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 앞두고 떠나는 산은 이동걸, '친문 낙인' 금융인 줄퇴진 신호탄 되나
김용진 이어 이동걸, 친문 분류 공공기관장 줄사퇴하나
인수위, 인선 여부 검토...임기 남은 금융 공기관장 긴장
‘퇴임 혹은 버티기?’ 기업은행, 예결원 등 기관장 거취 주목
공기관 임원·생보협회 등 관계기관장 교체 가능성 남아
[뉴스투데이=최병춘 기자] KDB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이 임기를 남겨두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대표적인 친문(親文) 또는 친정부 인사로 지목됐던 이 회장이 퇴진이 새 정부 출범과 맞물리면서 주요 금융 공공기관과 관계기관 단체장들의 거취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2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와 정책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 직무를 수행하고, 정부와 함께 평가받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사임 의사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특별히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정부의 임기를 맞출 필요가 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지난달 26일 금융위원회에 사의를 표명했다. 업계에서 이 회장의 퇴임은 예상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산은 이동걸 회장 퇴임, 예고된 수순
이동걸 회장은 임기는 내년 9월로 다른 국책은행 기관장보다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대선 이후 줄곧 차기 정권 교체 1순위로 꼽혀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부산 이전 공약에 대해 반대입장을 드러내면서 차기 정부와 갈등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배경으로 이 회장이 정치권에서 친문 인사로 분류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이 회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을, 노무현 정부에서는 금융감독위 부위원장을 지냈고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 비상경제대책단에 참여했다. 이 회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산은 회장에 오르며 대표적인 친문 금융 공공기관장으로 꼽혀왔다.
특히 지난 2020년 9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전기 만화책 출판기념회에 참석했을 때 건배사로 “가자!(민주당 집권) 20년!”을 제안, 금융 공공기관장으로서 정치적 발언을 한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며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회장에 앞서 지난 4월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임기를 1년 4개월가량 남긴 시점에서 사표를 제출, 친문 성향 기관장의 줄사퇴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이 회장의 결정도 머지않았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김 전 이사장은 지난 2017년 6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문재인 정부 초 기재부 제2차관을 지낸 관료 출신이다. 지난 2020년 총선에서 경기 이천에 출마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낙선 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취임, 정치권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둘의 연이은 사퇴를 두고 업계에서는 이달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앞으로 진행될 인선 갈등을 의식, 자진해서 물러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현재 임기 만료를 앞둔 공공기관장의 인선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 정부 출범 후 금융권 인사 태풍이 예상된다. 특히 현 정부와 관련된 공공기관장의 추가 이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국책은행 중에서는 얼마 전 수장 교체가 마무리된 한국은행을 제외한 한국수출입은행과 IBK기업은행 기관장 행보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은 올해 10월 임기가 끝난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차관을 역임하는 등 차기 정권과의 마찰요인이 크게 없는 데다 남은 임기가 짧아 임기를 무난히 마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올해 12월까지 임기인 윤종원 기업은행장의 경우 문재인 정권 첫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았던 경력이 변수다. 다만 일각에서는 과거 MB 시절부터 관료 생활을 해왔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정치색이 상대적으로 진하지 않다는 점 등을 들어 윤 은행장 의지에 따라 임기를 마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적 관점에서 신용보증기금 윤대희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경제정책 수석과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한 데 이어 제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 캠프 경제정책 자문단으로 참여해 친문 인사로 꼽힌다. 지난 2018년 취임, 올해 6월까지 임기다. 남은 임기가 새 정부 출범 후 한 달 정도에 불과해 중도 사퇴 가능성은 낮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한 한국예탁결제원 이명호 사장의 경우 7개월가량 임기를 남겨두고 있어 변수가 많다. 특히 노조에서 현 정부 관련 낙하산 인사 우려가 제기됐던 신임 간사 선임 작업도 중단, 이 사장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었다.
SGI서울보증보험과 한국자산관리공사, 기술보증기금, 주택금융공사, 서민금융진흥원 등 정치색이 상대적으로 옅거나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관료 출신 기관장들도 긴장을 놓을 순 없다. 새 정부 의지에 따라 충분히 교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친문(親文) 꼬리표' 금융기관 인사태풍 예고
기관장뿐 아니라 ‘낙하산 인사’ 꼬리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금융 공기관 사외이사 등 주요 임원들도 새 정부 인사 태풍 영향권에 놓여있다.
지난 2월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이 8개 금융 공공기관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기반으로 ‘금융 공공기관 임원 및 이사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예탁결제원은 이 사장뿐 아니라 안상섭 상임감사(18대 대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법조인 350명 지지 선언 법조인) 등도 친정부 성향 인사로 꼽힌다.
기업은행의 경우 은행장 외에도 정재호 감사(20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김정훈 사외이사(제18대 대선 민주금융발전 네트워크 운영위원, 문재인 대통령 후보 지지 운동), IBK서비스 김상진 부사장(전 청와대 행정관) 등 친정부 성향 인사들이 포진돼 있다.
신용보증기금은 한승희 비상임이사(노무현 정부 대통령비서실 산업통상비서관), 서종식 비상임이사(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민주당 광양시장 후보), 박미혜 비상임이사(제18대 대선 문재인 대통령 후보 캠프 경남선대위 공동선대위원장) 등이 재직 중이다.
산은 또한 이번에 사의를 표명한 이동걸 회장 외에도 주태현 감사(대통령 직속 정책청년기획위원회 소득주도성장추진단 정책지원관), 육동한 사외이사(제21대 총선 춘천·철원·화천·양구갑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정동일 사외이사(문재인 정부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 등이 친정부 인사로 꼽히고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천정우 상임이사(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박영미(제21대 총선 부산시 중구․영도구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박상현 비상임이사(민주당 부산시당 오륙도연구소 부소장) 등이 아직 임기가 남아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이용한 비상임이사(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부산시 사하구 구청장 새정치민주연합 예비후보), 서채란 비상임이사(대통령비서실 선임행정관), 손봉상 비상임이사(더불어민주당 부산시 사상구 의원) 등이 현 정부 관련 인사로 꼽힌다. 서민금융진흥원에도 조성두 감사(제19대 총선 서울시 서초을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우정영 비상임이사(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실 4급 보좌관) 등 현 정권과 관계된 인사가 아직 재직 중이다.
정권 교체에 따른 인사 변화는 공공기관 외에도 협회나 단체 등 금융 관련 관계기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7~19대 국회의원을 지낸 3선 의원 출신 생명보험협회 정희수 협회장은 지난 2017년 대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문재인 대통령 캠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임기는 오는 2023년 12월까지로 1년 반 이상이 남았다.
손해보험협회 정지원 회장 또한 문재인 대통령과 동향 출신에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서울대 경제학과 동기(81학번)라는 점을 근거로 친문 인사로 꼽혀왔다.
이들 단체장의 경우 정부 산하 기관은 아니지만 당국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기관인 데다 인선 과정에서 정권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인사 변화 가능성이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아직 임기가 많이 남은 인사들의 경우 새 정부 출범 후 남은 임기를 제대로 마치기 힘들다고 판단, 추가로 자진해서 사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오는 6월 지방선거 출마를 염두에 둔 정치적 선택도 예상된다.
과거와 같이 직접적인 인사 압박을 행사하기 쉽지 않아 보여 친문 또는 친정부로 지목된 인물들의 새 정부 출범 전후 거취에 대한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3일 “아직 내부적으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선거 등 변수가 남아 있지만 결국 본인이 의사를 밝히기 전까진 진퇴를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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