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40년, 사라지는 미래(3)] '남혐·여혐' 깊은 불신과 증오…저출산 부추기는 젠더갈등
강륜주 기자 입력 : 2023.06.22 13:38 ㅣ 수정 : 2023.09.14 15:28
대한한국 저출산 근본원인 '젠더 갈등'이라는 분석 나와 젠더(성) 평등 수준 낮은 국가 저출생 영향 미쳐 청년 의견 수렴해 지난 정책의 기능·과업 중심 역할 조정 필요
대한민국은 1984년 합계출산율 1.74명을 기록한 이래 40년째 저출산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며, 2022년에는 역대 최저치인 0.78명을 기록했다. 출생아 수 감소는 학령인구‧병역자원‧생산인구‧총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로 이어진다. 정부는 저출산에 대응하기 위해 2006년부터 해마다 수십조원을 투자해왔으나 출산율 하락은 반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에 뉴스투데이는 저출산 정책의 진단과 출산율 제고를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분석해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강륜주 기자]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한 한국의 저출산 근본원인이 '젠더 갈등'이라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지난 4월 '한국인의 엄마가 파업한다: 동아시아 호랑이의 멸종 위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해당 보도에서 "한국의 저출산 주요 원인은 남녀 불평등과 직업 환경에서의 차별"이라며 "남녀 갈등이 심해지면서 많은 여성이 아기 제조 기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출산 파업을 하고 있다면서 결국 성평등이 낮은 출산율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미국의 시사주간지 '디애틀랜틱' 또한 '한국에서 성별이 가장 날카로운 사회적 단층'이라는 칼럼을 통해 한국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불신하고 증오하는 것이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처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갈등'이라는 말에 숨겨진 구조적 '불평등'을 직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 젠더 갈등, 저출산에 미치는 '이유' 대체 뭐길래
우리 사회 젠더 갈등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젠더 갈등은 2014년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지난 2015년부터 본격적인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남초·여초 커뮤니티에서 비롯된 비생산적 온라인 소통과 정치권 성별갈라치기 등은 젠더 갈등의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이밖에 △언론의 선정적 보도 △고정된 성역할 유지 △성차별 해소 정책 미흡 △청년 삶의 불안정 △남녀 간 취업 경쟁 등도 청년층의 젠더 갈등의 원인으로 비쳐졌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젠더 갈등이 빠르게 확산돼 국내 저출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관련 연구자료에 따르면, 여성의 자녀 출산 의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비율이 남성에 비해 두드러지게 높다. 여성의 삶에서 결혼과 출산이 중요하지 않다고 답한 여성은 53.2%로 남성(25.8%)의 2배 이상의 비율을 차지했다.
이는 여성들 사이에서 '독박 육아와 가사노동에 매이는' 등의 구조적 문제가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반면, 비교적 결혼과 출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성도 육아로 인한 자녀 양육·교육 비용 등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는 성역할 고정 관념에 유교적 인식이 더해지면서 이러한 젠더 갈등이 저출산에 미치는 하나의 원인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젠더(성) 평등과 출산율의 관계에 대한 실증' 보고서에 따르면, 젠더 평등 수준이 높고 일·가정 양립의 가능성이 큰 사회에서는 출생률이 반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젠더 평등 수준이 낮은 국가에선 낮은 출생률이 지속됐다.
이는 젠더 갈등이 출산율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관계자는 "기존의 논의들은 출산율의 전반적인 하락 추세를 설명 하기에 유효하나, 반등 현상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며 "출산율의 저하와 반등을 일관된 논리로 설명해 온 '젠더평등' 관점이 최근 주목받고 있으며, 그 설득력이 점차 더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 더 이상 '문제'로 인식되면 안되는 저출산…해결 방안은
대한민국 정부와 사회기관은 저출산 근본 원인 젠더 갈등 해결을 위해 다양한 법·제도를 실시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양성평등기본법, 성별영향분석평가법, 성폭력방지법 등의 법적 기반이 마련돼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또 여성가족부에선 양성평등기본법에 근거해 2015년부터 2022년까지 1차, 2차에 걸쳐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도 시행했다. 이와 함께 오는 2027년까지 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또한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는 지난 4월 '청년젠더공감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국민통합위는 지난 5월 공모전도 열었다. 해당 공모전은 청년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젠더 갈등의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고 제도적·정책적 개선 방향부터 문화·인식개선 활동 아이디어까지 청년들이 바라는 해결 방안을 폭넓게 모색하고자 했다.
다만 이러한 정책은 제재 방안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면서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반발'과 '페미니즘의 대중적 확산' 등 젠더 갈등을 더욱 초래하고 있다.
젠더 갈등 완화 정책을 개선하기에 앞서 청년 다수는 먼저 성차별 고정관념으로 인한 젠더 갈등 완화를 제안했다. 조기 성평등 교육 등 청년들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 남녀 간 인식 차이를 좁혀나가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관계자는 "단지 저출산을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면 국가가 발전한다는 식의 담론은 더 이상 시대 상황에 맞지 않다"며 "이는 개별 시민의 거부감만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성평등 정책이 여성과 남성에게 고루 혜택을 주는 정책이라는 의미에서 벗어나려면 대상이 아니라 기능과 과업을 중심으로 성평등 정책 추진 기구의 역할과 기능을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