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탈영병 위기가 전화위복의 기회(하)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단 전지역으로 ‘진도개 하나’를 확대 발령에 따라 각 부대가 출동준비를 하는 동안 사단 상황실(TOC)에서 작전토의를 거쳐 사단장이 승인한 무장탈영병 생포 작전명령은 신속하게 각 부대로 하달되고 상급부대에도 보고됐다.
출동 준비를 마친 부대들은 때마침 하달된 작전명령에 따라 사건 발생 원점을 겹겹이 포위하는 2,3봉쇄선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절묘한 시점에 명령이 하달되어 시간 낭비를 최소화하며 바로 투입하여 일단 도주하려는 탈영병과 시간 싸움에서 우위를 점령했다.
동시에 탈영병이 발생한 해당 연대는 1봉쇄선 점령을 완료하고 포위된 봉쇄선 안의 은거 가능지역을 사단 수색대대원들과 함께 군견까지 투입하여 정밀 수색했다.
이때 2,3봉쇄선에 근접한 부대들은 도보로 투입했지만, 원거리 부대원들은 사단 수송대의 차량에 포병부대의 포차까지 동원된 수송차량을 지원받아 보다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었다.
날이 저물어 야간이 되자 봉쇄선 도로를 따라 라이트를 켜고 차량을 계속 왕복 이동시켜 은거한 무장탈영병이 꼼짝 못하고 지치도록 만드는 기만작전도 시행하였다.
더불어 주민신고망을 최대로 가동시켰고, 선무심리전으로 방송차량을 활용하여 원점부근과 주변에서 무장탈영병의 안전과 복귀 방송을 계속하며 심리적 동요를 유도했고, 또한 탈영병의 부모를 현장에 도착시켜 방송차량에 탑승하여 안전한 귀가 설득 방송도 추가했다.
이 모든 조치는 이미 5년전 승리부대 근무할 때에 ‘GOP 경계근무자의 총기난동 및 무장탈영 소동’에서 경험했던 교훈을 그대로 활용한 것이었다.
한편 상급부대인 군단에서도 무적태풍부대의 무장탈영병 발생에 따른 대침투작전 진행을 관망하면서 혹시 우려되는 탈영병의 도주를 막기 위해 인접 사단에 지시하여 주요 통로 및 목 지점을 차단하도록 조치했다.
■ 무장탈영병 생포 위한 통합적이고 일사불란(一絲不亂)한 대침투작전 수행
일련의 상황조치를 완료하고 사단장과 참모들은 상황실(TOC)에서 예하 각부대의 배치 및 활동을 보고 받으며 밤을 지새웠다.
허나 필자는 더 바빠졌다. 무장탈영병이 원점 지역을 포위한 1봉쇄선 안에 있으면 생포가 용이할 터인데, 혹시 더 원거리를 도주하여 2,3봉쇄선 밖으로 빠져나갔다면 상황은 사단이 아니라 군단 또는 군사령부급으로 확대될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작전참모와 함께 고민하다가 날이 밝으면 봉쇄선 주요 목에는 그대로 소수 병력을 배치하며 필요한 지역엔 임시 검문소를 추가운용하고, 나머지 주병력과 군견으로 ‘전제대 동시 수색정찰’을 계획했다. 이때 항공정찰도 병행하기 위해 상급부대에 헬기도 추가 요청했다.
사단장의 승인을 받고 일출과 동시에 작전이 개시되도록 사전에 작전명령을 하달하며 군단에도 보고했다.
각 부대는 아침해가 밝아오기 전에 조식을 모두 마치고 각 수색 책임지역으로 출발하려는 순간 무장탈영병이 발생한 부대 연대장의 긴급한 지휘보고가 올라왔다.
■ 최경근 군단장, 비록 무장탈영병 사고는 발생했지만 훌륭한 대침투작전 훈련이었다고 격려
연대가 형성한 1봉쇄선 안의 원점 부근에서 무장탈영했던 윤길영 일병을 생포했다는 보고였다.
탈영한 윤 일병은 멀리 도주하려 했으나 각 부대의 신속한 배치와 야간에 라이트를 켜고 계속 이동하는 군차량, 선무심리전 방송, 군견 짖는 소리 등으로 꼼짝 못하고 숨어있다가 지쳐서 그대로 생포되었다.
비록 밤을 꼬박 새워 피곤했지만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보람을 느꼈다. 바로 그때 사단장 탁자위에서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군단에서도 무장탈영병 사건 때문에 밤을 지새웠던 군단장의 전화였는데 일순간 무장탈영병 사고 발생에 대한 질책을 예상하며 긴장된 상황실의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최경근 군단장(갑종151기)은 ”사단장, 이번 무장탈영병을 잡기 위한 대침투작전은 시범을 보인 것과 같은 매우 표준이 되는 사례입니다”라며 말을 시작했다.
“최초 상황보고 및 조치부터 신속하게 하달된 3개의 봉쇄선을 형성하는 작전명령과 전파체계 그리고 선무심리전, 항공정찰, 전제대 동시수색, 군견운용 등 통합적이고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전개한 작전수행에서 칭찬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라며 핀잔보다는 칭찬을 하였다.
이어 “훌륭한 대침투작전 훈련이었습니다. 수고했어요...ㅋ”라는 군단장의 마지막 격려 훈시 한마디에 비록 사고를 미연에 방지 못한 책임은 있었으나, 상황실에서 밤을 지새운 참모 및 실무자들의 보람찬 환성이 터져 나오며 모든 피곤함을 날려버렸다.
무장탈영병 사건 발생은 위기였지만 지휘관의 명확한 지침과 전 부대원들이 능동적이고 효율적인 절차와 행동으로 임하여 작전에 성공함으로 부대가 단결되며 사기충천하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가 되었다.
무장탈영병 발생에 따른 대침투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한 이재관(육사21기) 소장은 사단장을 마친지 10개월 만에 중장으로 진급하여 군단장으로 다시 부임했다.
이후 군단장에서 영전하여 육군참모차장직을 수행하던 이 중장은 1996년 9월16일 ‘강릉 무장공비 잠수함 침투’사건이 발생하자 작전이 한창 진행중인 10월에 대장으로 진급하여 1군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한달 뒤인 11월 1군사령관 이재관 대장은 ‘연화동계곡 전투’에서 무장공비의 잔적을 소탕한 것을 끝으로 강릉 안인진리 지역으로 잠수함을 통해 침투한 북한군 무장공비를 토벌하기 위한 45일간의 대규모 작전을 마무리하여 대침투작전의 전문가로 이름을 남겼다.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