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일 기자 입력 : 2024.03.26 08:24 ㅣ 수정 : 2024.03.26 08:24
은행권 홍콩H지수 ELS 배상 관련 충당금 2조 추산 ‘최대판매’ 국민銀 1조원-‘최소판매’ 우리銀 100억원 충당금 방식 반영 예상...재무상 순이익 감소 불가피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최근 시장에서 올해 은행권 실적이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배상 여파로 부진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은행권 통틀어 조(兆) 단위의 배상금이 발생하는 만큼 재무상 순이익 감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다만 상품 판매·손실 규모에 따라 은행별 희비는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26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은 이번 주 순차적으로 임시 이사회를 열고 홍콩H지수 ELS 원금 손실 사태와 관련한 자율배상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금융감독원이 분쟁조정 기준안을 제시한 이후 속도감 있는 자율배상을 압박하고 있는 만큼 각 은행의 배상 규모 및 시점 등도 잇따라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은행권이 집행할 홍콩H지수 ELS 배상액은 2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산된다. 재무상으로는 직접 손실이 아닌 충당금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비용을 올 1분기 실적에 한 번에 반영하거나, 1~2분기 나눠 반영하는 방안을 두고 막판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자율배상 규모에 따라 올해 은행권 실적은 요동칠 전망이다. 홍콩H지수 ELS 판매 잔액이 가장 많은 KB국민은행은 보수적으로 봤을 때 거의 1조원에 달하는 충당금 적립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는 지난해 당기순이익(3조2615억원)의 30% 수준이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농협은행 등도 홍콩H지수 ELS 배상과 관련해 1000~2000억원대 충당금을 쌓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행보다 규모는 작지만 재무 부담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신한은행 3조677억원 △하나은행 3조4766억원 △농협은행 1조7805억원 등이다.
반면 우리은행의 배상 규모는 100억원 안팎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된다. 자율조정 대상인 홍콩H지수 판매 잔액이 415억원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타행은 아직 관련 규모를 구체화해 발표하지 않았는데 업계에선 국민은행이 5조원대, 신한은행이 1조원대, 농협·하나은행이 7000억원대일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22일 은행권 홍콩H지수 ELS 판매사 중으로는 처음으로 임시 이사회를 열고 자율조정을 수용한다고 발표했다. 상대적으로 판매 규모가 작은 만큼 신속한 자율배상으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고객 신뢰도 되찾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경영진이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에게 빠른 피해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고, 우선 최대한 넉넉한 규모에서 배상액 산정이 이뤄질 것”이라며 “실적에 대한 부분은 나중에 생각할 일이지만 앞으로 홍콩H지수가 더 떨어져 손실 규모가 커지면 (배상도 늘어날 수 있어) 경영상 부담인 건 맞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지주로 범위를 넓히면 예상보다는 실적 충격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은행 계열사의 순익 감소는 불가피하지만 증권과 보험, 카드 등 비(非)은행 계열사들의 실적 성장이 나타나면 그룹 순익 감소를 상쇄할 수 있다는 평가다.
금융정보업체 애프엔가이드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올 1분기 당기순이익 컨센서스(시장 전망치)는 4조581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역대 최대 기록이었던 지난해 1분기(4조9015억원) 대비 6.5%(3197억원) 줄어든 수준이다.
김은갑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KB금융 외에는 충당금 감소나 비이자 이익 증가 등 기타 개선으로 만회가능한 정도”라며 “2023년 실적에 대규모 일회성 비용이 많았기 때문에 손실을 반영해도 신한지주 5.3%, 하나금융 5.1%의 영업이익 증가율이 전망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