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운동장 바로잡되 ‘혁신’ 놓치지 말길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기울어진 운동장’은 공정한 경쟁이 어려운 상황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어느 한쪽에게만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질 경우 상대방은 운동장 아래편에서 공을 차는 것처럼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뜻이다.
최근 금융권에서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이 점화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빅테크(IT 대기업)의 금융 시장 진출이 가속하고 있는 가운데, 기성 금융사들은 거미줄 규제에 얽매여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화두로 디지털 전환(DT)이 떠오르면서 금융과 비(非)금융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빅 블러(Big blur)’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사들 사이에선 앞으로 전통 금융업만 영위하다간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금융 시장 곳곳에 침투한 빅테크가 몸집을 키우면서 기성 금융사들의 위기감도 한층 고조되고 있다.
정보기술(IT)로 무장한 빅테크는 금융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극강의 편의성 제공과 경쟁력 있는 상품 출시 등으로 성장 열차에 올라탔다.
기성 금융사들은 이런 흐름에 불만을 갖는 모양새다. 이들은 정부(금융당국)가 빅테크에 너무 많은 특혜를 밀어 주는 게 아니냐고 토로한다. 의무는 피하면서 전통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빅테크 입장에선 체급 차이가 분명한 기성 금융사들의 볼멘소리가 부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규제 환경에서는 글로벌 핀테크(금융+IT 결합 서비스) 경쟁력 제고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우려에도 공감한다.
다만 시장 경제 체제에서 ‘동일기능=동일규제’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사회·경제적 합의 없이 특정 분야의 규제만 걷어낼 경우 형평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오직 혁신만 내세워 공정과 질서를 무시하는 건 혼란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시장 참여자가 늘면 고객 혜택 확대로 이어지는 건 자명하지만, 정립되지 않은 시장 원칙은 역효과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 라이선스(허가)에 기초한 금융 산업 특성상 일정 수준의 규제 적용은 불가피하다.
물론 금융권 운동장 바로잡기가 기성 금융사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끝나선 안 된다. 양질의 서비스 제공과 금융사 지속성을 위해선 혁신이 필수적이다. 경쟁자 억누르기에만 집중한 채 혁신 없이 안주하는 건 곤란하다.
기성 금융사와 빅테크 모두 우리나라 금융 산업 경쟁력 제고 전면에 나설 대표들이다. 치열한 경쟁은 성장의 발판이 되기도 하지만, 단순 영역 싸움에 그친다면 혁신은 없다. 금융 생태계가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현재 금융권에서 나오고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 논쟁을 하루빨리 매듭짓길 바란다. 기성 금융사와 빅테크가 머리를 맞대고 서로 협력·공생할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부와 국회의 정책·법한 손질도 병행돼야 한다. 앞으로 넓고 평평한 운동장에서 금융 혁신과 관련한 활발한 실험이 이뤄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