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행동' 강화하는 행동주의 펀드…"투자 가치 항상 올리지는 못해"
[뉴스투데이=임종우 기자] 주주행동주의를 앞세운 자산운용사들이 최근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주주행동주의에 대해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긍정적인 관점과 '기업 사냥'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부정적인 관점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의 한 학계 전문가는 양측의 주장 모두 합리적이지만 약간의 결함을 갖고 있다며, 주주행동주의가 투자자의 가치를 항상 올려주는 것은 아니라고 조언했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트러스톤자산운용(이하 트러스톤)은 흥국생명의 40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를 검토 중인 태광산업 이사진에 이를 반대하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보냈다.
태광산업은 이날 열릴 이사회에서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를 검토할 방침인데, 태광산업의 지분 5.8%를 보유한 트러스톤 측이 이를 두고 상법에 저촉되는 '신용공여행위'라고 지적한 것이다.
흥국생명은 최근 콜옵션 거부로 촉발된 유동성 위기 해결을 위해 발행한 환매조건부채권(RP)을 상환하고자 이번 유상증자를 추진해왔다.
트러스톤 측은 내용증명을 통해 "이번 유상증자는 상장회사가 지분 10% 이상을 소유한 주요주주 및 특수관계인에게 자금 지원적 성격의 증권 매입을 금지하는 상법 제542조의9 제1항에 따라 금지되는 행위"라며 "흥국생명은 태광산업의 최대주주인 이호진 회장의 특수관계인에 해당하므로 태광산업이 흥국생명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면 이는 법률에 따라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흥국생명의 지분 56.3%를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지분도 이 전 회장 일가와 대한화섬 등 관계사가 보유하고 있다. 반면 태광산업은 이 전 회장이 29.4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일가와 특수관계자 지분을 모두 합치면 54.53%가 되지만, 태광산업이 보유한 흥국생명 주식은 없는 상황이다.
트러스톤 관계자는 "태광산업 이사회는 이번 유상증자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외부의 제3자가 같은 조건으로 투자할지를 따져 판단해야 한다"며 "대주주가 아닌 회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독립적 의사결정을 내려줄 것을 강하게 촉구한다"고 말했다.
트러스톤 지난 3월에도 태광산업에 주주서한을 보낸 바 있다. 이외에 자신들이 8.13%의 지분을 보유해 2대주주로 있는 BYC에도 이사회의사록 열람허가를 청구하는 등 올해 들어 지속적인 주주행동을 펼치고 있다.
KT&G의 지분을 각 1%씩 가진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자산운용사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이하 FCP)와 안다자산운용은 KT&G에 'KGC인삼공사를 분할 상장하라'는 내용의 주주제안을 했다.
특히 FCP는 지난 8~9일 KT&G 주요 주주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명회를 개최한데 이어, KT&G 이사회와 대표이사에게 각각 대면 미팅과 공개토론을 제안하는 서한도 보냈다고 공개했다.
FCP는 최근 온라인 설명회를 통해 그동안 KT&G 측에 요구한 지배구조 개선 문제와 인삼공사 인적분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상현 FCP 대표는 "KT&G 주가는 2016년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며 "분자(배당금)는 그대로인데 분모(주가)가 작아져 배당 수익률만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무엇보다 거버넌스(지배구조)의 재정립이 가장 시급하게 이뤄져야 하며, 특히 아시회가 과연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성을 가졌는지 심히 우려된다"며 "담배 사업 부문에 기가 눌려 세계 무대로 진출해야 할 인삼의 가능성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FCP 측은 KT&G 경영진이 관련 내용에 대해 충실히 검토하고, 주주들과 충분히 소통하겠다는 서면 입장을 전달했다고도 발표했다.
이외에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지분 1.1%를 보유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이수만 에스엠 총괄 프로듀서의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과의 프로듀싱 계약 종료를 이끈 바도 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라이크기획이 에스엠에서 올해 상반기에만 114억원의 수수료를 챙기는 등 지배구조 이슈가 있다고 지적해왔고, 에스엠은 올해 말에 프로듀싱 라이센스 계약을 조기 종료한다고 공시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주주행동주의에 대해 긍정과 부정 의견이 양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긍정 측에서는 주주행동주의가 주가를 부양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주가 부양 사례로 에스엠의 경우 얼라인파트너스가 처음 주주제안을 한 것이 알려진 지난 2월 21일 주가가 전 거래일보다 5.2% 올랐고, 이후 4월 1일에는 52주 신고가(9만원)를 기록하기도 했다.
KT&G의 주가도 FCP와 안다가 공개 주주서한을 발송했다는 소식이 나온 지난 10월 25일과 지난달 2일 각각 1.82%와 2.28% 상승했다. 지난달 2일에는 2020년 이후 처음 9만원대에 진입했으며, 지난달 30일에는 장중 10만원대까지 올라 52주 신고가를 새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부정 측에서는 주가를 끌어올린 뒤 지분을 처분하는 '기업 사냥'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2006년 미국의 투자자 칼 아이칸은 KT&G 지분을 6.59% 취득하고 경영권 전쟁에 돌입했는데, 당시 아이칸 측은 인삼공사 매각과 주주 환원 강화 등을 요구했고 KT&G는 대규모 주주 환원책을 포함한 중장기 경영 계획을 내며 경영권을 지켰다.
그 사이 KT&G 주가는 4만원대에서 6만원대로 뛰었고, 아이칸은 약 1년 만에 KT&G 지분을 처분해 1500억원대의 차익을 챙기고 떠났다.
다만 국내 시장에서 자산운용사가 기업 사냥을 목표로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정보가 공개되는 공모 펀드가 다수인 시장에서는 리스크가 커서다.
홍기훈 홍익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운용하는 펀드들의 상당 부분은 공모로 모인 펀드인데, 의결권 등 많은 정보들이 공개가 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한 자산운용사들이 '기업 사냥'을 목적으로 한다면 후폭풍은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사모 펀드의 경우 그 펀드가 지향하는 바가 명확한 경우가 있어 개입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며 "특정 의도를 가지고 기업의 경영에 간섭했다고 볼 수 있지만, 개입을 하지 않고 더 좋은 수익률을 거두는 펀드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산운용사들이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이유가 펀드의 목적성에 있다고 내다봤다. 또 행동주의가 항상 기업 가치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며, 오히려 주주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도 언급했다.
홍 교수는 "행동주의의 진짜 이유는 펀드의 목적성에 있다고 본다"며 "ESG 펀드 같은 것들이 투자 회사의 행동을 투자사들에게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펀드를 조성하니까 행동주의가 거론되는 것으로 보이며, 순수하게 수익률만 봤을 때는 사실상 처음부터 좋은 경영 구조를 가진 회사에 투자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하고 있는 행동주의에 대한 이야기들이 왜곡된 측면이 있지 않냐는 생각 든다"며 "펀드 매니저들이 전문 경영인이 아닌 만큼 한계를 스스로 인지할 필요가 있으며, 좋은 경영을 하고 있는 기업에 대해 행동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오히려 주주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투자자 가치 극대화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행동주의가 항상 투자자의 가치를 올려주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