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대웅제약은 ‘타시그나’ 우판권 확보할까... 특허무효심판 통해 노바티스의 '에버그리닝' 돌파 전략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다국적 제약사들의 '에버그리닝(evergreening)'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최근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제약사들은 전략 의약품의 특허를 첫 등재할 때 범위를 고의적으로 넓게 설정한다. 이후 특허 기간 만료를 앞두고 약의 형태나 구조를 조금씩 바꿔서 재등록 하는 것을 에버그리닝이라고 한다. 일종의 편법적인 특허 연장 전략인 것이다. 이는 국내외 제약사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하는 특허 방어 전략이다.
특히 다국적 제약사들이 우리나라에 전략 의약품을 출시할 때 에버그리닝을 활용하고 있다. 제네릭(복제약)이 국내 제약 산업 전반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전략 의약품 특허가 만료돼 약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네릭이 출시되면 다국적 제약사들 입장에선 타격이 크다. 이 같은 이유로 다국적 제약사들이 에버그리닝을 전략적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에버그리닝 전략으로 손해를 보는 쪽은 국내 소비자들이다. 사실상 특허가 종료된 신약을 여전히 비싼 값으로 사먹어야 한다. 국내 제약사들도 에버그리닝전략에 가로막혀 복제약 생산을 늦춰야 한다.
따라서 국내 제약사들은 에버리그닝을 깨기 위해 해당 의약품의 특허 만료 기간 2~3년을 앞두고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한다. 의약품 하나에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하는 제약사가 많게는 40여 곳 이상이 몰리기도 한다.
이처럼 국내 제약사들이 특허 소송에 벌떼처럼 뛰어드는 것은 승소 시 9개월 앞서 우선 제조 판매권(우판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허무효심판은 전략 의약품의 국내 시장 규모가 400억원 이상 형성돼 있을 때 주로 많이 발생한다. 국내 제네릭 제조사들의 한해 당기순이익이 400억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우판권 확보만 잘해도 하나의 약으로 약 250억원 이상의 안정된 수익을 가져갈 수 있게 되는 셈이다.
■ '보령·대웅’제약, 타그시나 특허 소송 승리하면 연 400억원 시장 선점하게 돼
27일 제약 업계에 따르면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의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타시그나’ 특허를 두고 최근 보령과 대웅제약이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시그나의 특허권을 무효화시키기 위해서는 총 5가지의 방어 전략을 뚫어야 가능하다. 물질특허가 오는 2023년 8월 완료되기 때문에 국내 제약사들은 타시그나의 제네릭을 생산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물질특허는 노바티스의 고유 영역이라 특허 분쟁 시 패소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보령과 대웅제약은 오는 2026과 2027년에 만료되는 결정형특허・염특허, 용도・용법 특허에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한 것이다.
특허청이 이 특허무효심판을 받아들이고 노바티스가 행정소송을 제기하기 않는다면 보령과 대웅제약은 타시그나를 복제해 타사보다 앞서 9개월 먼저 판매할 수 있다.
타시그나의 특허무효심판 및 관련 소송은 노바티스 본사(스위스)에서 진행한다. 현재 보령과 대웅제약 관계자들에게도 타시그나 특허무효심판과 관련해 함구령이 내려진 상태다.
노바티스 코리아에 따르면 타시그나는 환자에게 1차 치료 시 성인 1일 1회 복용 300mg을 기준으로 한다. 2차 치료할 경우 환자는 1회 400mg를 복용해야 된다. 현재 타시그나는 150mg 1만9556원, 200mg 2만2892원에 약값이 책정됐다.
지난해 노바티스 코리아는 타시그나 한 품목으로 408억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당국의 약가 규정에 의하면, 예를 들어 전략 의약품이 1000원에 판매되면 제네릭은 590원 거래되고 1년 후에도 가격 인하가 다시 이루어진다.
만일 보령과 대웅제약이 특허무효심판에서 승소해서 타시그나의 제네릭을 출시하면 각각 115억원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것으로 계산된다. 물론 국내 병원에서 타시그나 대신 보령과 대웅제약의 제네릭을 처방했을 때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 에버그리닝 뚫기 위한 특허소송비용, 환자에게 전가될 가능성도 우려돼
문제는 국내 제약사들이 우판권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하게 특허 분쟁을 펼칠 경우 소송비용에 약값에 반영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약가 산정은 보건당국이 정한 규정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소송비용을 제약사들이 전가할 수 없는 구조로 돼 있다.
의사들은 환자들의 약값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략 의약품 대신 제네릭을 처방하는 빈도수가 높다. 이 같은 의료계의 특성을 이용해 국내 제약사들이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자사의 제네릭 처방을 늘리기 위해 영업 경쟁을 벌인다.
지난해 국내 제약사들의 수익구조를 보면 매출은 신장했지만 판관비 및 영업 유지비 등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당기순이익 낮아졌다. 제네릭으로 한정된 사업 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하기 때문에 판관비와 영업 유지비가 늘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내 제네릭 제약사들이 소송비용 등으로 재무 상황 악화를 고려해 짬짜미를 하고 있다는 의혹도 현재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건강한사회를위한약사회 관계자는 “국내 제약 산업은 다국적 제약사 제품의 위탁 생산과 제네릭으로 흘러왔기 때문에 대처하는 노하우들이 다 있다”면서 “다국적 제약사의 에버그리닝을 뚫기 위해 소송전을 택할 시 비용을 나눠서 부담하는 사례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 미국·러시아, ‘타시그나’ 특허에 우호적 입장…제네릭의 오남용과 부작용 방지에 무게 둬
노바티스의 타시그나를 놓고 외국의 경우는 특허 우선주의 성향이 강하다. 제네릭이 환자에게 가져올 부작용이 있다고 판단해 전략 의약품에게 무게를 실어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식품의약국(FDA)은 타시그나의 특허권과 관계없이 제네릭의 부작용과 오남용을 막기 위해 유통을 허가하지 않는 정책을 쓰고 있다. 만일 제네릭이 기존 타시그나의 치료 효능과 방법이 다를 경우는 유통을 허용하지만 노바티스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된다. 타시그나의 특허가 만료되면 노바티스는 배타적 판매권과 권리를 상실하게 된다.
러시아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전략 의약품의 특허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지난 2021년 타시그나 특허를 두고 러시아 제약사 ‘Nativa LLC’가 벌인 소송 전에서 사법부는 노바티스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러시아 사법부는 타시그나의 제네릭을 Nativa LLC가 자국 내로 병행 수입할 수 있다는 원심 판단을 파기 환송했다. 또 제네릭이 전략 의약품과 경쟁 관계에 놓이기 때문에 특허권을 침해한 소지가 강해 원심 판단이 부적법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거론한 제약 특허 관련 전문 변호사는 “다국적 제약사의 에버그리닝은 법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없다”면서 “어떤 국가든 특허법은 공통된 성향을 보이기 때문에 에버그리닝은 사용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에버그리닝이 법률적인 부분은 아니지만 도덕 관점에서 타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최초 물질 특허를 넓게 인정받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관련 특허 기간을 늘리는 것은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부연했다
다만, 인도의 경우 전략 의약품에 대해서는 배타적 성향을 띄고 있다. 인도 제약사 ‘SUN PHARMACEUTICAL’가 타시그나의 특허가 불확실하다고 판단해 제네릭을 판매했다. 이에 노바티스가 판매 중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으나 인도 사법부는 기각했다. 즉 노바티스의 에버그리닝이 통하지 않은 것이다.
■ 건강한사회를위한약사회 관계자, "한국 특허청 다국적 제약사 특허에 관대" /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조합 이사, "특허 권리 이해되지만 환자 치료라는 공익목적 우선하는 특허 전략 필요해"
하지만 국내 다수 전문가들은 에버그리닝을 선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도움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특허분쟁이 가져다주는 병폐를 막기 위해서도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환자 입장에서는 다국적 제약사의 전략 의약품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같은 효과를 내는 제네릭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에 국가의 개입이 절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허청이 다국적 제약사들에게 특허 출원에 관대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건강한사회를위한약사회 관계자는 “특허는 진보성과 신규성 등이 인정돼야 독점적 권리가 인정되고 보호를 받을 수 있는데 다국적 제약사들은 쉽게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외국에서는 특허 등록이 안되는 게 우리나라는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허청이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게 특허를 등록할 수 있게 하는 관행이 있어 가능한 것”이라면서 “같은 의약품이 외국에서는 특허 만료가 2025년까지라면 우리나라에서는 2029년까지 가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가 국내외서 맹위를 떨쳤을 때 치료제 중 하나인 ‘타미플루’에 대한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e)가 돼야 한다는 논란이 당시 컸었다.
선진국의 경우 타미플루 사재기 현상까지 발생하지만 개발도상국은 재원 부족으로 구입할 엄두도 못 냈다. 개발도상국에 타미플루 지원을 위해서 한시적으로 타미플루의 특허를 중지시켜 제네릭을 생산해 공급자는 게 인도주의 의료 주의자들의 주장이었다.
문제는 타미플루의 강제실시가 단순 특허 분쟁에 국한된 게 아니라 국제 정치·무역 갈등으로 번진다는 점이다. WTO의 중재가 필요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이사는 “제약 산업은 환자를 치료한다는 공공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된다”면서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필수 의약품의 발명이 요구돼 특허를 출원하지만, 제약사들이 기업의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면 다양한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략 의약품이 제네릭으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원 제약사의 특허 권리는 충분히 이해가 되나 공익을 목적으로 강제실시 될 때 특허청 및 사법부가 기업 편향에 치우치는 것에 대해서는 심도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특허청 관계자, “에버그리닝 전략 인지하고 있지만, 특허 위반 판단에 식약처 의견 중요해"
제네릭 위주로 돌아가는 국내 제약 산업의 경우 다국적 제약사들의 에버그리닝에 대해 특허청은 그동안 관대한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특허청 내부에서는 제네릭이 발달한 국내 제약 산업을 인지하고 외국 제약 선진국과 다른 특허 인허가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제약 특허 기간이 20~30년임을 감안하면 지금 분쟁 중인 것들은 과거 정책 기조의 산물인 셈이다.
특허청 약품화학심사과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다국적 제약사들의 에버그리닝 전략을 인지하고 있으며 특허 관련 모든 업무를 진행할 때 명확하고 세부적이게 판단한다”면서 “국내 제네릭 제약 산업이 발전 가능할 수 있는 방향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들이 전략 의약품의 제네릭을 생산하기 전 특허 위반 소지가 있는지 판단을 요청한다”며 “본청(특허청)을 통해 긍정적 답변을 얻으면 식품의약안전처에 품목 허가를 받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결국 다국적 제약사의 전략 의약품 특허 문제는 특허청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