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홍콩H ELS’ 가이드라인...은행권 ‘자율배상’ 나설까
금융당국 홍콩H ELS 분쟁조정 가이드라인 발표
판매사·투자자·기타요인 따라 0~100% 범위 배상
‘압도적 판매’ 은행권 내부적으로 예상 규모 산출
당국, 자율배상 판매사에는 제재·과징금 감경키로
“아직 시기상조” 의사결정까지 상당시간 걸릴 듯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금융당국의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배상 가이드라인을 받아든 은행권이 내부적으로 예상 배상액 산출에 돌입했다. 판매사에 대한 무조건적 배상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안도하면서도 배상 집행 규모와 시점에 대해선 고심하는 분위기다. 특히 향후 제재와 과징금 수위를 경감할 수 있는 선제 배상에 얼마나 많은 은행이 참여하는지가 관심사로 꼽힌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전일 발표한 ‘홍콩H지수 ELS 관련 검사 결과(잠정) 및 분쟁조정 기준(안)’은 판매사가 투자자 손실에 대해 최저 0%에서 최대 100%까지 차등 배상하는 걸 골자로 한다.
배상 비율은 판매사 요인을 최대 50%로 하고 투자자 고려요소를 45% 범위 안에서 가감해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고려되지 않은 사안이나 일반화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으면 기타 조정요인으로 10% 범위 안에서 한 차례 더 가감이 이뤄져 최종 산출된다.
일례로 만 80세 이상 고객이 예·적금 업무로 은행을 찾았다가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못하고 홍콩H지수 ELS 상품에 가입해 손실을 봤으면 판매사 요인과 투자자 고려요소를 모두 종합해 약 70% 수준의 배상 비율이 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과거 62회의 ELS 상품 가입과 1회의 손실 경험이 있는 50대 중반 B씨의 경우 설명 의무 위반과 내부통제 부실, 자료 보관 의무 위반 등의 판매사 요인이 가산되더라도 투자나 손실 경험, 가입 금액 등의 투자자 요소가 차감되면서 실제 배상 비율은 0%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산됐다.
금감원은 그동안 조사한 홍콩H지수 ELS 판매 및 투자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배상 비율이 20~60% 구간에 집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금감원은 이론상 100% 배상 또는 계약 무효 사례가 나올 가능성도 열어둔 상태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번 분쟁조정 기준(안)은 억울하게 손실을 본 투자자가 합당한 보상을 받으면서도 ‘투자자 자기 책임’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심사숙고해 마련했다는 점에 주목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발표한 홍콩H지수 ELS 배상 기준안은 비율 산정의 가이드라인 성격이다. 각 판매사들은 이를 토대로 최종 배상 비율을 결정하고 집행한다. 금감원은 대표사례 이외 분쟁 민원 건은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조정 결과에 따라 자율 조정 방식으로 처리할 계획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홍콩H지수 ELS 판매 규모는 39만6000좌에 18조8000억원 수준이다. 판매 채널별로는 은행권이 24만3000좌(15조4000억원)로 과반을 차지한다. 올해 들어 2월까지 만기 도래한 2조2000억원 중 손실금액은 1조2000억원(53.5%)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판매 규모가 가장 큰 은행권에선 금감원의 이번 발표가 당초 예상했던 범위에서 이뤄졌다고 평가한다. 다만 홍콩H지수 ELS 판매 규모가 워낙 큰 만큼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예상되는 배상액과 실적에 끼칠 영향 등을 계산하는데 분주한 모습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차등 방식인 건 미리 언지를 줬던 부분이고, 투자자가 짊어질 책임도 냉정하게 반영한 것 같다”며 “이제 각 회사에서 판매 유형별 배상 범위를 산정하고 배상금이 얼마나 발생할지 계산할 차례”라고 설명했다.
은행권이 금감원의 권고인 자율 배상(사적 화해)에 응답할지도 관심사다. 금감원은 이번 홍콩H지수 ELS 사태의 신속한 수습을 위해 선제적으로 배상한 판매사에 대해선 향후 과징금과 제재 수위를 경감해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은행권은 배상 기준안이 발표되기 전 가이드라인도 없는 상태로 배상에 나설 경우 투자자와의 혼란과 갈등이 불가피한 데다, 주주를 상대로 한 배임 우려도 있는 만큼 소극적 태도를 보여 왔다.
이제 가이드라인이 제시됐고 제재 감경이라는 ‘당근’도 유효한 만큼 자율 배상에 나서는 게 유리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다만 은행별로 판매 규모가 상이하고 배상액 산정과 최종 결정까지 소요되는 물리적 시간을 고려했을 때 이달 중 자율 배상 발표가 나오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은행권의 다른 관계자는 “배상 기준안이 이제 나왔기 때문에 배상을 언제부터 할지 말하는 건 시기상조”라며 “내부적으로 판매 사례별 책임 소재와 배상 규모를 따지고 검토할 게 쌓여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이사회를 거친 뒤 의사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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