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15년···한 부서 눌러앉은 은행원들, 횡령 유혹 노출

유한일 기자 입력 : 2023.08.03 07:48 ㅣ 수정 : 2023.08.03 07:48

은행권 대형 횡령 사태 공통점은 장기 근무
경남은행 횡령 직원 15년 동안 한 부서에만
우리은행 사례도 10년 달해···순환인사 부재
“전문성 필요” 한 자리 말뚝 박는 은행원들
당국 제도 개선 나섰지만 개선 효과 미흡해
장기 근무자 핀셋 관리·제재 강화 등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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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BNK경남은행 지점의 모습. [사진=BNK경남은행]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BNK경남은행에서 발생한 500억원대 횡령 사태 원인에 대해 금융당국은 ‘장기 근무’를 지목하고 있다.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순환 근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은행원이 약 15년 동안 한 부서에서 근무하며 고객 돈을 빼돌리는 걸 방치했다는 판단이다. 

 

앞서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700억원대 횡령 사건 때도 순환 근무 부재가 지적됐지만 은행권의 개선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유사한 형태의 금융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는 만큼 은행권의 부실한 내부통제가 다시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 경남은행 15년·우리은행 10년···‘장기 근무’ 방치한 은행, 횡령 규모 키워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경남은행 투자금융부 소속의 한 직원이 총 562억원의 자금을 횡령한 사실이 자체감사로 드러났고, 금융당국 조사와 검찰 수사가 전방위로 진행되고 있다. 횡령한 돈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상환 자금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직원은 부실화된 PF 대출에서 수시 상환된 원리금을 가족 등의 계좌에 이체하고, PF 시행사 자금 인출 요청서 등을 위조해 가족이 대표로 있는 법인계좌로 이체한 것으로 금융당국 조사 결과 드러났다. 

 

문제는 이 직원이 2007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약 15년 동안 투자금융부에서 PF 업무를 담당했다는 점이다. 경남은행이 특정 부서 장기 근무자에 대한 순환 인사 원칙을 지키지 않았고, 고위험 업무에 대한 직무 분리도 하지 않은 게 횡령 규모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남은행의 한 관계자는 “해당 직원은 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을 회피하기 위해 사문서를 위·변조하는 등 불법적이고 일탈적인 수단을 사용했다”며 “향후 있을 수사기관의 조사에도 적극 협조해 사태 수습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의 728억원 규모 횡령 사건도 직원의 장기 근무가 주효했다. 우리은행 본점의 한 차장급 직원은 2012년 6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기업개선부에서만 근무하며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계약금을 빼돌렸다. 8년(2012~2020년)에 걸쳐 횡령이 벌어졌지만 우리은행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은행권에선 크고 작은 횡령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양정숙 무소속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은행 횡령 사고는 111건, 횡령액은 약 944억원으로 조사됐다. 이번 경남은행까지 포함하면 6년간 은행 횡령액은 15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 당국 개선 주문에도 횡령 사고 잇따라···‘전문성 요구’에 붙박이 

 

통상 은행들은 2~4년 정도 한 부서에 몸담았던 직원을 장기 근무자로 보고, 다른 부서나 지점으로 이동시키는 ‘순환 근무 제도’를 운용 중이다. 다만 이 제도는 각 은행 내규에 있을 뿐 법제화는 되지 않아 강제성은 없다. 은행들이 내규에 기반해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수준이다. 

 

수백억원대 횡령 사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순환 근무 부재에 대해 은행권은 ‘전문성’ 요구가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한다. 장기 근무로 쌓은 업무 지식과 영업 네트워크 등을 극대화하기 위해 ‘붙박이’로 눌러앉는 경우가 있다는 뜻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CIB(기업투자금융)나 자금 쪽에선 업무 전문성과 연속성을 이유로 장기 근무하는 사례가 있고, 아예 그런 조건(장기 근무)으로 입행하는 경우도 있다”며 “장기 근무자들은 매번 인사철 때 유지 필요성을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객 돈을 다루는 은행은 더 높은 수준의 내부통제와 윤리의식이 요구되지만 잇따른 횡령 사고로 고객 신뢰는 추락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내부통제 개선·강화를 꾸준히 주문하고, 각 금융사의 자구 노력도 이어지지만 눈에 띄는 개선 효과는 나오지 않는 흐름이다. 

 

금융당국이 지난 6월 발표한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 개선’ 방안에 따르면 영업점은 3년, 본점 부서는 5년을 초과해 근무하는 직원 중 5% 이내 또는 50명 이하는 장기 근무자로 관리될 수 있다. 장기 근무 승인권자는 인사 담당 임원이 맡는다. 

 

이 제도는 2025년 말부터 시행되는데, 여전히 불가피성에 따른 장기 근무자를 일정 규모 둘 수 있다는 점에서 ‘핀셋 관리’ 필요성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내부통제의 시스템적 실패가 발생할 경우 경영진에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지만, 이를 골자로 한 법안은 아직 입법 전이다.  

 

한편 금감원은 이번 경남은행 횡령 사태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조치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이번 금융사고가 한 직원의 일탈 외에도 경남은행 내부통제 실패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실태 전반을 들여다볼 계획이다. 

 

금감원은 “그간 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를 개선토록 지속적으로 지도·감독하고, 제도 개선을 강화해왔던 만큼 이번 금융사고와 관련해 내부통제 실패에 책임이 있는 관련 임직원에 대해서도 단호하고 엄정하게 조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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