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KB·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금융지주는 올 3분기 누적 15조649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2% 감소했지만 여전히 수익성은 견고하다. 이들 회사가 3분기까지 걷은 이자 이익만 30조9366억원에 달한다.
최근에는 5대 시중은행의 평균 근로소득이 모두 1억원을 돌파했다는 현황 자료도 공개됐다. 매분기마다 조(兆) 단위 순이익을 쓸어 담으니 성과급도 두둑하게 지급했다. 회사가 경영 효율성 제고 차원에서 진행한 희망퇴직 신청자는 1인당 최대 4억원대의 퇴직금을 챙겼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실적이 성장하면 격려와 칭찬이 뒤따른다. 요즘 같은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도 저력을 보여줬다는 호평이 이어진다. 이런 성과를 일으키는 데 일조한 구성원들에게 이익을 나눠주는 것도 일상적인 일이다.
은행은 반대다. 돈을 잘 벌면 욕을 먹는다. 고금리에 올라탄 이자 장사로 손쉽게 이익을 얻었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입에서 나온 ‘종노릇’, ‘갑질’ 등의 표현은 은행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정부·정치권에서도 비슷한 논리의 압박성 발언이 쏟아진다.
서민들은 ‘은행 대출금리가 너무 올라 이자 부담이 커졌다’고 호소한다. 반면 은행들은 ‘시장의 기준이 되는 금리가 올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운다. 금융지주(은행) 실적이 발표될 때마다 이런 논쟁은 도돌이표처럼 이어진다. 요즘은 금리가 워낙 높다보니 ‘은행이 나쁘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사실 은행이 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건 제한적이라는 주장에 공감한다. 현재의 고금리는 중앙은행 긴축 기조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은행들이 국민들에게 잘 보이겠다며 대출금리를 내리면 통화정책 방향과 시장 질서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
시장금리는 내버려두고 ‘마진’ 성격인 가산금리를 낮추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지만, 은행의 이익(마진)을 깎는 게 금융시장 선진화에 도움이 될 지에 대해선 고민이 필요하다. 이익 추구 없이 대출 공급자 역할만 수행하면 금융의 질 역시 저하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은행에 배신감이 드는 건 역대급 실적보다는 그동안의 태도다. 이자 장사와 관련해서는 ‘주요국 대비 수익성이나 이익 규모가 크지 않다’고 열변을 토하지만, 반대로 성과급 등 내부 돈 잔치에 대해선 ‘다른 대기업도 그렇게 한다’는 식으로 여론 진화에 급급했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너무 관치(官治)에 익숙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정부 압박이 시작되면 마지못해 관련 정책에 동참하거나, 시늉만 내면서 파도가 가라앉길 기다린다. 규제 산업이라는 명분으로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요즘같이 금리가 높아진 국면에서 더더욱 수동적이다.
지난해 국내 은행들의 사회공헌 규모는 1조2380억원으로 나타났다. 서민금융도 포함된 집계다. 물론 이 규모가 작다고 보긴 어렵지만,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이 임직원들에게 지급한 성과급(약 1조3823억원)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는 은행들의 역대 최대 실적 행진으로 이자 장사 논란에 불이 붙은 시기였다.
최근 은행을 둘러싼 여론이 다시 악화되자 슬슬 서민금융 확대 발표가 나오고 있다. 이자를 캐시백해준다 거나, 대출 만기를 늘려준다는 식이다. 대통령·정부 압박이 시작되면 지원 정책 마련에 나서는 패턴은 이번에도 똑같다. 은행들의 사회적 책임 이행 의지가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꼭 충격 요법이 필요한 모양새다.
은행에 대한 지나친 악마화는 지양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다만 은행들도 그동안 ‘약탈적’ 이미지가 굳어진 이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서민들이 낸 이자로 곳간을 채우고, 서민금융 지원에 소극적으로 나서는 건 비판받아 마땅하다. 은행들이 생명으로 여기는 신뢰 측면에서도 부정적이다.
이제 은행들도 분위기 반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매번 등 떠밀려 지원에 나서는 장면이 되풀이되면 진심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 역할과 별개로 은행 스스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정진해야 한다. 은행들이 호실적을 낼 때 비판과 압박보다는 칭찬과 기대가 우선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