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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위기관리

전후 위기극복의 숨은 공로자 벽안의 한국인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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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2.04.28 10:41 ㅣ 수정 : 2022.04.28 15:45

위트컴 장군의 러브스토리, “좀 나와 주시오. 오늘 한복 입지 말고 양장하고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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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들을 위문하는 위트컴 장군과 그의 아내 한묘숙 여사. [사진=박주홍]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에 남아 ‘한국 전쟁고아의 아버지’라 불린 위트컴 장군은 그가 설립한 ‘한미재단’을 운영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쟁고아들에게 선물을 나눠주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부인 한묘숙 여사를 만났다. 

 

1963년 한국 국민들을 돕는 사회사업에 매진하던 위트컴 장군은 그날도 전쟁고아들을 위문하기 위해 ‘익선원’을 찾아갔다. 그때 한 여사는 충남 천안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보육시설인 ‘익선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한 여사는 명망 가문의 딸로 언니가 여성 소설가 한무숙이고, 동생 역시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아내 소설가 한말숙이다. 아버지의 직장 관계로 부산으로 내려와 4년간 살면서 1945년에 부산여고를 졸업했고 영어 회화가 가능해 위트컴 장군과 쉽게 소통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작고 가냘프지만 강인하고 용기있는 여자로 남편과 이혼한 후 두 아이를 혼자 키우며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모언론사 인터뷰에서 위트컴 장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장군님은 선물을 한아름 들고 여러 고아원을 자주 찾았어요. 전쟁고아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희망을 주는 연설을 하고는 공책과 연필을 선물하는 걸 큰 기쁨으로 여겼죠. 익선원 아이들도 장군님 오시는 날만 기다렸어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자주 고아원 운영에 대해 장군과 의논하고 기부도 받았다. 1964년 어느날 그녀는 ‘익선원’을 찾아온 장군에게 지금까지와 다른 도움을 청했다. 그것은 본인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위한 유학정보 및 도움 요청이었다. 

 

그녀의 색다른 요청에 놀란 위트컴 장군은 그 부탁을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그동안의 ‘익선원’ 방문을 통해 가냘프지만 강인하고 용기있는 한 여사에게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한 여사의 부탁을 들어주면 이별을 하게 될 상황이었다. 위트컴 장군은 생각다 못해 중대한 결심을 하고 며칠 후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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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컴 희망재단 이사장 시절 故 한묘숙 여사와 우측 2011년 7월12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 위트컴 장군 묘역을 참배하는 위트컴 희망재단 관계자(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장군의 미망인 한여사)들 모습. [사진=박주홍]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장군의 애국심과 인간애에 깊은 애정과 존경 느껴...!  

 

위트컴 장군은 긴장한 목소리로 “좀 나와 주시오. 오늘 한복을 입지 말고 양장을 하고 와요”라고 한묘숙 여사에게 정중하게 요청을 했다.

 

그녀는 평소 한복을 입었는데, ‘무슨 일일까?’하고 궁금했지만 얼른 양장을 하고 영문도 모른채 장군을 따라갔다. 미국대사관 앞이었다. 그제야 큰 키의 위트컴 장군은 그녀를 굽어보면서 말했다.

 

“나와 결혼해 주시오...!”

 

그의 갑작스런 청혼에 한묘숙 여사는 어리둥절했다. 사별을 하고 혼자가 된 70세의 위트컴 장군과 당시 37세였던 한 여사는 33년 나이 차이가 있었고 재혼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그들을 방해하지 못했다.

 

대사관을 나왔을 때 그들은 이미 부부가 되어 있었다.

 

한 여사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장군의 애국심과 인간애에 깊은 애정과 존경을 느꼈다.

 

위트컴 장군은 공과 사를 분명히 할 줄 아는 청렴한 신사였다. 그녀는 “장군님은 평소 누군가 군용 종이에 메모라도 하면 ‘정부 자산을 왜 함부로 쓰느냐’고 다그칠 정도로 공사(公私)를 분명히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군님은 미군 장교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상사가 나를 군용차에 태우려 해도 같은 말을 하며 사양했고, 잠들기 전에는 반드시 자신의 손수건과 속옷을 직접 빨아 빨랫줄에 널었어요”라고 회상했다.

 

결혼 후 위트컴 장군은 한 여사의 1남 1녀를 끔직이 사랑했다. 그는 한여사의 딸이 미국 유학을 갔을 때, 매일 아침 일어나 가장 먼저 유학을 보낸 그녀의 딸에게 편지를 쓰면서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의 딸은 곧 그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생전에 한 여사는 “그날 결혼식을 올린 겁니다. 생각하면 ‘우스워요’ 전남편과 이혼한 후 미국 유학을 떠나려 했지만 당시 유학 정보가 없어 고민하던 중 익선원을 찾은 위트컴 장군에게 ‘유학 도움’을 요청한 게 부부의 연이 됐다”며 그리워했다. (다음편 계속)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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