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이 역대 최대인 1068조원까지 불어나자 금융당국은 ‘주범’ 색출에 나섰다. 최근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취급을 늘린 게 가계대출 급증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인데, 제도적 문제보다는 결국 ‘은행 탓’으로 돌리는 모양새다.
올 초까지만 해도 금융당국은 고금리에 따른 차주들의 부담을 덜어주라며 대출금리 인하를 독려했다. 중앙은행의 긴축 기조와는 역행하는 요구였다. 이후 가계대출 증가라는 풍선 효과가 나오자 되레 은행들이 과도한 영업을 하고 있다며 문제 삼고 있다.
가장 난감한 건 인터넷전문은행(인뱅) 업계다. 신용대출 중심의 여신 포트폴리오 운용에 따른 건전성 악화가 대두되면서 담보대출로 무게추를 옮기고 있었는데, 최근 주담대 증가에 큰 영향을 끼친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인뱅 3사 중 가장 덩치가 큰 카카오뱅크의 6월 말 기준 주담대 잔액은 17조3220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30.3% 증가했다. 케이뱅크의 주담대 잔액 역시 같은 기간 61.4% 늘어 3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토스뱅크는 아직 담보대출 상품이 없다.
인뱅의 주담대 증가 주범론은 두 자릿수 증가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업계에선 잔액 기준 점유율을 봐야 한다고 항변한다. 6월 말 기준 은행권 주담대 잔액은 총 814조8000억원으로 카카오·케이뱅크의 비중은 2.6% 수준이다.
특히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잔액만 거의 680조원인 걸 고려하면 인뱅을 직접 비교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 최근 인뱅 주담대가 증가세인 건 맞지만 역대 최대 가계대출의 원흉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금융당국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금융당국은 인뱅의 비대면 절차 등 대출 현황을 점검하겠다며 직·간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한 번 도마에 올린 이상 어떤 방식으로든 감독·지도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인뱅의 주담대 확대에 제동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인뱅들도 최근 중저신용(중금리) 대출에 소홀했다는 지적에 대해 자성하고 정진할 필요가 있지만, 인위적으로 주담대 취급을 억누르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인뱅들 역시 위험도가 있는 대출(중금리)을 위해선 안정적 대출(주담대)이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5대 시중은행 과점 깨기’에도 큰 도움은 안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메기’인 인뱅을 시중은행 대항마로 키우겠다는 구상인데, 성장세에 탄력이 붙자마자 울타리를 치는 꼴이다. 인뱅이 외형을 확대하지 않는 이상 시중은행과 겨루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동안 인뱅들은 비대면 체제 특성상 들어가지 않는 인건비·임대료 등을 아껴 대출금리 경쟁력을 높였다. 앞으로 주담대 취급에 제한이 생기면 대출 문턱을 높일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피해는 고객에 향한다. 은행의 이익 역시 둔화될 수밖에 없다.
인뱅의 영향력이 갈수록 확대되는 만큼 책임도 무거워져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다만 시장의 문제를 특정 업계에 몰아주는 건 지양해야 한다. 섣부른 시장 개입에 대한 경계심만 키운 채 소득 없이 끝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인뱅들에 혁신 선도자라며 높게 평가하더니 시장 문제가 누적되자 주범 프레임을 씌우고 압박하고 있다. 뚜렷한 지원책도 내놓지 않고 성장을 가로막는 사이 시중은행의 과점 체제는 더 고착화되고 있다.
규제 산업인 은행권에서 금융당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금융당국 수장의 말 한마디가 금융시장을 뒤흔든다. 그때그때 처방법이 달라지는 땜질식 대책만 내놓으면 경쟁 촉진과 금융시장 선진화 정책은 다시 서랍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문제는 금융권이 합심해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이 과정에서 시장 참여자들에 대한 차별은 없어야 한다. 가뜩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수직으로 세울 의도가 아니라면 무리한 인뱅 때리기보다는 정책 점검에 따른 세밀한 대응 방안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