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초격차 기술'로 반도체 한파 뚫는다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2022년 반도체 시장은 온탕과 냉탕을 넘나드는 격변의 한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에 따른 재택근무 특수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해 반도체 산업 호황은 물론이고 반도체가 부족하는 기현상까지 빚어졌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곳곳에서 침체 신호가 포착되기 시작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주력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침체가 매우 심각했다. 이에 따라 실적감소는 물론이고 적자전환까지 염려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새해가 밝았지만 ‘반도체 침체론’은 현재진행형이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반도체 시장은 성장이 뒷걸음질치는 '역성장'이 예고된 상태다.
반도체 업계는 올해 1분기가 반도체 시장의 '마지막 보릿고개'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2분기부터 반도체 수요가 점차 증가해 올해 하반기에는 점차 수요가 증가해 하반기 업사이클(업황 개선)이 기대된다. 이에 따라 반도체 시장 불황기와 전환기, 회복기를 대비하는 전략이 시급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이어 올해에도 ‘반도체 초격차’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야만 ‘반도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인공지능)·차세대 컴퓨팅 서비스·자율주행 자동차 등 미래 먹거리와 밀접한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 '글로벌 반도체 1위’ 삼성전자도 '세상에 없는 기술 개발' 강조
삼성전자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1위 강자답게 기술 초격차 굳히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업계 최초로 고용량 512GB CXL D램 개발에 성공했다. 이는 기존 제품과 비교해 메모리 용량이 4배 향상됐으며 지연 시간은 기존 대비 20% 수준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512GB CXL은 차세대 메모리 상용화를 앞당기는데 영향을 미쳤다.
7월에는 업계 최고 속도인 ’24Gbps GDDR6(Graphics Double Data Rate) D램’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업계 최고 수준의 속도와 전력 효율을 확보한 이 제품은 18Gbps GDDR6 D램과 비교해 속도가 약 30% 이상 향상됐다.
이에 따라 신형 제품은 향후 차세대 고성능 컴퓨팅(HPC), 전기자동차, 자율주행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연말에는 업계 최선단 12나노급 공정을 통해 16Gb(기가비트) DDR5 D램이 개발을 끝냈다. 이 제품은 이전 세대 제품과 비교해 생산성이 약 20% 향상됐으며 소비전력은 약 23% 개선됐다. 최대 동작속도는 1초에 30GB 용량의 UHD(초고화질) 영화 2편을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데이터센터·AI·차세대 컴퓨팅 등 다양한 용도로 쓰여질 이 반도체를 활용해 삼성전자는 글로벌 IT(정보기술)업체들과 손잡고 차세대 D램 시장을 이끌 방침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을 이끌고 있는 경계현 DS부문장(사장)은 물론이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입이 마르고 닳도록 ‘반도체 기술 초격차’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 오고 있다.
경계현 DS부문장은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반도체 사업의 중장기 전략 방향과 관련해 “기술 초격차와 과감한 투자를 통해 중장기 지속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8년 당시 부회장이던 이재용 회장은 반도체연구소에서 DS부문 경영진을 향해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미래 반도체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기술 초격차’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지난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 회장이 가장 먼저 챙긴 사업도 반도체였다.
당시 그는 “차세대뿐만 아니라 차차세대 제품에 대한 과감한 연구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회장으로 취임 한 후 밝힌 소회에서도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미래 기술에 우리 생존이 달려있다”고 말하며 초격차 기술 확보에 대한 절실함을 드러냈다.
■ ‘후발주자’ SK하이닉스도 초격차 기술 확보에 가속 페달
SK하이닉스도 최강자 삼성전자 못지않은 제품 개발 소식을 연이어 터뜨리며 업계 주목을 받았다.
SK하이닉스는 2020년 12월 176단 낸드를 개발한 지 불과 1년 7개월 만인 지난 8월 세계 최고층 238단 4D 낸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제품은 세계 최고층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작은 크기 제품인 점도 눈길을 끌었다.
신 제품은 이전 세대인 176단과 비교해 생산성은 34%, 데이터 전송 속도는 50% 향상됐다. 칩이 데이터를 읽을 때 사용되는 에너지양은 21%나 줄었다.
SK하이닉스는 같은 달 CXL 메모리 샘플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CXL은 AI·메타버스·미래차·IoT(사물인터넷)·5G(5세대 이동통신)·6G 등 IT기기에 많이 활용되기 때문에 반도체 기업이 눈여겨보고 있는 차세대 D램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업계 최초로 CXL 메모리에 연산 기능이 통합된 CMS(Computational Memory Solution·연산메모리솔루션)가 공개됐다. CMS는 특정 연산에서 수십 개 CPU 코어가 수행하는 것보다 수 배 더빠른 성능을 갖췄다.
이 제품은 특히 SK그룹 내 시너지 R&D(연구개발) 과제로 진행됐다.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 각각 AI와 반도체 역량을 융합해 선도적인 기술을 성공적으로 개발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지난해 11월에는 세계 최초 모바일 D램에 HKMG 공정(High-K Metal Gate)을 적용한 제품 개발을 마치고 판매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HKMG 공정은 누설 전류를 막고 정전용량을 개선해 전력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다.
D램 중에 처음 HKMG 공정이 적용된 사례다.
업계 관계자는 "제품 사용 시간을 늘리려면 전력소비를 줄여야 하는데 이전 세대 대비 소비전력을 25% 줄여 업계 최고의 전력사용 효율성 확보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 기술 초격차, 장기적 관점서 강력한 무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소 올해 1분기까지 반도체 혹한기가 예상되는 가운데 초격차 전략을 그대로 유지한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부회장)은 지난해 기술 초격차를 위한 임직원 노고를 격려하는 한편 올해 목표로 초격차 기술력과 원가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혁신을 외쳤다.
박 부회장은 “SK하이닉스는 초격차 기술력과 원가 경쟁력으로 세상 혁신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대체 불가능한 가치”라며 “올해 모바일과 클라우드 양축 고객을 더욱 견고히 하고 자동차와 AI 고객을 추가해 새로운 성장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박 부회장은 최근 미국 네바다주(州) 라스베이거스에서 'CES 2023' 개막을 앞두고 크리스티아노 아몬(Cristiano Amon) 퀄컴 CEO(최고경영자)와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퀄컴은 스마트폰용 AP(프로세서) 세계 1위 업체다.
퀄컴은 최근 차량용 반도체, IoT 등으로 사업 영토를 넓히고 있는데 이는 기술 초격차를 위한 전략의 하나로 풀이된다.
이에 맞서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를 포함한 주요 경쟁사들이 불황에 투자 규모를 축소하는 가운데 오히려 과감한 투자로 시장 장악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올해 세계 최고 용량의 8세대 V낸드 기반 1Tb TLC(Triple Level Cell) 제품을 양산한다. 이후 2024년 9세대 V낸드, 2030년까지 1000단 V낸드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2025년까지 '차량용 메모리 시장 제패’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LPDDR5X와 GDDR7 등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를 기반으로 차량용 메모리 반도체 성능 개선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평소 인재경영을 중요시해 온 이재용 회장은 올해 반도체 전문가 인사로 기술 초격차에 힘을 실었다.
2023년 삼성전자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반도체 공정개발 및 제조 전문가 남석우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제조담당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공정·제조·인프라·환경안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역량을 두루 갖춘 남석우 사장을 통해 반도체 초격차 확보가 속도를 낼 전망이다.
또한 송재혁 삼성전자 DS부문 반도체연구소장 부사장이 DS부문 CTO 겸 반도체연구소장 사장이 됐다. 그는 반도체 전제품의 선단공정 개발을 이끌며 반도체 기술 경쟁력 강화를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R&D(연구개발) 부문 투자에도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미국에 10억달러(약 1조원)을 투자해 실리콘밸리에 AI, 낸드 솔루션 등 신성장 분야 혁신을 위한 대규모 R&D 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이 태동한 기흥 반도체 사업장 유휴 부지에 R&D센터 건립을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지난해 기공식을 열어 첫 삽을 떴으며 2025년 중순 가동 예정인 반도체 R&D 전용 라인을 포함해 2028년까지 연구단지 조성에 약 20조원을 투자한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기술력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기업 간 격차가 과거만큼 크지 않다. 이에 따라 기술 연구개발을 멈추면 시장이 회복됐을 때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이에 따라 기업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초격차 기술 전략을 소홀히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올해 반도체 시장 전망이 좋지 않아 부담이 크지만 단기적 성과보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기술 초격차를 고집하는 분위기”라며 “설령 업황이 회복되지 않거나 혹은 다시 하강 국면을 맞아도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생존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