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유한양행 승소로 끝난 1000억원대 소송을 보도했던 이유
사연 많은 사람들은 정황만 주장, 공인된 문서 없으면 재판 유리하게 못 만들어
유한양행 소송... 전례없던 대규모 소송에 관심 가진 독자와 주주 위해 보도 결정해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유한양행이 승소한 조루치료제 개발 중단 소송, 2가지 특허 쟁점 시사해’(▶2월 4일 뉴스투데이 기사 참조) 기사를 작성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억울함을 토로하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서 어느 한 쪽 편을 들었다간 사실이 왜곡될 수 있어 제약이 많았다. 특허 소송 관련 전문가를 취재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고 재판 결과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소요됐다.
무엇보다도 이 소송 이야기를 기사로 쓰는 게 옳은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많이 했다. 기사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피해를 보는 사람이 발생할 수 있는 게 아닌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읍소 후 보도해달라고 요구하는데 그럴 때마다 난감해진다. 특히 소송 전에 얽혀 있을 경우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회부 기자를 오래한 것은 아니지만, 재판은 서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증거를 얼마나 공인된 서류로 만들어서 판사에게 제출하느냐에 따라 승소 여부가 달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억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황만 주장할 뿐이지 공인된 서류가 없는 게 대부분이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경매 사기를 당해 건물 두 채를 날렸다고 했던 사람, 남자 친구가 자신의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선물옵션에 투자 했다는 사람, 핸드폰이 폭발했는데 제조사가 피해보상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 등 모두 정황 상 억울함만 토로할 뿐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기사로 쓸 수 없었다. 기사로 쓴다면 단 0.1%라도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인가를 내 스스로 질문해보았을 때 ‘아니다’라는 쪽에 가까웠다. 언론사가 자칫 개인의 한풀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원고의 이야기도 기사로 쓸지 여부를 많이 망설였다. 원고의 주장은 대부분 정황일 뿐이라 객관성 확보에 있어 어려움이 있었다. 억울한 정황이 빛을 보려면 영화에서처럼 증인을 신청해 법정에서 진위여부를 따져야 하는데 불가능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원고의 주장대로 특허를 유지하는데 유한양행이 비상식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했다면 기사로 알리는 게 맞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과연 이 기사는 보도 가치가 있을까. 원고의 억울한 정황들에 대해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사가 인정했는데 어떤 부분을 독자에게 알려야 하는 것인가. 어느 한 쪽 편을 쉽게 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했던 것은 1000억원 규모의 민사소송은 제약 업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큰 소송이기 때문이다. 관심을 갖고 있을 적지 않은 독자들 그리고 주주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줘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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