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뱅 출현에 디지털 경쟁 격화···시중은행 전환엔 “글쎄”
지방은행의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다. 경기 부진에 따른 기업들의 업황 악화가 지방은행 건전성까지 전이되고, 인터넷전문은행과의 경쟁에서도 고전하고 있다. 시중은행 전환을 통한 경쟁력 제고 방안의 실효성에는 의문이 붙는다.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응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뉴스투데이는 국내 지방은행이 처한 현재 상황과 위기 돌파 전략을 3회에 걸쳐 진단한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최근 은행권 여·수신 경쟁에서 지방은행은 ‘샌드위치 신세’에 놓였다. 대형 시중은행과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비대면 금융으로 무장한 인터넷전문은행(인뱅)의 추격이 매섭다. 일부 지표에선 인뱅이 지방은행을 추월한 사례도 나타난다.
모바일뱅킹 활성화로 금융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오지만 지방은행들은 영역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금융시장에서 자본으로 압도당하는 데다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신사업 투자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일부 지방은행은 금융당국의 지원사격으로 시중은행 전환을 추진 중이다. 전국구 은행으로 덩치를 키워 시장 경쟁 체제를 흔들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은행권 안팎에선 영업 집중도 분산과 시장 정착 실패 등의 우려도 제기된다.
20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국내 은행 총수신에서 BNK부산·BNK경남·DGB대구·전북·광주 등 5대 지방은행 점유율은 7.9%로 집계됐다. 같은 기준 총여신 점유율은 7.4%로 나타났다.
올 1분기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총수신과 총여신 점유율은 각각 73.5%, 65.6%에 달한다. 케이·카카오·토스 등 인뱅 3사의 경우 총수신은 2.0%, 총여신은 3.0%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지방은행들은 ‘홈그라운드’인 지역에서 비교적 양호한 여·수신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만 전국으로 범위를 넓히면 성적표가 초라하다. 압도적 자본을 가진 5대 시중은행과의 격차 확대는 차치하더라도 인뱅들의 추격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점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실제 지방은행의 여·수신 점유율 하락은 인뱅이 처음 출현한 2017년부터 본격화했다. 100% 비대면 체제인 인뱅 출현 이후 금융 거래의 물리적 제한이 해소되자 고객 이탈도 본격화했다. 5대 시중은행도 일부 타격은 있었으나 ‘충성 고객’ 방어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최근 경영 실적에서는 인뱅이 지방은행을 추월하는 사례도 나타난다. 카카오뱅크의 올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1838억원인데, 이는 경남은행(1613억원)과 광주은행(1416억원), 전북은행(1025억원)보다 많은 규모다. 업력 차이를 고려했을 땐 뼈아픈 결과다.
지방은행의 수익성 둔화는 복합적 요인이 맞물려 나타났다. 일단 영업의 근간이 되는 지역 경기 부진이 결정적이다. 대출은 늘어나고 있지만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잠재 부실 우려가 잇따른다. 여기에 시중은행들의 지방 침투가 가속하면서 리테일(소매금융)이나 지역금고 같은 ‘밥그릇’마저 뺏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 디지털 전환이 금융권 화두로 떠오르면서 지방은행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그동안 거점 지역에 한정됐던 영업 범위가 넓어질 것이란 기대가 나오지만, 한편으로는 모바일 금융 경쟁에서 밀리면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모바일뱅킹이 고객 편의성이나 금융 접근성을 높인다는 데 모두 공감하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정비하고 고도화하는 것”이라며 “디지털 금융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으면 오프라인 점포도 순차적으로 줄여나가지 못 한다. 고정비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모바일뱅킹 고도화는 여·수신 확대를 위해서라도 필수적인 과제다. 다만 지방은행들의 속도는 경쟁 은행 대비 더디다. 영업망 자체가 좁다보니 유입되는 고객 수도 작기 때문이다. 디지털 채널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업계에선 아직 신사업 투자 여력이 부족한 상황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막대한 자본력으로 밀고 들어가는 대형 시중은행들과 달리 지방은행들은 당장 수익성 둔화가 우려가 앞선다. 디지털 혁신을 이끌 정보기술(IT) 인재 확보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한 지방은행의 관계자는 “디지털 쪽은 그룹사 차원에서 투자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고 있어 과거보다 (투자) 규모가 커졌다. 그래도 여전이 IT 관련 인재풀이 넓지 않은 건 고민”이라며 “글로벌 경기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디지털 말고는 여타 신사업에 투자할 상황이 아니고 여력도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양극화가 심화되자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추진 중이다. 지방은행 체급을 키워 5대 시중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를 허물겠다는 구상이다. 자본 규모와 지배구조 요건 등을 모두 충족한 대구은행이 첫 번째 후보다.
대구은행은 시중은행으로 전환할 경우 영업망이 늘어나는 건 물론 조달금리 하락에 따른 금리 경쟁력도 제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방 이미지를 떼기 위해 사명 변경도 추진 중이다. 본점은 그대로 대구에 두면서 지역 경제와의 상생을 이어가겠단 방침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대구은행에 대한 시장의 전망은 엇갈린다. 디스카운트(저평가) 해소 등 긍정적 효과는 분명하지만, 당초 취지였던 과점 체제 해소는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무리한 영역 확대 과정에서 기존 지방 고객들과의 네트워크 약화 같은 부작용이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구은행의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 전환은 TFT에서 준비 중이며 인가 제출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시중은행과 정면 대결하기 보다는 시니어기업금융영업전문가(PRM) 제도 등을 통해 수도권 영업을 공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