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 (98)] 국방상호조달협정(RDP), 방산 FTA로 볼 수 없어… 정확한 내용 이해가 선행돼야

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3.10.24 15:41 ㅣ 수정 : 2023.10.25 06:45

RDP 체결 28개국 협정서 분석한 책 출간…향후 협상력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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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방위사업청 또한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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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HD현대그룹글로벌R&D센터(GRC) 세미나실에서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최기일 상지대 교수, 유형곤 국방기술학회 정책연구센터장 등 방산 전문가들이 모여 박태준 비상계획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HD현대중공업]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해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 방산 파트너십 강화 차원에서 국방상호조달협정(RDP) 체결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1년 5개월의 시간이 지나면서 범정부 RDP T/F가 4차례 개최돼 상당 부분 논의가 이뤄지고 미국과 실무적인 의견 교환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외견상 아직 별다른 진전은 없는 상태이다.

 

RDP 체결한 28개국 계속 유지…자국 방산시장 잠식당하는 추세 없어

 

그런데 최근 ‘미국의 RDP와 한국의 방산수출전략’이란 책이 발간됐다. 저자는 방위사업청에서 육·해·공군의 대외군사판매(FMS) 사업을 장기간 담당한 박태준 HD현대중공업 비상계획관이다. 예비역 육군 대령인 그는 현역 시절 미국 국방획득대학 FMS 과정을 이수했고, 주미 군수무관단에서 3년(2011∼2014년)간 근무했으며, 귀국 후 2015년 ‘미국의 FMS와 한국의 방산수출전략’이란 책도 집필했다. 

 

그는 이번 책에서 1963년 이후 RDP를 체결한 28개국의 모든 협정서를 분석한 결과, 세계 방산수출 15위 이내 국가 중 미국과 RDP를 체결하지 않은 나라는 중국, 러시아, 한국 등 3개국이었고, 28개국이 모두 현재까지 RDP를 종결하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처럼 RDP가 자국의 방산시장을 잠식하는 부작용이 있었다면 28개국이 계속 유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저자는 RDP를 체결한 국가 중 향후 글로벌 방산시장에서 한국이 경쟁해야 할 프랑스·독일·이탈리아·영국·스페인·이스라엘 등 6개국을 대상으로 정량적 분석도 했는데, RDP 체결만으로 방산수출이 급증하거나 자국 방산시장이 잠식당하는 추세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RDP가 FTA처럼 자유무역의 활성화를 통한 경제적 이익이 목적이 아니라 우방국과의 국방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안보협력 수단으로 활용됐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미국, 제한된 범위 내 경쟁하도록 통제해 방산수출 증가 크지 않아

 

이 책에서는 또 RDP 체결로 미국의 방산시장이 모두 개방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 국방부가 제한된 범위 내에서 RDP 체결국들이 경쟁하도록 통제하고 있어 RDP 체결이 미국 방산수출의 획기적 증가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는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미국은 2021년 국방조달의 2.2%만 RDP 체결국으로부터 구매했다. 이는 RDP를 체결해도 미국 방산시장 진출로 인한 우리 방산업체의 이익이 기대처럼 크지 않을 것이란 얘기이다.

 

게다가 저자는 “RDP를 체결해도 미국 방산업체와 동등한 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산 방산물자와 가격에서의 차별만 제거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며, 미국 방산시장 진출을 제한하는 모든 규제를 해소해 주지는 않는다”며 “RDP와 무관하게 Jones Act, ITAR 등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미국 정부가 통제할 수 있어 체결 전에 철저한 확인과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방산수출 4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현재 중저가 위주에서 첨단무기체계 위주로 수출구조가 변화되도록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하며, 그 첫걸음으로서 RDP를 활용해야 한다”고 하면서 “일본은 2016년 RDP를 체결하고 미국과 SM-3 탄도탄 공동연구개발을 본격화했고, 2023년에는 후속 탄도탄 요격 미사일 공동연구개발에 합의하는 등 활발한 방산협력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자, “조속히 체결해 미국과 기술교류 및 공동연구개발 본격화” 주장

 

저자는 “RDP 기본협정서는 미국과 체결국 간에 효과적인 방산협력을 강화하고 공동연구개발 및 생산을 촉진하며 국방조달의 활성화를 위한 협의와 소통의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또 “법적으로 강제된 구체적 의무가 발생한다기보다 방산협력의 틀을 마련하기 위한 포괄적인 약속에 가깝다”라면서 “조속히 체결해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에서 미국과 기술교류 및 공동연구개발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 따르면, RDP 협정서는 미국과 체결국의 법·제도 테두리 안에서 작동되도록 설계돼 양국 간 충돌이 발생하면 양국의 법이나 제도가 우선한다. 하지만 외부의 도움 없이 당사국끼리 해결하도록 규정해 미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여지는 있다. 하지만 RDP는 체결국이 원하면 서면으로 상대방에게 사전 통지하고 승낙 없이 종결할 수 있으며, 5년 또는 10년의 유효기간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종결할 수도 있다.  

 

이처럼 저자는 28개국의 RDP 협정서를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정부가 RDP를 FTA와 같은 것으로 오해해 체결을 미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하면서 “K-방산의 놀라운 성과를 글로벌 방산시장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미국시장을 반드시 개척해야 하며, RDP 체결은 미국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빗장을 푸는 열쇠와 같아 어떤 형태이든 현재보다 속도를 내서 체결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 신중한 추진 주문…현행 국내 법규 개정 사안 될 수도

 

이런 저자의 의견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28개국 협정서에 나타나지 않은 쟁점 사항이 있을 수 있고, 한국 방산시장의 법·제도 특징이 다른 나라들과 달라 전체적으로 큰 그림에서 득실을 따져봐야 한다”면서 “실제 한미간에 논의되는 주요 쟁점과 최근 체결한 타 국가들이 미국과 논의한 내용 등을 잘 살펴보며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추진이 필요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일각에서는 “RDP를 체결하면 미국 방산시장에서 우리 업체가 미국업체와 경쟁할 때 가격 불이익을 받지 않으나 그 대신 국내 방산시장에서 미국업체를 국내업체와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므로 현행 국내 법규를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국이 지금까지 RDP를 체결하지 못한 이유는 방산 FTA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마치 우리 방산시장을 모두 개방해야 하는 것처럼 국내업체들이 인식하게 만든 것이 일조했다고 본다. 게다가 RDP 체결에 관한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는 자료도 부족했고, 전문가들조차 서로 의견이 달라 한-미 RDP가 체결되면 어떤 변화가 발생할 것인지 알 수 없어 불안감이 앞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한 내용과 일부 전문가들이 제기한 의견을 토대로 판단해볼 때 RDP는 FTA와는 다른 측면이 있는 데다, 과거에 체결한 국가들과 한국의 현재 상황은 유사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저자가 분석한 내용과 전문가 의견들이 우리의 협상력을 높이는 수단은 될 수 있으므로 이를 잘 활용함으로써 상호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방산협력의 틀인 RDP 체결 협상이 원만히 진행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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