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동시장, 연준의 고금리 정책 장기화 가능성 높여
[뉴스투데이=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 미국 연준 파월 의장의 입장에서 조금이나마 변화가 감지된다. 11월 말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행한 연설에서 파월 의장은 12월에 열리는 올해 마지막 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 폭이 줄어들 것임을 시사했다.
지난 네 번의 FOMC에서 모두 75bp씩 금리를 인상한 데다 10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이전보다는 다소 큰 폭으로 낮아지자, 정책의 강도를 조절하면서 지금까지의 긴축 효과를 관찰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연설 직후 미국뿐 아니라 대부분 국가의 증시가 올랐고, 금리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반응은 하루 이틀 사이에 마무리됐고, 글로벌 증시는 연설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후 박스권을 이어가고 있다. 시장이 파월 의장의 입장 변화를 어느 정도 예상했던 데다, 이후 발표된 고용지표와 서비스업 지표가 예상보다 탄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12월 결정과 별개로, 타이트한 고용시장은 이번 금리 인상 사이클의 고점 금리 수준과 인하가 시작될 시기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이제 투자자들은 미국 고용시장이 앞으로 어떤 흐름을 보일 것인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 미국 고용지표, 과거 평균보다 탄탄한 모습 유지 중
사실 이번 미국의 긴축 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혼란을 주고 있는 지표를 뽑는다면 단연 고용시장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강력한 긴축이 시작된 지 6개월이 넘어가는 상황, 특히 긴축으로의 선회를 예고했던 지난해 말부터 계산하면 1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고용시장은 별다른 충격 없이 탄탄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발표된 11월 비농업신규고용자수는 26만명을 넘었고, 실업률은 3.7%를 기록했다. 1971년 이후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직전인 2019년까지 거의 49년간 비농업신규고용자수 평균이 월 13만7천명이었고, 실업률이 6.2%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침체와는 거리가 먼 수치다.
장기적인 고용자수 증가를 감안해 전체 고용자수 중 증가분의 비율만 계산해도 평균은 0.13%였지만, 지금은 여전히 0.17%를 상회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일각에서는 고용이 후행지표라는 점을 지적하며, 조만간 실업률이 크게 올라가고 신규 고용 역시 줄어들 것이라 전망한다. 과거 고용의 후행성을 감안할 때 타당한 주장이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기업들의 구인/이직 통계(JOLTs, Job openings and labor turnover survey)를 보면 미국 기업들의 채용 공고는 여전히 1천만건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통계치가 제공되기 시작한 2001년 이후 22년 동안 평균 507만건, 코로나19로 대량 실직 사태가 벌어진 2020년 4월에 407만건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다.
긴축과 경기 둔화가 결국 이 수치도 떨어뜨리겠지만, 당분간 실업률과 신규 고용에서 큰 변화가 나타나진 않을 것이란 얘기다.
게다가 현재 고용이 임금 상승을 수반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임금이 오르고 있다는 것은 기업들의 수용 능력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들의 임금 인상 기대감이 높게 유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소비자와 임금노동자 모두 높은 물가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이고, 결국 기대 인플레이션이 크게 낮아지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임금 상승은 핵심 물가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 거품이 끼었던 분야는 조정, 소외됐던 분야는 고용 회복. 연준은 긴축이 불편하지 않아
그런데 고용시장에서 주목할 부분이 또 있다. 민간 부문의 고용 상황을 조사하는 ADP 고용지표에 따르면 민간고용의 상당 부분이 레저와 접객, 운송 등 분야에서 창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금융, 정보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는 감소 중이다.
현재 경제와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코로나19에 따른 회복 탄력성이라는 점을 시사하는데, 그동안 유동성으로 거품이 형성됐던 금융과 일부 신기술 산업 쪽은 거품이 꺼지고 있는 반면, 극심한 타격을 받았던 오프라인 서비스 산업은 오히려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연준 입장에서 현재의 긴축 기조를 더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한다.
지난 수십 년간 경기 사이클을 보면, 경기 둔화기에 저소득층 노동자의 실업이 크게 늘어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통화 완화정책이 자산 가격의 급등을 통해 빈부 격차를 더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했는데, 지금처럼 저소득층의 고용이 안정되어 있다면 굳이 빠르고 강한 정책 완화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물론 연준은 긴축에 따라 자산 가격 급락과 금융시스템 위험이 커지는 것은 막으려 할 것이다. 금융시스템 위험은 지난 2008년과 같이 역 낙수효과를 통해 저소득층에게도 큰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이 연설에서 오랜만에 금융시장 안정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고용시장 상황을 볼 때 이러한 신호를 본격적인 완화, 즉 자산시장 거품을 다시 키우는 통화정책으로의 전환으로 판단하는 것은 시장의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물가 선행지표와 기저효과를 감안할 때 소비자물가상승률이 고점을 기록하고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은 너무나 당연하다. 속도에 대한 예상이 조금씩 다를 뿐이지 방향성에 대해서 이견을 가질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현재 노동시장 흐름은 연준이 높은 금리를 유지하는 데 불편하지 않은 방향이고, 그래서 채권과 증시 투자자 일부에서 희망하는 것보다 더 오랜 기간 고금리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파월 의장의 입장 변화에도 불구하고 증시가 오르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정리=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