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유동성 공급 대책으로 금융시스템 위험은 조금씩 완화될 것
[뉴스투데이=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 국내 자금과 채권시장에 신용경색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고물가와 기준금리 인상, 시장금리 상승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지난 9월 특정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기업이 프로젝트 금융의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한 게 계기가 되면서 시장 내 우려감이 치솟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일 것으로 예상했던 공공 부문 프로젝트에서 문제가 생기자, 수많은 민간 부문 부동산 프로젝트의 신뢰성에도 의문을 갖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반영한 각 금융기관의 유동성 확보 노력이 다시 시장에 충격을 주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23일 경제 부처는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채권안정펀드 규모와 공공 금융기관의 매입 한도를 늘려 자금, 채권시장 내 경색을 풀기로 했고, 문제가 됐던 지방자치단체 확약 금융은 보증을 해주는 방안까지 꽤 폭넓게 시장의 의견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단기 유동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금융기관들의 유동성 확보 방안도 마련됐다.
그런데 이 같은 정책에 대해 금융기관의 모럴 해저드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위험을 감수하고 이익을 내던 금융기관이 위험을 스스로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금융시스템 위험의 대표적 사례,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사례와 해당 시점의 정부 대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로 촉발된 리먼브러더스 사태다.
주지하다시피 이 사태는 장기간에 걸친 저금리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금융기관들이 위험한 대출을 대규모로 실행한 데에서 출발했다.
저금리는 안전자산의 기대수익률을 낮추고, 조금 더 위험이 큰 자산부터 가격을 끌어올려 결국 나중에는 위험이 너무 큰 자산의 가격조차 올라가도록 만드는데, 이 당시 위험이 너무 큰 자산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즉 과거라면 대출을 받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제공된 모기지 대출이었던 것이다.
특히 금융기관들은 이 대출의 위험을 수면 아래로 잠기도록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들었고 이를 거래했다.
이 과정에서 모기지 대출만을 취급하는 기관 이외에 주요 금융기관이 참여하게 되었고, 결국 신용부도스와프로 돈을 벌던 보험사와 이러한 파생상품 구조화에 참여하며 위험이 헷지되었다고 느낀 투자자, 스왑 거래를 중개하던 금융기관들에서 모두 문제가 발생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어찌 보면 현재 국내 금융기관에서 나타난 모럴 해저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2008년 9월 중순 관련 금융상품 투자자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스와프거래의 대형 중개자로서 역할을 하던 5대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다. 그리고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금융시스템 위험이 급격하게 번졌다.
대형 투자은행이 파산함으로써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우려가 커졌고, 거래 관계로 관련되어 있는 모든 경제 주체들의 손실도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모럴 해저드 측면에서 봤을 때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 위험이 커지자 한번 위축된 심리가 회복되는 데에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6개월간 S&P500 지수는 1300포인트에서 700포인트 아래까지 내렸고, 글로벌 금융시장도 충격을 받아 원달러 환율은 1100원대에서 1500원대까지 상승했다. 글로벌 경제 역시 침체에 빠졌다. 엄청난 대가를 치른 것이다.
•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대책, 시스템 위험을 줄여
지금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카드 사태 당시 특정 금융기관의 자회사 지원 약속, 코로나19 직후 금융기관에 대한 지원 등 몇몇 경험 역시 자금, 채권시장의 안정이 증시와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카드 사태 당시 우리나라 채권시장에는 GDP 규모 내 산업 비중에 비해 월등하게 많은 카드채가 발행되어 있었고, 이 중 상당 부분이 부실화 위험에 처했었다. 결국 대형 카드사 중 문을 닫는 곳도 발생했다.
하지만, 자금 지원 약속으로 카드사 채권의 위험이 줄자 시장은 곧바로 안정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당시에도 환율급등과 급작스러운 자금시장 경색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증시와 경제의 안정으로 이어졌다.
이번에 트러스 총리의 재정 확대 정책으로 혼란에 빠진 영국 금융시장을 살린 것 역시 중앙은행의 긴급 국채 매입이었다. 만약 방치했다면 영국의 연기금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이 큰 홍역을 치르고 그 영향은 글로벌 경제에까지 충격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
위험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금융기관을 정책당국이 돕자고 나서는 것은 쉽지 않은 판단이다. 높은 위험을 감수한 금융기관들에 대해서는 분명 책임을 물어야 다음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지난해까지 거품이 형성되던 기간에 이 금융기관들은 이러한 투자로 큰 수익을 얻기까지 했으니,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가장 맞는 해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책당국은 이제 이러한 과정이 필요 이상, 감내 가능한 수준 이상의 금융, 경제적 충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대응에 나선 상태다.
게다가 방치하지 않기로 방향성이 잡힌 이상 이번 대책이 충분치 않을 경우 추가적인 대응도 가능하기 때문에 금융 시스템 위험은 조금씩 줄어들 것으로 판단된다.
[정리=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