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증권가 입장 ‘팽팽’한 시장조성 논란...결론 후 가이드라인 시급
[뉴스투데이=황수분 기자]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처음 증권사 9곳에 시장조성 교란혐의를 적용해 이례적으로 역대급 과징금을 통보한 데 대해 증권가 안팎으로 논란이 거세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은 체결 전 호가, 정정, 취소까지 포괄해 들여다본 후 내린 통보였다며 증권사들이 이미 거래량이 풍부해 시장조성 역할이 필요 없는 대형주와 같은 종목에도 시장조성 행위를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증권사들은 거래소가 시장을 살리라고 독려한 제도인데 당국에서 과징금을 내린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반발했다. 전문가들은 ‘기준이 모호’해 선명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23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자조심)가 지난달까지 총 3차례에 걸쳐 금감원의 증권사 과징금 부과 제재 여부 관련 심의를 끝냈다.
자조심은 지난 20일 진행된 4번째 회의를 마지막으로 시장조성자 과징금 부과 관련 심의를 마쳤고, 최종 결정을 위해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로 사안을 넘긴 상태다.
지난해 9월 금감원이 시장조성 증권사에 부과한 과징금은 480억원이다. 증권사 9곳에 대한 과징금 부과 여부는 증선위로 넘긴 만큼 어떤 처분 결정이 내려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금융위 한 관계자는 “시장조성자와 관련된 자조심 논의는 모두 마무리했다”며 “안건은 증선위로 넘겨졌고 최종적인 제재 여부는 증선위를 거친 뒤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확정될 것이다”고 말했다.
자조심 단계에서는 금감원이 시장질서 교란행위 혐의로 부과한 과징금에 무리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분위기도 있었다.
이에 증선위 논의에서 과징금이 전면 취소되거나 대폭 경감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만약 과징금 5억원 이하에서 결정되면 금융위원회 정례회의를 거치지 않고 결론을 낼 수 있게 된다.
시장조성자는 한국거래소와 계약을 맺은 증권사들이 주식시장을 조성하는 역할을 해 거래 시장이 원활하도록 미리 정한 저유동성 종목(시장조성대상종목)에 대해 지속적 매수·매도로 양방향 호가를 제시한다.
시장조성자로 지정된 증권사는 적정가격의 호가를 시장에 상시로 제시, 투자자는 원하는 시점에 거래가 가능하다. 시장조성자 역할을 하는 증권사들은 대신에 증권 거래세 면제와 수수료 혜택 등을 받는다.
증권사들이 시장질서 교란행위 혐의가 적용되려면 금감원이 시장조성자가 시세에 부당한 영향을 줬다는 것을 입증해야 죄가 성립한다.
자본시장법 제178조의 2에 따르면 거래 성립 가능성이 희박한 호가를 대량으로 제출하거나 호가를 제출한 후 해당 호가를 반복적으로 정정·취소해 시세에 부당한 영향을 주거나 줄 우려가 있다면 시장질서 교란행위로 과징금 대상이 된다.
금감원은 지난해 9월 초 시장조성자로 참여한 증권사 14곳 중 9곳에 시장질서 교란 명목으로 각각 10억~90억원씩 총 480억원가량의 과징금을 사전 통보했다.
이들 증권사는 특정 기간 시장조성 과정에서 95% 이상의 매매 주문 정정·취소율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문 정정·취소율이란 전체 주문 횟수 대비 정정·취소한 비율을 말한다.
대상 증권사는 미래에셋증권과 한화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신영증권, 부국증권 등 국내 6개사와 골드만삭스, SG, CLSA 등 외국계 3개사다.
증권사들은 거래소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 적법하게 역할을 수행했다고 항변하며 시장조성자로서의 활동을 멈췄다.
시장조성자 제도의 운용 주체인 거래소도 과징금 통보 이후 주식 시장조성자의 호가 제출 의무를 면제해 사실상 제도가 중단된 상태다. 증권사들은 과징금 부과가 철회되기 전까지는 시장조성자 활동을 재개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시장조성자 제도 중단이 장기화하면 시장 유동성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 특히 거래량이 적은 종목의 경우 거래비용 증가와 가격 변동 심화 등 투자자들이 직접적인 손해를 입을 수 있다. 지난해 시장조성 지정 종목은 코스피 332개, 코스닥 341개 등 총 673개 종목이다.
이에 대해 증권사가 시장조성 물량 매도를 '공매도'에 활용해 시세 차익을 얻은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왔다. 시장조성 물량은 공매도의 '업틱 룰'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거래소는 체결된 거래만 대상으로 봤었지만 금감원은 체결 전 호가, 정정, 취소까지 포괄해 들여다봤다”며 “조사 진행 중이어서 따로 소명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의견 부여 충분하고 증선위 절차에서 뭔가 결론이 날 것이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쟁점에 앞서 시장조성자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며 과징금 부과 등 징벌적 처분보단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정삼영 연세대 교수는 “증선위 통과 후 결론은 알겠지만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공정한 가격에 거래하도록 증권사가 제시하는 것이 증권사의 역할이다”며 “거래가 원활하지 않은 중소형주들 상대로 시장조성자 역할을 하라고 했는데, 사전에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해 보이고 이 기회로 확실한 정리정돈이 우선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