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뉴스] 이재용 회장, 일본·중국 방문에 '차별화 행보' 보인 이유는

전소영 기자 입력 : 2023.03.28 05:00 ㅣ 수정 : 2023.03.28 06:28

이재용 회장, 한·일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과 중국발전포럼(CDF) 참석
이 회장, 일본과 '美 칩스법'에 대한 한일 공동 방안 모색 검토
삼성전자-소니, 자율주행차량용 고성능 반도체 분야도 협력 강화
중국 겨냥한 '칩스법'에 따라 이 회장 중국내 사업 행보 제한적
중국내 반도체 생산 늘지 않으면 공장시설 기술 업그레이드 가능
전장용 MLCC 생산공장 방문해 현지시설 살피며 '미래먹거리' 점검
이 회장, 다음달 방미 기간에 칩스법 관련한 향후 사업전략 그림 그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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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기 중국 텐진공장 점검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 = 삼성전자]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에도 분주한 해외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재용(55·사진) 삼성전자 회장의 최근 출장지 두 곳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 ‘중국’이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 17일 일본 출장에 오른데 이어 23일에는 중국으로 향했다. 공식 일정은 한·일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과 중국발전포럼(CDF) 참석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 규제와 관련한 이들 국가들과의 협력에 더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이 회장, '美 칩스법' 한-일 공동 대응 가능성 열어놔

 

이 회장은 17일 일본 도쿄 게이단렌 회관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해 한일 주요 경제계 인사들과 양국 관계 정상화를 반기며 상호 투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주목받은 화두는 미국 반도체 보조금과 관련한 한일 양국의 협력 여부였다. 이에 앞서 일본은 2019년 7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한국에 대해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불화폴리이미드 등 반도체 소재 3개에 대한 수출 규제를 단행했고 한국은 이에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해지 통보로 맞대응해 양국은 파국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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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 참석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 = 연합뉴스]

 

한국은 일본과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을 두고 밀접한 관계에 있어 이에 따른 영향이 불가피했다. 규제 이전인 2018년 기준 한국이 3개 품목에 대한 일본 의존도가 포토레지스트 93.2%, 불화 폴리이미드 44.7%, 불화수소 41.9%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은 일본 의존도를 낮추고 소재 국산화 등 공급망 다변화에 나섰다. 그 결과 포토레지스트의 일본산 의존도는 2018년 93.2%에서 2022년 77.4%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불화수소는 41.9%에서 7.7%로  줄었고, 불화폴리이미드는 44.7%에서 33.3%로 낮아졌다. 

 

3년 새 의존도가 눈에 띄게 줄기는 했지만 포토레지스트와 불화폴리이미드 등은 여전히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비중이 적다고 보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소재와 함께 반도체 생산 공정에 활용되는 장비도 일본 의존도가 높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반도체용 레이저 절단기나 웨이퍼 절단기 등 관련 장비는 일본으로부터 90% 이상 들여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수출규제 조치는 한국 기업은 물론 대한(對韓) 수출이 줄어든 일본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한일 간 관계회복은 양국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했다. 이에 따라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수출규제에 대해 제기한 국제무역기구(WTO) 제소를 철회하고 한일 수출관리 정책대화 등을 통해 긴밀하게 논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양국 간 관계에 다시 파란불이 켜지면서 한국 기업들도 일본과의 우호적인 협력 관계에 물꼬를 터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자국 경제와 안보를 최우선으로 한 반도체과학법(Chips Act, 이하 칩스법)을 추진하면서 영향권에 있는 국가 간 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용 회장도 이에 공감하듯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에 한국과 일본이 공동 대응할 가능성에 관한 질문에 “살아보니까 친구는 많을수록 좋고 적(敵)은 적을수록 좋다”고 답했다. 이는 일본과 관계가 계속 우호적으로 이뤄질 경우 공동 대응할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미 사업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고 혹은 그 관계를 더 넓혀 서로 윈윈하기 위해서라도 이재용 회장의 일본행은 중요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현재 삼성디스플레이는 일본의 대표 기업 소니에 퀀텀닷(QD)-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공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요시다 겐이치로 일본 소니 회장이 지난 6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했다. 이날 요시다 소니 회장과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자율주행차량용 고성능·대용량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협력 방안을 논의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려 양사 간 협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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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기 중국 텐진공장 점검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 = 삼성전자]

 

■ 이 회장, 美와 반도체 패권 다투는 중국에서 '온도차 행보'

 

일본만큼 주목받은 이 회장의 행선지는 중국이다. 미국 칩스법 추진의 결정적 이유이자 법이 본격 실행되면 협력관계를 유지하기 녹록지 않은 국가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칩스법은 미국·일본·한국·대만 등 세계 주요 반도체 국가간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사실상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고안해낸 법이다. 이에 따라 칩스법 보조금 지급 기준이 공개되기 이전부터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우려의 시각이 커졌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반도체법 지원금이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용도로 사용되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의 세부 규정안을 발표했다. 규정안에 따르면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실질적으로 확장’(material expansion)하면 보조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 

 

첨단 반도체는 생산능력 5% 이상 확장 금지, 이전 세대의 범용(legacy) 반도체는 생산능력 10% 이상 확장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여기에서 첨단 반도체 기준은 28나노미터공정(nm) 미만 로직 반도체와 18나노미터공정(nm)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등이 포함된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 공장을 가동 중이다. 시안 공장은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 반도체 대부분이 미국 규제에 포함되는 셈이다. ‘실질적으로 확장’은 양(量)을 기준으로 해 반도체 공정 기술 고도화는 포함되지 않은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에 따라 생산량이 증가하지 않는다면 중국 공장 시설을 기술적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미국이 지난해 네덜란드와 일본 등에 첨단 반도체 생산 장비에 대한 중국 수출 제한을 요청했고 이들 국가들이 수락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한국 반도체 기업은 반도체 장비 상당 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해 들여오고 있는데 앞으로는 첨단 생산장비를 중국에 들여오기 어렵게  된 셈이다. 

 

미국과 중국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중간에 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어느 편에도 가까이 설 수 없는 위치에 놓였고 이는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은 중국 방문 기간에 대외 접촉은 피하거나 포럼 참석 배경 등에 관한 질문에 ‘북경 날씨가 너무 좋지요’라는 답으로 대신하는 등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그가 3년 만에 오른 중국 출장길이니 만큼 현지 사업장을 적극 챙겼다. 

 

이 회장은 중국에 도착해 가장 먼저 삼성의 전자 계열사가 밀집한 톈진을 찾아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기·삼성SDI 등 소속 톈진 주재원과 중국 법인장 애로사항을 수렴하고 공급망 차질을 최소화할 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이후 반도체에 공급되는 전력량을 일정하게 공급하는 핵심 부품으로 전자제품 전반에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삼성전기 MLCC 생산 공장을 방문해 현지 시설을 점검했다. 

 

MLCC 중에서도 특히 전장용 MLCC는 전기차 및 자율주행 기술 발달과 함께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분야다. MLCC 시장 규모는 연간 40% 가까운 성장세를 보여 올해 29억달러 수준에서 2026년 40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이처럼 삼성 미래 성장 동력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MLCC 사업장을 이 회장이 직접 방문했다는 것은 삼성이 전장(자동차 전기·전자 장비) 주도권 확보에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고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은 최근 장기화된 갈등의 불씨가 꺼지며 관계 개선 과정에 있고 중국은 미국 반도체 패권 전쟁 중심에 있다”며 “이에 따라 이재용 회장의 해외출장은 잦은 편이지만 최근 일본과 중국 출장은 관계성 탓에 유독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은 한국과 미국 모두와 관계가 우호적이기 때문에 대외 행보에 부담이 덜했겠지만 중국은 미국과 갈등의 중심에 있어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다음 달 이 회장의 미국 출장 가능성도 있어 만일 미국을 방문하면 (칩스법 등 반도체 사업과 관련해) 이에 따른 얘기에도 관심이 모아질 것”이라며 “향후 미국 칩스법 관련 삼성전자 전략을 예측해 볼 만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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