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시행 시기상조...국내 증시엔 '득'보다 '실' 목소리
[뉴스투데이=황수분 기자]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도입 시기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증권가 안팎에서는 금투세 도입 반대의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은 금투세 도입 2년 유예를 주장하고 있다. 국내 증시가 연말을 앞두고 변동성이 큰데, 가뜩이나 금투세까지 시행되면 거래가 줄고 시장이 위축될 게 불 보듯 뻔하다는 이유에서다.
금투세 시행을 내년 1월로 밀어붙이겠다는 야당도 이러한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을 의식했는지, 최근 금투세 도입과 관련 다소 유연한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 금투세 도입, 왜 논란되나
15일 정부에 따르면 현행법상 내년 1월 도입을 앞둔 금투세는 윤석열 정부가 지난 7월 거시경제와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을 고려해, 2년 유예를 골자로 하는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금투세가 시작되면 대주주 여부에 상관없이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일정 금액(주식 5000만원·기타 250만원)이 넘는 수익을 낸 투자자는, 누구나 20%(3억원 초과분은 25%)의 세금을 내게 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금투세가 도입되면 최근 10년간 평균 주식거래 내역을 바탕으로 산출한 결과, 과세 대상자는 15만명으로 추산했다.
현행 주식 거래 관련 과세 대상이 1만5000명인 것을 고려 시 10배 수준인데, 금투세로 인한 세부담은 연간 1조5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 셈이다.
투자계·개인투자자들은 지난해 여름부터 국내 증시가 썩 나아질 기미가 없고 채권시장마저 얼어붙자, 금투세 도입 유예 가능성에 점쳐졌다.
그런데 2개월이 남은 시점에서 의석수 과반을 점하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예정대로 금투세 도입을 강하게 맞서면서 시장은 혼란이 가중됐다.
■ 정치권 마찰...“시장 불안 최소화” vs “부자 감세”
정부·여당은 현재의 시장 여건을 들며 금투세 시행을 유예해 시장 불안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코스피 월간 거래대금이 전년 동월 대비 50% 가까이 급감한 상황에서, 금투세가 시행되면 시장 회복이 지연돼 증시 충격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새롭게 과세 대상에 포함되는 고액 투자자들은 연말에 주식을 대거 처분하고 내년 세금을 회피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이 강행 중인 금투세 과세 도입을 유예하라고 촉구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금투세를 2년 유예해 주식시장에 희망을 줘야 하는데 (민주당이) 이를 강행한다면 시장에 부정적인 충격을 줄 것은 볼 보듯 뻔하다”고 꼬집었다.
조경태(5선) 국민의힘 의원도 “금투세는 약해진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메시지를 줄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상위 투자자뿐 아니라 개인투자자들도 시장을 이탈해 주식시장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민주당은 여야가 오랜 협의를 거쳐 금투세 도입을 결정한 만큼, 섣불리 시행 시점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금투세 유예는 극소수 고액 투자자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부자 감세'라는 것이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금투세는 2년 전 여야 합의로, 심지어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직접 합의해 시행하기로 한 제도”라고 말했다.
이러한 근본 틀을 흔들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얘기다. 김 의원은 “예정대로 시행하자는 것이 당의 입장이며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어야 한다”고 전달했다.
상황이 이렇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일 내년 1월 도입될 예정인 금투세에 대해 “투자심리가 위축된 이 상황에서 강행하는 게 맞느냐”며 유예안을 꺼냈다.
■ 시장 전문가, 2년 유예해야...증시 충격 불가피
내년 금투세 도입을 놓고 개인투자자들은 세 부담 탓에 상위 1~2%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이탈이 늘어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반대 청원도 이어졌다. 금투세 시행 관련해 최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는 '명분도 없고 실익도 없는 금융투자소득세를 예정대로 유예해 달라' 제목의 청원이 2주 만에 5만명이 동의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정식 회부됐다.
증권사도 혼선을 빚기는 마찬가지다.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원천징수시스템 구축에 나섰던 증권사들은 최근까지도 정책 가이드라인이 정해지지 않아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미 관련 준비를 해온 증권사는 금투세 유예 시 매몰 비용을 감당해야 하며, 정부만 믿고 소극적으로 대처한 곳은 내년 시행 시 부랴부랴 전산 시스템을 개발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전산 구축이 우선인데 인프라를 구축한 회사들은 (금투세 당장 시행을) 쉽게 받아들이겠지만, 여러 가지 여건이 미비한 중소형사들은 개발 비용부터 상품까지 고려하면 유예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을 팔고 떠나면 국내 주식시장은 거래가 줄어들면서 위축될 것을 우려했다.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디지털사업부 이사는 “금투세가 당장 시행된다면 가뜩이나 수급이 위축된 상태에서 상위 투자자들이 해외로 이동하고, 한국 주식은 급락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결국 피해는 다수의 투자자가 지게 된다는 말이다. 그는 “개인투자자들이 국내 주식투자를 중단하고 해외 투자로 전환할 경우, 환율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만은 1989년 금투세를 도입했다가 1개월 만에 지수가 40% 가까이 폭락한 후 도입을 철회한 바 있다. 현재 아시아에서는 일본만 금투세를 도입한 상황으로 “경제 상황이 엄중한 만큼 금투세 시행 유예가 필요하다”라고도 했다.
금투세 유예 시 국내 증시에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염 이사는 “국내 증시에서 세금이 2년간 부과되지 않고 유예되면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차원에서 투자심리가 크게 호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큰손 투자자들의 해외증시 이탈 우려가 과장된 측면이 있다며, 여전히 국내주식이 세금문제에서 해외주식보다 유리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관측도 있다.
홍기훈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 금투세 도입 시기 논란은 국내 주식시장도 고려해야 하고 증권사들의 시스템 및 전반적인 사항들도 고래해야 할 부분이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무엇보다 정부 정책이니 따라야 하는 건 맞지만, 문제는 왜 하필 지금이냐는 것이 논란의 핵심으로 보인다. 여러 여건이나 상황이 너무 좋지 않은 게 문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