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섣부른 대출 규제 완화보단 ‘질서 있는 정상화’가 우선이다
尹 규제 완화 예고에 은행들 대출 빗장 풀기
실수요자 보호 필요하지만 가계부채 증가 우려
급격한 변화는 부작용 야기, 안전판 마련해야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최근 시중은행들이 잇따라 대출 빗장 풀기에 나서고 있다. 한도 상향과 우대금리 부활 등을 내세우며 차주들에게 돈 좀 빌려 가라고 손짓한다. 작년 시중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대폭 올린 것과 비교하면 낯선 풍경이다.
시중은행들의 이 같은 태세 전환은 대출 여력 확대와 차기 정부 정책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정부의 강력한 규제에 얽매여 여신 확대에 제동이 걸렸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연일 대출 규제 완화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대출 규제에 따른 실수요자 피해 방지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앞으로의 금융 정책은 시장에 맡기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호언한다. 총량 제한과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거의 모든 대출 규제를 뜯어고칠 분위기다.
현 정부의 일률적 대출 규제로 실수요자들이 고통을 받아 온 건 사실이다. 은행들이 내줄 수 있는 대출 총량 자체를 묶어 대출 대란을 야기했다. 높아진 1금융권 대출 문턱에 부딪힌 실수요자들이 2금융권으로 밀려나는 풍선 효과도 나타났다.
국민들의 생계 유지와 주거 안정을 위해서라도 대출 시장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한다. 시중은행들이 더 많은 한도를 더 낮은 금리로 내준다면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대출 이자가 주요 수익원인 시중은행들 입장에서도 반가울 만 하다.
다만 급격한 대출 규제 완화 기조가 가계부채 급증으로 이어지진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잔존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 가계가 진 빚은 1862조1000억원 규모다. 올 상반기 중 190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다. 규제와 증시 부진 등의 영향으로 가계대출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나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이런 이유로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대출 규제를 지금보다 조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앞으로 예고된 기준금리 인상 행진은 대출금리 상승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변동금리로 돈을 빌린 차주들의 이자 부담 증가도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이 금리 상승기에 접어든 현재 금융 정책 변화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특히 정부가 섣불리 대출 규제를 풀어주면 차주들에게 “계속 빚 내도 된다”는 신호로 비춰질 수 있다. 시장 자율성 존중이 차주들의 부실 방치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대출 수요가 다시 폭발할 경우 그간의 가계부채 억제 효과가 반감될 가능성이 크다.
대출 규제는 국민 가계에서 나아가 국가 경제와 직결된 사안이다. 시간에 쫓기기 보다는 정책 효과 점검을 통한 ‘질서 있는 정상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전 정부 정책 손질에만 집중하는 건 곤란하다.
현재 인수위는 향후 대출 규제 운영에 대한 다각도의 검토를 진행 중이다. 민심을 얻기 위한 정책 변화보단 부작용 방지와 안전판 마련에 주안점을 두길 바란다. 지난해 일률적 대출 규제가 실수요자들의 혼란을 부른 것처럼, 섣부른 대출 규제 완화의 역풍이 국민을 덮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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