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신재훈 칼럼니스트] 돈(지폐)이 소품이 아닌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한 술 더 떠 지폐 속 위인들이 모델로 등장하는 매우 자본주의적인 광고가 있다.
광고를 보기 전에 대한민국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자. 가장 큰 금액인 오만원 지폐에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만원 지폐에는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인물로 손꼽히는 세종대왕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든 조선의 왕으로 주로 알려져 있지만 천민인 장영실을 기용하여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 과학을 발전 시켰고 외교와 정치 그리고 국방과 음악에까지 수많은 업적을 남긴 최고의 왕이다.
오천원 지폐에는 퇴계 이황과 함께 성리학의 기틀을 다진 대학자 율곡 이이가 나온다. 천원 지폐에는 율곡 이이와 함께 조선 성리학의 대부로 추앙 받는 퇴계 이황이 나온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4종밖에 없는 대한민국 지폐의 반을 한 가족, 더 정확히는 어머니와 아들인 신사임당과 이이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에 발행된 오천원권에 율곡 이이가 등장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만한 일이지만 가장 늦게 발행된 지폐인 오만원권에 이미 오천원권에 나온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등장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이런 논란에 대해 신사임당을 오만원권의 인물로 쓴 공식적인 이유는 아들을 훌륭하게 키운 어머니의 위대함 때문이라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사실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만이 아닌 본인 자체로도 충분히 위대하다.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하던 유교국가 조선에서 문인과 화가로서 당당히 자신이 이름으로 인정 받았다.
굳이 한 가지를 추가하자면 아직도 남녀평등지수가 OECD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불평등국가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약간의 위로를 주기 위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이제 광고를 보자.
[피자헛: 피자 한 판 주세요 편]
오천원 지폐가 보이며 율곡 이이 선생이 치즈가 길게 늘어난 피자를 드신다.
Na : 피자헛 싱글 사이즈 피자를 오천원에
만원 지폐가 보이며 세종대왕께서 손으로 접어 피자를 드신다.
Na : 미디움 사이즈 피자를 만원에
만원 지폐와 오천원 지폐를 반씩 이어 붙인 실제 존재하지 않는 만 오천원 지폐 속에서 세종대왕과 율곡 이이가 함께 겸상을 하며 피자를 드신다.
Na : 라지 사이즈 피자를 만 오천원에 / 지금 가까운 피자헛 매장에서 만나보세요
세종대왕과 율곡 이이가 카운터 앞에서 “피자 한판 주세요”라고 말하며 광고가 마무리된다.
십 수년 전이었다면 꿈도 꿀 수 없었던 광고다. 대한민국 지폐는 광고에 나오면 안 되는 금지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어디 지폐뿐이랴, 우리의 자랑스런 태극기도, 영화 서울의 봄에 나오는 전두광의 머리를 닮은 사람도 광고에 나오면 안되던 시절이 있었다.
이 광고는 과감함을 넘어 파격에 가깝다. 지폐를 훼손(변형)하고 그것도 모자라 지폐에 등장하는 가장 존경 받는 위인들을 희화화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광고를 한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지폐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효과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추상적 숫자와 실제 돈이 주는 현실감과 임팩트의 차이라고나 할까?
백문이 불여 일견(百聞 不如 一見)이라는 말처럼 피자헛 광고와 배우 김영철이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미군과 딜을 하며 4달라를 외쳤던 명 장면을 패러디한 버거 광고를 직접 비교해 보면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재훈 프로필 ▶ (현)BMA 전략컨설팅 대표(Branding, Marketing, Advertising 전략 및 실행 종합컨설팅) / 현대자동차 마케팅 / LG애드 광고기획 국장 / ISMG코리아 광고 총괄 임원 / 블랙야크 CMO(마케팅 총괄 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