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량 '뚝' 떨어진 ESG 채권…공신력·신뢰도 구축 나선 당국
올해 ESG 채권 발행, 전년比 37%↓
당국, 'ESG 채권 가이드라인' 시행
"일관성·투명성 제고 효과 기대돼"
국내 첫 SLB 사례…선택지 확대돼
[뉴스투데이=임종우 기자] ESG 채권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왔으나, 최근 채권 시장이 위축되자 오히려 역성장하며 발행량이 급감하고 있다.
이 같은 시장 축소에도 불구하고 ESG는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은 만큼 향후 관련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정부가 ESG 채권의 공신력을 강화하고자 가이드라인을 설립하는 등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 올해 ESG 채권 발행량 전년比 37.4%↓…"일반 채권도 힘든데 엄두 안나"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1월 1일~2월 13일) 국내에 신규 상장된 사회책임투자채권(녹색채권·사회적채권·지속가능채권·지속가능연계채권)은 총 2조5952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채권별로는 사회적채권이 총 2조3452억원으로 가장 많이 발행됐다. 이어 지속가능채권(1500억원)과 녹색채권(1000억원) 순으로 나타났으며, 아직 원화로 국내 시장에 발행된 지속가능연계채권은 없다.
국내 ESG 채권은 2018년 처음 발행된 이후 2021년까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으나, 지난해부터 전체적인 채권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며 ESG 채권시장도 이에 영향을 받아 역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국내 ESG채권 발행 규모는 약 59조원인데, 이는 전년 87조원 대비 약 32.3% 급감한 수준이다.
ESG 채권의 역성장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2021년 1월 1일부터 2월 13일까지 5조6741억원 규모였던 ESG 채권 발행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4조1464억원으로 26.9% 감소했다. 올해 들어서는 전년 동기 대비 37.4% 감소한 2조5952억원으로 나타났다.
또 롯데렌탈이나 한화솔루션, 전북은행 등 민간이나 금융기업들의 발행이 활발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주택금융공사 등 공사채 위주로 발행되고 있다는 점도 차이점이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성장세를 이어오던 ESG 채권 발행시장은 지난해 들어서 금리 상승 속 발행 여건이 악화돼 발행량이 줄었다"며 "지난해 4분기 발행량은 2020년 3분기 수준까지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안 연구원은 "ESG 채권은 증시에서의 ESG와 마찬가지로 상대적 위험자산의 성격을 보이면서 채권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국채나 회사채 대비 수익률이 크게 부진했다"며 "다만 지난해 10월 이후 수익률 회복 구간에서는 글로벌 그린본드 지수가 회사채나 국채 수익률을 웃도는 등 시장 안정과 함께 ESG에 대한 수요 확대가 나타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ESG 채권은 보통 발행 과정에서 일반 채권보다 더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며 "일반 채권도 수요가 적어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ESG 채권을 선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 'ESG 채권 가이드라인' 시행…인프라 구축 박차
이처럼 ESG 채권의 성장세가 둔화되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ESG 채권의 신뢰도를 제고하고 민간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ESG 채권 인증평가 가이드라인'을 이달부터 개시했다.
그동안 ESG 채권으로 나온 금융상품들은 신용평가사(신평사)가 등급 평가로 인증 평가를 매겼지만, 관련 법규가 없어 인증 평가 등급 실효성에 문제가 제기돼 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해당 가이드라인은 최근 늘어난 ESG 인증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해 7월부터 금감원과 금융투자협회, 신평사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제정됐다.
포함되는 주요 내용은 △등급 부여 절차 문서화 △독립성 준수 절차 수립 △평가방법론 공개 및 평가 대상 기업 비공개정보 보호 △평가 대상 기업과의 충분한 의사소통 △등급 정보의 무조건적 의존 회피 △등급 사후관리 포함 권고 △최소자금투입 비율 공개 등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에는 국제증권관리위원회(IOSCO)의 권고사항을 반영한 것이 특징이며, 금융투자협회 모범규준으로 적용되게 된다.
최영록 나이스신용평가 평가정책본부 연구위원은 "이번 조치를 통해 인증등급 및 의견의 투명성과 공정성, 신뢰성 등이 확보되고, 대내외적인 공신력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향후 각 신평사별로 평가 정책이나 절차가 동일한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일관되게 수립·적용되면서 ESG 채권 인증평가 등급의 비교 가능성이 특정 시점 등급별 횡단면적인 비교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시점에서의 시계열적 비교도 향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연구원은 "기업에 대한 ESG 평가도일관성과 비교 가능성의 부족에 대한 시장 요구가 큰 상황"이라며 "현재 금융위의 주도로 ESG 평가사에 대한 가이던스 마련이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되며, 해당 가이던스의 제정까지 마무리 될 경우 ESG 시장의 혼선도 점차 해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국내 최초 'SLB' 발행 사례 등장…ESG 채권 선택지 넓어져
한편, ESG 채권 시장의 역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내 최초로 지속가능연계채권(SLB) 발행 사례가 등장하면서 시장에서는 SLB가 ESG 채권 발행의 새로운 활로로 활용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10억달러(약 1조2750억원) 규모의 SLB 발행에 성공했다. 당초에는 SLB 발행 목표액을 5억달러로 설정했지만, 304개 기관을 중심으로 다수 투자자들로부터 예상치 이상의 관심을 받으면서 발행 규모를 확대한 것이다.
SLB란 ESG 경영 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금리 등이 조정되는 채권으로, ESG 관련 프로젝트가 아닌 ESG 목표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ESG 채권들과 차이를 보인다.
발행 기업의 ESG 핵심성과지표(KPI)에 기반한 지속가능성과목표치(SPT)를 설정해 달성 여부에 따라 채권 금리가 변동된다. 예를 들어 SLB를 발행한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을 일정 수준 감소시킨다는 조건을 걸었을 경우 이를 달성할 경우 보상으로 발행 금리가 유지되거나 인하되지만, 달성에 실패할 경우 금리 인상 등의 벌칙이 부과되는 식이다.
SLB는 정량화된 SPT를 측정하는 만큼 실질적으로 ESG가 아닌데도 ESG인 척 위장을 하는 '그린워싱'의 위험성이 작다는 장점이 있다. 또 ESG 프로젝트와 연결된 비용이 비교적 낮은 산업군의 참여도 기존 ESG 채권보다 쉬워 ESG 채권 발행의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나예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존 ESG 채권이 적격 프로젝트가 있어야만 해당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던 것과 달리, 적격 프로젝트가 없어도 지속가능 관련 목표만 설정할 수 있다면 발행할 수 있고 조달 자금의 사용처에도 제약이 없다는 것이 SLB의 특징"이라며 "결국 SLB는 더 다양한 기업들이 ESG 금융 영역으로 진입하는 데 기여할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SK하이닉스가 이번에 발행한 SLB는 만기 5년에 6.375%의 금리가 적용된다. 2026년 기준 탄소배출량 집약도를 2020년 실적 대비 57% 감축하는 목표를 지니고 있으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2027년에 금리가 75bp 상향 조정되는 구조다.
SK하이닉스는 최초 6.775%의 금리를 제시했으나, 수요가 늘어나면서 금리가 기존 대비 0.4%포인트 낮아졌다.
최효정 KB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일반 금융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ESG 채권을 발행했음에도 투자 수요가 높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며 "금리의 추세적 하락이 임박했다고 보기 어려운 환경에서 SLB가 ESG에 강점을 보이는 기업이 조달 금리를 낮출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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