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대응 나서는 시중은행···‘AI 뱅커’ 전진배치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최근 주요 시중은행들이 영업점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 챗봇 수준을 넘어 직접 응대가 가능한 ‘AI 뱅커’가 고객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AI 뱅커로 인력·점포 효율화를 기대할 수 있지만 빅테크(IT 대기업)에 맞서기 위한 무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디지털 전환(DT) 흐름에 발맞춰 금융권의 ‘혁신 경쟁’도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일부 영업점에 키오스크(무인기기) 형태로 음석 인식 기술이 적용된 AI 뱅커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고객과의 대화는 물론 자체 개발한 금융 특화 자연어 처리 엔진으로 질문에 대한 최적의 답을 도출한다.
국민은행 고객은 AI 뱅커를 통해 상품 설명이나 업무별 필요 서류 안내 등 간단한 업무 처리가 가능하다. 창구 대기 시간을 최소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국민은행은 올해부터 AI 뱅커 도입 영업점을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신한은행 역시 영업점에 AI 뱅커를 투입해 원격 화면 상담과 필요 서류 출력 등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기존 번호표 출력 기기를 AI 컨시어지로 대체하고, 기존 청원 경찰들의 업무를 보조하도록 했다.
앞서 신한은행은 올 1월 세계 최대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금융권 최초로 AI 뱅커를 선보여 관심을 끌었다. 신한은행 AI 뱅커는 한국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영어·중국어·일본어 등을 학습했고, 이 언어로 고객과 대화까지 가능하다.
NH농협은행은 가상인간 형태의 신입 AI 뱅커 ‘정이든’과 ‘이로운’을 정규직원으로 채용하고, 근무무서 배치까지 마쳤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영업점에서 첫 선을 보였는데 투자 상품에 대한 설명 보조 역할이었다.
이번에 농협은행은 정이든과 이로운을 각각 DT전략부, 디지털R&D센터로 배치한 뒤 AI 신사업 추진 지원 업무를 맡겼다.
우리은행의 경우 LG AI 연구원과 손잡고 초거대 기반 AI 뱅커 개발을 진행 중이다. 아직 영업점에 투입되진 않았지만 우리은행은 직원 연수 및 사내 방송에서 AI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AI 뱅커 개발에 대해 검토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AI 뱅커 등 디지털 플랫폼 구축에 열을 올리는 것에 대해 시중은행들이 내세우는 첫 번째 이유는 고객 편의 제고다. AI 뱅커가 간단 업무를 해결해주면 고객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업무 분배에 따라 창구 직원 집중도 상승으로 이어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비대면(언택트) 문화 확산도 AI 뱅커 필요성에 힘을 더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 AI 뱅커는 대부분 보조 역할을 맡고 있지만, 업무 영역이 늘어나면 기존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 증대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빅테크와의 경쟁 점화도 시중은행의 디지털화를 부채질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인뱅) 카카오뱅크와 토스뱅크 등 간편 금융으로 무장한 빅테크들이 몸집을 키워나가며 기성 금융사들의 불안감도 커져가고 있다. AI 뱅커 출현은 시중은행이 ‘혁신 경쟁’에 뛰어들었단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AI 뱅커를 통한 조직 슬림화도 시중은행의 노림수 중 하나로 지목된다. 최근 금융 고객 중 MZ(밀레니얼+Z) 세대 비중이 확대되면서 온라인 강화는 금융권 필수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일례로 카카오뱅크는 오프라인 점포 없이 지난해 9월 말 기준 1740만명의 고객을 끌어모았다. 2017년 4월 출범 후 약 3년 만이다.
반면 시중은행의 점포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디지털 전환 흐름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고객 편의 제고는 물론 인력·점포 효율화도 불가피하다. 실제 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희망퇴직 신청자는 약 1800명에 달했다. 또 2016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폐쇄된 시중은행 점포는 1500곳이 넘는다.
올해 시중은행들은 단계적으로 AI 뱅커 도입을 확대하겠단 계획을 세웠다. 다만 AI 뱅커 자체가 아직 조치 단계라 당장 업계 지각변동을 일으키긴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고객 편의 제고는 물론 빅테크와 겨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기술력 향상이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금융 산업에 맞는 AI 기술 고도화로 업무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설명이다.
서정호 한국금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AI 개발은 학습데이터의 양과 품질에 크게 좌우된다”며 “초기에 금융사들이 AI 개발에 몰두할 수 있도록 정책당국이 학습데이터를 풍부하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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