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주총 시즌 개막···‘반대표 머신’ 국민연금에 촉각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이번 주 정기 주주총회(주총) 개최를 예정하고 있는 주요 금융지주들이 국민연금 입김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올해 경영과 관련된 안건에 대해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할 가능성 때문이다. 특히 최고경영자(CEO)와 사외이사 선임을 앞두고 있는 금융지주들은 국민연금 찬반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오는 24일 신한금융지주에 이어 25일 KB금융지주·하나금융지주·우리금융지주가 정기 주총을 개최한다. 이틀에 걸쳐 4대 금융지주가 모두 주총을 진행하는 ‘슈퍼 위크’다.
지난해 은행과 비(非)은행 부문 호조로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금융지주들이지만, 주총을 앞두고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은 모양새다. 실적에 대한 주주들 불만은 없겠지만 주요 안건 처리에 난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지주들 1·2대 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국민연금이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은 KB금융(9.05%), 신한금융(8.78%), 하나금융(9.19%) 최대 주주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금융 역시 지분율 8.99%로 우리사주조합(9.82%)에 이어 2대 주주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는 금융지주 주총 주요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곧 결정한다. 금융지주들이 경영 관련 사안에 대한 주주 동의를 구할 때, 찬성 혹은 반대표를 던질지 정하겠단 뜻이다.
문제는 올해 금융지주 안건에 대한 국민연금의 ‘반대 러시’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주총을 여는 신한금융의 경우 5명의 사외이사 재선임 안건에 대해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다.
라임 등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에 대해 신한금융 사외이사들이 감독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게 국민연금의 반대표 행사 이유다. 감사위원 선임과 이사보수한도 승인에 대해서도 반대표를 날릴 예정이다.
다른 3개 금융지주 주총 안건에 대해서 의결권 행사 방향 논의를 진행 중이다. KB금융은 이재근 국민은행장을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하고, 최재홍 교수를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부칠 예정이다. 우리금융은 이원덕 우리은행장 내정자를 비상임이사로 신규 선임하고, 4명의 사외이사도 새로 선임할 예정이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가장 긴장하고 있는 건 하나금융이다. 올해 주총에서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을 회장으로 선임할 예정인데, 그는 지난 14일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관련 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국민연금은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함 부회장이 하나금융 차기 회장으로 오르는 데 대한 적절성을 집중적으로 파고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국민연금은 경영진이 재판이나 제재에 연루돼 있을 경우 기계적으로 반대표를 던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재까지 기류로 봤을 때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다고 무조건 안건이 부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상장사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행사한 반대 의결권(549건)에서 실제 부결로 이어진 비율은 1.8%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이 주요 금융지주 1·2대 주주인 건 사실이나, 지분율이 10%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반대표가 안건 부결로 직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국민연금이 가진 상징성과 영향력 등을 고려할 때 여전히 의결권 행사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는 게 금융지주들 입장이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안건 통과 여부를 넘어 1대 주주가 어떤 결정을 내렸냐는 건 회사 이미지로도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그간 이어진 국민연금의 ‘기계적 반대’가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거나 무난히 통과될 안건에도 무조건적인 반대표 행사 사례가 있어 왔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국민연금이 ‘종이호랑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이유다.
이재혁 한국상장사협의회 정책2본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안건에 반대하기에 앞서 미리 기업과의 대화를 통해 의결권 행사의 방향과 근거를 알려주고,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며 “표결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떠나 주요 주주의 요구사항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개선할 방법을 찾아 나가는 것이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의 본래 목적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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