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지난해 은행권 호실적을 견인한 이자 이익 중심의 수익 구조가 수술대에 오른다. 금융당국이 은행들의 ‘이자 장사’를 정조준하고 사실상 체제 개혁에 나선 가운데 비(非)이자 이익 비중 확대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은행권도 수익 구조 다각화를 고민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지난해 비이자 이익 부진을 야기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올해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단기간 내 뚜렷한 변화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7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경영 실적 자료를 종합한 결과 지난해 이들 은행의 이자 이익 합계는 32조8467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26조4129억원)과 대비 24.3% 증가한 규모다.
은행권 이자 이익 증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제로(0) 금리 때 성장한 대출 자산이 지난해부터 시작된 기준금리 인상과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가파르게 오른 대출금리로 은행이 걷어들인 이자가 크게 늘었다는 설명이다.
은행을 핵심 계열사로 둔 금융지주도 이자 이익 증가 효과를 톡톡히 봤다. KB·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의 지난해 합계 이자 이익은 39조6739억원이었는데 은행(32조8467억원) 비중이 82.7%에 달한다.
빠르게 늘고 있는 은행권 이자 이익과 달리 비이자 이익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의 비이자 이익 합계는 1조8301억원으로 전년(2조8313억원)과 비교해 35.4% 급감했다.
은행권이 사실상 이자 이익만으로 실적을 키워나가자 금융당국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최근 은행권의 이 같은 ‘이자 장사’가 대형 은행 중심으로 굳어진 과점 체제에 따른 것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인식이다.
특히 금융당국은 이자 이익에 기울어진 은행권 수익 구조를 뜯어고치겠단 구상이다. 실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이 참여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의 핵심 과제 중 하나도 비이자 이익 비중 확대다.
은행의 비이자 이익은 전체 영업 이익에서 이자 이익을 제외한 모든 이익이다. 대표적으로 수수료 이익과 유가증권 이익, 외환·파생 이익 등이 있다. 현금 입·출금이나 외화 송금, 펀드 판매 등에서 발생하는 수수료와 주식·부동산 등에 대한 투자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포함된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JP모건체이스·뱅크오브아메리카·씨티·웰스파고 등 미국 4대 금융그룹의 지난해 영업 이익에서 비이자 이익 비중은 약 43%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약 8%포인트(p) 하락하긴 했지만, 국내 금융지주사와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지난해 4대 시중은행 비이자 이익이 부진했던 건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증시 부진에 보유·운용 유가증권 가치가 떨어졌고, 금융투자 상품 중개 실적 저조에 따라 수수료 이익도 감소한 영향이다.
은행의 ‘건강한 성장’ 차원에서도 비이자 이익은 중요한 분야다. 고금리 때 일시적으로 은행의 이자 이익은 늘어나지만, 갈수록 대출 수요는 줄어들고 잠재 부실 위험도 커지면서 수익성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은행권도 수익 구조 다각화를 위해 비이자·비은행 강화를 꾀하고 있지만, 균형은 좀처럼 맞춰지지 않고 있다. 아예 비이자 이익 성장 전망을 어둡게 보는 시각도 은행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일례로 최근 시중은행들은 금융 소비자 혜택 강화 차원에서 타행 이체 수수료나 중도상환수수료 등 각종 수수료를 면제해주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비이자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행보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최근 타행 이체 수수료 면제 정책 도입으로 연간 약 100억원대 수수료 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면서 “아직 감소분이 (비이자 이익의) 극히 일부지만, 앞으로 수수료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적어도 올해까지 금융시장 불확실성으로 비이자 이익 부진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은행들은 자산관리(WM)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강화 등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단기간 내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환율 상승으로 외환이 어렵고, 리스크 문제로 파생도 부진한 상황이라 비이자 이익 감소는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상품 개발로 다양성을 넓혀야 하지만 제한적인 부분도 많기 때문에 비은행 진출 같은 규제 완화 필요성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