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추경’ 尹경제팀, 물가 상승 압박 딜레마 어쩌나
[뉴스투데이=최병춘 기자] 윤석열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긴급 자금지원을 통해 시장경제 근간을 지키고 경기 부양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반면 시중에 막대한 돈이 풀리면서 물가인상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새 정부 경제팀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3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소상공인과 취약계층 여건을 감안해 지난 30일부터 손실보전금 등 민생안정을 위한 추경 주요 사업을 집행키로 했다. 앞서 국회는 지난 29일 본회의에서 총 62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확정했다. 이번 추경은 당초 정부안인 59조4000억원 보다 약 3조원 증액된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여야가 합의한 추경안은 손실보전금 지급 대상 매출액 기준을 30억원에서 50억원으로, 특별고용·프리랜서·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금을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법인택시와 전세버스 기사에 대한 지원금도 200만원에서 300만원 각각 상향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 확대된 추경, ‘민생안정’ 위해 재정 빠르게 집행
추경안이 확정되자 정부는 다음날 임시 국무회를 열고 예산배정 계획을 의결, 추산 예산배정과 자금배정을 실시해 추경 확정 하루 만에 23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손실보전금 지급을 개시했다.
이외에도 방역보강(7조1000억원), 민생·물가안정(2조2000억원), 예비비 보강(1조원) 등 법정 지방이전지출(23조원)을 제외한 총 39조원 가량이 실질적으로 시중에 풀리게 된다.
기재부는 이날 긴급 재정관리점검회의를 열고 오는 6월 말까지 한 달 이내에 추경 관리대상 사업의 80% 이상을 집행키로 하는 등 정부재정을 빠르게 시중에 풀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번 추경을 통한 재정 지원으로 취약계층 재정 건전성을 확보, 경제성장률을 더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30일 추경 처리를 위한 임시 국무회의에서 ”얼마 전 IMF가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을 3%에서 2.5%로 내렸는데 이번 추경을 통해 0.2% 정도의 성장을 더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대규모 재정 지출로 정부의 또 다른 고민거리인 물가 잡기에는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코로나19에 따른 중국 봉쇄 등 영향으로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며 물가상승은 전세계적인 문제다. 우리나라도 이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5% 돌파가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이 같은 물가인상 기조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은행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5월 소비자가 예상하는 향후 1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3%로 2012년 10월(3.3%) 이후 9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 물가상승 우려, 尹 “물가안정 위해 가용수단 총동원”
이에 한국은행은 두 달 연속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등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통화정책을 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추경으로 올해 하반기까지 재정 지출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면 물가 상승세가 가팔라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통화 당국의 기준 금리 인상 압박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6일 통화정책방향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추경이 물가에 주는 영향은 한 0.1%p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지난 9개월간 금리를 다섯 번 올려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0.5%p 정도라고 생각하면 이는 절대 적은 양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는 이번 추경으로 물가인상 영향이 우려보다 크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추경은 현금을 주면 개인이 소비할 수도 있고 저축도 할 수 있는 이전지출이라 정부가 투자하거나 소비하는 것보다 경제학적으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작다”고 말했다. 또 이번 추경에서 국채를 발행하지 않아 금리 변동 영향도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럼에도 물가 관리에 손을 놓을 수 없는 만큼 추가 정책 보완과 통화 당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물가 관리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30일 추경 집행과 관련해 “영세 자영업자가 숨넘어가는데 그것 먼저 생각해야 한다”며 재정 지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물가상승 우려에 대해 “물가는 민생안정에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새 정부는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 국민 생활물가 안정에 총력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해 서민 체감도가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총 3조1000억원 규모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도 발표했다. 이번 민생안정 대책에는 ▲생활·밥상 물가안정 ▲생계비 부담경감 ▲중산·서민 주거 안정 등 3대 분야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정부는 이 같은 물가안정 대책 시행 후에도 물가 현안에 대해 적기 대응하고 물가구조 개선도 이루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