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황수분 기자] 개미(개인투자자)들은 한탄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홍콩 소재의 BNP파라바와 HSBC 2곳의 무차입 공매도 사실이 포착되면서다.
적발된 금액만 560억원에 달했다. 확인된 금액이라는 점에서 확인되지 않은 금액을 포함하면 액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그간 합리적인 의심으로 남아있던 것과 달리, 불법 공매도가 관행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개미들은 터질 게 또 터졌다는 반응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최근 한 투자 커뮤니티 등에는 “한국에서 주식하면 패가망신한다”, “기관과 외국인이 개미 등쳐먹기 딱 좋은 환경이다” 등 부정적인 글들의 수위도 세졌다.
급기야 정치권은 물론 사법계까지 나서 공매도를 본격 손질하겠다고 나섰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은 불법 공매도 적발 시, 외국에 거주하는 투자자라도 국내에서 형사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지난 17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은 "불법 공매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분노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근 불법 공매도가 적발된 IB 관련 "과거에 있었던 금액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을 금전적으로 책임지도록 하겠다"며 "형사처벌도 가능할 거 같은데, 외국에 있는 사람(임직원) 끌어와서 처벌할 수 있게 하겠다"고 답했다.
공매도는 ‘없는 것을 판다’는 것으로,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약세가 예상되는 종목을 매도해 이로 인한 차익을 노린다. 즉 주식을 빌려와 매도 주문을 한 뒤, 예상대로 주가가 하락하면 차익을 얻는 방식이다.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적 요소 탓에 공매도를 바라보는 투자자의 인식은 곱지 않다. 주가 급락 등 시장 혼란을 유발해 한때 공매도가 국내에서 금지되기도 한 이유다.
게다가 개미들은 사실상 공매도를 활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할 만큼 불신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개미들한텐 불공평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수수료도 비싸고 두 달 안에 갚아야 해서 개미들은 “기간만이라도 늘려달라”고 끊임없이 호소한다.
반면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은 공매도가 꿀로 통한다. 사실상 기간 제한도 없고, 규제도 적다. 특히 외국인의 놀이터면서 시장을 좌지우지한다.
그렇다 보니, 공매도 거래대금 규모로 따지면 개인투자자들 비중이 1~3%대인데 비해 외국인·기관이 나머지 전체를 차지할 정도다. 개미들은 공매도를 '폐지해달라'는 청원에도 꾸준히 올린다.
하지만 공매도는 주식시장이 원활히 움직이도록 하는 순기능도 있다. 고평가된 주식을 제자리에 돌려놔 거품을 막는다거나 유동성을 증가시킨다.
이 금감원장도 국감장에서 "외국인 투자자 등 해외 신뢰를 얻기 위한 제도의 선진화가 무조건 필요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며 "다만 국내 기관과 개인투자자 등 시장참여자 모두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이 지점이 너무 크게 신뢰가 손상돼 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견"이라고 강조했다.
공매도는 기관·외국인뿐만 아니라 개미들에게도 순기능이 되려면 투자의 신뢰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핵심은 우리나라 공매도 제도는 개인 접근을 배제한다는 인식을 지워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제 현행 공매도 자체를 제대로 뜯어볼 때가 됐다. 하지만 전산시스템을 비롯해 당장 제도 개선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 원장 역시 그간 시장에서 꾸준히 요청이 제기된 공매도 제도 개선 조치에 대해선 '더 고민이 필요하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문제의 본질은 공매도를 악용해 미공개 정보로 부당이득을 취한 세력들이다. 따라서 정당한 거래 방식인 공매도 제도를 무작정 불공정 거래 수단으로 옭아매 폐지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이 원장은 “공매도를 덮을 수도 없고 걷을 수도 없는, 어떻게 보면 약간 병목에 갇혀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좀 더 열린 마음으로 현황을 점검하고 개선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매도는 어디까지나 일반 투자자들의 공감이 필요한 제도다. 공매도는 외국인과 기관이 합쳐 개미들과 싸우는 대결이 아님을 정부는 고려해 정책 방향을 정해야 한다.
공매도가 한국 증시를 짓누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원인이라고 꼬집기만 할텐가. 우선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바로 세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