다고 공약했을 때 반신반의했다. 부산을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만드는 동시에 국가 균형 발전도 유도하겠다는 정책 지향점 자체는 매력적이었지만 현실화 가능성이 걸림돌이었다. 국책은행 이전이 불러올 지역 경제 성장 기대와 본래 기능 약화 우려가 공존하는 점도 짚고 넘어갈 부분이었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된 지가 벌써 2년이다. 지난해 5월 국토교통부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심의를 거쳐 산업은행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등 관련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했으나 이후부터는 동력이 빠르게 약화했다. 행정적 절차까지 마무리된 산업은행 부산 이전 문제가 법 개정 문턱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현행 한국산업은행법 제4조 제1항은 ‘산업은행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명시했다.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옮기려면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는 국회의 영역이다. 21대 국회 때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산업은행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22대 국회서도 법안만 발의될 뿐 유의미한 논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러는 사이 산업은행은 노사 갈등으로 몸살이다. 산업은행은 최근 조직 개편으로 부산에 ‘남부권투자금융본부’를 신설하기로 했다. 지난해 50명에 이어 이번에도 30여명의 직원이 추가로 부산에 배치될 전망이다. 남부권 금융 지원 강화로 국책은행의 역할·기능을 확대하겠다는 게 산업은행 설명인데, 노동조합(노조)은 ‘꼼수 이전’이라며 본점 1층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국책은행으로서 정부 정책을 뒷받침해야 하는 산업은행 입장과 국책은행 기능 약화·업무 환경 변화에 대한 경계감을 가지고 있는 노조 입장 모두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다만 산업은행 노사 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가장 답답했던 건 이해관계자 간의 대화 부재다. 노사는 각자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장외전만 펼칠 뿐 내부 갈등 봉합에 대한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2022년 6월 취임 후 노조와 한 번도 마주 앉지 않은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과 부산 이전 백지화만을 요구하며 투쟁 중인 산업은행 노조 중 누가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는지 따지는 건 이제 와서 중요하지 않다. 밀어붙이기식 접근법만을 고수한 산업은행 노사 모두의 책임이다. 조직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는데 대화 파행을 우려하며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건 비겁하다.
산업은행 노조에 따르면 2021년 46명이던 연간 퇴사자는 2022년 97명으로 2배 넘게 늘었고 지난해에도 87명을 기록했다. 특히 행원~대리급인 5급과 과장~차장급인 4급 퇴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58.8%, 2023년 55.2%로 각각 집계됐다. 부산 이전 문제에 대한 노사의 건설적 대화 없이 불확실성만 쌓여간 결과 핵심 인력이 대거 이탈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최근 10·16 부산 금천구청장 재보궐 선거로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다시 화두다. 특히 여당은 국책은행 본점 이전을 통한 금융 중심지 조성을 내세우며 부산 민심 공략에 한창이다. 다만 여소야대로 기울어진 국회 지형을 고려했을 때 산업은행 부산 이전의 마지막 단추인 법 개정 전망은 어둡다. 이대로라면 산업은행 부산 이전 문제가 계속 공회전할 공산이 크다.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대의로 접근하면 공공기관의 역할은 막중하다. 다만 이상적 정책이라도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 반쪽짜리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산업은행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보다 효과적인 국책은행 역할에 대해 논의한 뒤 먼저 제시해야 한다. 비생산적 갈등 구도로 정치권만 바라보는 지금의 모습 자체가 국책은행 기능 약화의 지름길이라는 걸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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