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75)] 부대 방문한 대통령 후보들의 진면목 ⑥현대 정치판를 이끌던 ‘양김시대’ 갈등 절정기에 부대를 방문한 DJ와 YS(하)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2.12.15 16:16 ㅣ 수정 : 2022.12.16 10:58
전라도 사투리가 약간 가미된 특유 억양의 DJ 언변에 모두 빨려들어가 대통령 당선자 YS 부대방문에 맞춰 행운의 하얀눈이 온 세상을 덮었고, 역시 행동으로 보여주던 그가 남기고 간 것도 놀라울 정도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 무렵 평화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자격으로 무적태풍부대를 방문한 69세의 김대중(이하, DJ)는 역경의 정치활동 중 모진 고문을 받아 다친 다리를 절면서 그 유명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그는 그동안의 세월에서 파란만장(波瀾萬丈)한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마치 고향마을 어르신이 손자들을 만나기 위해 부대를 방문한 것 같은 온화한 표정이었다.
회의실에서의 업무보고를 받던 그는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해서인지 건강함을 과시하듯 여유를 보여주며 특유의 달변을 쏟아냈다.
참석한 부대장들과 참모들은 전라도 사투리가 약간 가미된 특유 억양의 DJ 언변에 모두 빨려들어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선거를 코앞에 둔 터라 급하게 마무리하고 부대를 떠났다.
■ YS는 '양김시대'의 역사에서 보듯이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며 약속을 지키는 지도자
드디어 12월30일 마지막 방문자인 김영삼(이하, YS)가 부대에 들어섰다. 하지만 다른 대통령 후보 및 주요 인사들의 격려 방문과는 확연히 달랐다. 특이하게도 YS 비서실은 방문 일정을 30일로 고집했는데 그날 숫자를 거꾸로 읽으면 03이 되기 때문이라고 부대원들은 추측했다.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된 것은 이미 노태우·김종필(JP)과 손잡고 3당 합당을 결행하며 집권 민자당 후보였던 YS가 1992년 12월18일 실시된 제14대 대선에서 영원한 맞수이던 김대중 후보(민주당)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통령 경호실 요원들을 대동하고 등장한 대통령 당선자 YS는 66세의 나이답지 않게 훨씬 젊어 보였고, 얼굴에는 기름이 잘잘 흐르며 빛이 났다. 꽉 아문듯한 입술에서는 그의 특유한 고집과 의지를 느낄 수 있었으나 격려사를 할 때에는 약간 실망했다.
그는 격려사를 하면서 가끔씩 힘을 주어 강한 소리로 강조했는데 무슨 내용의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방문했던 달변가 DJ(김대중), JP(김종필)와 너무도 비교가 되었다. 순간 이틀전에 방문한 대한적십자사 총재 강영훈 장군의 모습이 스쳐갔다.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을 통해 겪게된 고난의 시간을 학문으로 극복한 강영훈은 문무(文武)를 겸비한 용장(勇將)이자 덕장(德將)이었다. 또한 군후배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덕담을 던지며, 벽창호처럼 올곧은 참군인의 길을 걷고 청렴하고 강직한 이미지의 국무총리를 역임한 저력을 지닌 적십자사 총재로서 자랑스런 군선배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YS(김영삼)는 ‘양김시대’의 역사에서 보듯이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고 약속을 지키는 지도자였다. 그는 1961년 5·16 이후 기나긴 군부독재를 종식시키며, 1993년 2월25일 대통령에 취임해 자신의 정부를 최초의 '문민정부'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했다.
검찰 사정과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등 정치개혁을 필두로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척결에 앞장섰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수 폭로 및 구속, 조선총독부 철거, 금융실명제와 지방자치제 실시 등 핵심적인 개혁을 통해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특히 금융실명제 실시는 금융거래의 투명성과 형평 과세를 통해 경제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침 대통령 당선자 YS의 부대방문에 맞춰 당선을 축하하며 행운을 알리는 하얀눈이 온 세상을 덮었다. 또한 행동으로 보여주던 YS가 남기고 간 것은 놀라울 정도였다. 위문내용이 VTR 5대, 신형TV 40대, 격려금 1000만원으로 대통령 당선자의 위력은 대단했다.
각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방문 준비를 총괄하여 지휘한 작전참모 김형배 중령이 뒤풀이하던 회식 자리에서 “조직을 단결시키고 리더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은 ‘돈’과 ‘인사’이다”라고 던진 한마디가 명언이 되어 귓가를 맴돌며 가슴에 와 닿았다.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