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벤츠·테슬라 화재가 불러온 ‘전기차 캐즘’의 강(江) 건너려면

김민구 기자 입력 : 2024.08.23 01:00 ㅣ 수정 : 2024.08.23 01:00

첨단기술, 캐즘의 높은 벽 넘지 못해 시장에서 퇴출 ‘비일비재’
혁신성, 소비자 품에 안길 때까지 길고 지루한 ‘통과의례’ 거쳐야
사실과 다른 공포 심리 만연하는 ‘오버킬’은 기술혁신 가로막아
'민관 두바퀴' 협력하면 전기차 티핑포인트와 ‘S-커브’ 일궈낼 수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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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 부국장/산업1부장 

[뉴스투데이=김민구 부국장] 인류 과학사를 유심히 살펴보면 혜성처럼 나타나 한때 폭발적 인기를 누리지만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하게 사라지는 사례가 한두 개가 아니다. 

 

세그웨이(Segway)가 대표적이다. 미국인 발명가 딘 카멘(Dean Kamen)이 2001년 개발한 1인용 스쿠터 세그웨이는 혁신적인 개인용 모빌리티(이동수단)로 등장한 후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세그웨이는 오뚝이의 균형 메커니즘을 활용해 탑승자가 서서 타도 넘어지지 않도록 제작했다. 게다가 전기 충전 배터리로 움직이는 이 모빌리티는 최고 시속 19㎞로 24㎞까지 공해를 유발하지 않고 달렸다. 

 

이 기술력에 당시 혁신 수용자는 환호했다. 물이 넘치는 욕조에서 불규칙한 물체 부피를 측정하는 방법을 발견한 후 유레카(Eureka:알아냈어)를 외친 고대 그리스 과학자 아르키메데스처럼 혁신 옹호자는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나. 세그웨이는 모빌리티 혁신의 상징으로 떠올랐지만 1대당 최대 1만달러(약 1330만원)이 넘어 ‘가성비’가 나쁜데다 전동 스쿠터와 전동 킥보드 등 대체재의 등장으로 시나브로 잊혀져 갔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컴팩트디스크(CD) 이후 선보인 레이저디스크는 뛰어난 화질을 자랑했지만 가격이 비싸고 사용하는 데 불편해 소비자들이 외면했다. 

 

팜PDA(개인용정보기기)도 예외는 아니다. 팜PDA는 혁신적 개인정보 관리기기로 눈길을 끌었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시장에서 사라졌다. 

 

공교롭게도 세그웨이, 레이저디스크, 팜PDA는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의 대표적인 희생양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컨설턴트로 활동한 제프리 무어(Geoffrey A. Moore)가 처음 사용한 캐즘 이론은 혁신 기술이나 첨단제품이 피할 수 없는 혹독한 통과의례다. 

 

제프리 무어에 따르면 혁신 제품은 등장 후 기술력이 검증되지 않아 처음에는 혁신성을 중시하는 얼리어답터(2.5%)가 초기 수요자 역할을 한다. 이후 혁신 제품은 실용성을 중시하는 초기 수용자(13.5%)가 대부분인 주류시장으로 사업 영토를 넓힌다. 

 

문제는 첨단기술이 이때 초기시장과 주류시장 사이에서 매출이 급감하거나 정체되는 캐즘을 겪는다. 제품이 보편화할 수 있는 최대 고비를 맞은 셈이다. 

 

첨단기술이 캐즘의 높은 장벽을 뛰어넘는 데 성공하면 기술 혁신성이 검증돼 전기(前期) 다수 수용자(34%)와 후기 다수 수용자(34%)가 제품을 사는 소비 단계로 이어진다. 나머지 16%는 다른 이들의 소비성향을 살펴본 후 마지못해 제품을 구입하는 이른바 지각 수용자다.

 

이처럼 첨단 상품이 소비자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면 넓고 깊은 ‘캐즘의 강’을 건너야 한다. 문제는 캐즘을 이겨내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전기자동차도 캐즘이라는 질곡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전기차는 시장 도입 초기에 비싼 가격, 긴 충전시간, 짧은 주행거리, 충전소 부족이라는 ‘주홍글씨’가 늘 따라다녔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벤츠코리아, 테슬라 등 수입 완성차 업체의 잇따른 화재로 전기차 업계는 캐즘에 이어 화재 포비아(Phobia·공포증)로 이어져 소비자들이 외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는 심리다. 공포를 지나치게 부추기는 ‘오버킬(Overkill:과잉 대응)’은 신기술 발전을 저해한다. 첨단기술이 소비자 품에 안기는 것을 차단해 산업의 숨통을 막기 때문이다.

 

지나친 불안 심리가 거인처럼 커지는 것을 막으려면 팩트를 체크하는 게 급선무다. 

 

우선 전기차 화재율부터 짚고 넘어가자.  최근 전기차 화재가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차량 화재는 전기차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1∼2023년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화재는 각각 1만933건, 139건으로 내연기관 차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지난해만 해도 차량 1만 대당 화재 건수는 내연기관차가 1.9건, 전기차는 1.3건으로 내연기관차 화재 발생률이 전기차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 사례도 같은 추세다.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와 미국교통통계국(BTS)이 분석한 지난해 차종별 화재 발생률을 보면 하이브리드차가 1만대당 347.45대로 가장 높고 내연기관차가 1만대당 152.99대로 뒤를 이었다. 전기차는 1만대당 2.51대로 가장 낮았다.

 

이러한 팩트를 놓고 보면 전기차 화재 발생률이 가장 낮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최근 잇따른 화재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에 역부족이지만 명백한 사실을 손으로 가릴 수는 없다.

 

전기차가 화석연료 기반인 내연기관차를 대체하는 친환경 미래형 차량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미국 석유기업 엑손모빌을 비롯해 쉘, BP 등 이른바 ‘석유 공룡’들이 친환경 차량의 엄청난 잠재력에 매료돼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충에 나서는 모습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100여 년간 내연기관차의 '덕'을 톡톡히 누린 석유 공룡들의 ‘배반‘은 전기차 생태계가 미래 모빌리티 주인공이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니고 무엇인가. 

 

지금은 아득해 보이지만 전기차가 캐즘이라는 관문을 지나 티핑포인트(Tipping point:큰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변곡점)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정부와 기업이 수레의 두 바퀴처럼 같이 협력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는 전기차 산업을 적극 육성하기 위해 보조금 지급과 충전소 확충 등 인프라 지원책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에 대해 자동차 업계는 일반 내연기관차에 비해 비싼 전기차 가격을 내리고 차량 화재 위험이 거의 없는 전고체 배터리 등 첨단제품을 서둘러 사용하는 기술혁신을 이뤄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나가면 전기차 업계는 티핑포인트에 이어 S-커브(성장률 상승곡선)를 그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라는 야누스의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벤츠자동차와 테슬라가 쏘아올린 ‘전기차 포비아’는 이제 ‘숨고르기’에 들어가야 한다. 

 

차세대 기술이 일반인에게 인정받고 자리를 잡으려면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Supply creates its own demand)고 설파한 프랑스 고전주의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Jean-Baptiste Say)의 주장처럼 정부와 기업 노력에 따라 전기차 대중화가 얼마든지 앞당겨질 수 있다. 

 

친환경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화두로 등장한 현실에서 이를 꽃피울 전기차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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