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의 금융가 산책] 금융권 ‘대손충당금’ 규모 줄다리기… 자영업자·소상공인 금융 불안 해소 뒷전
금융당국의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 요구에 배당여력 줄어드는 금융사는 난감
대손충당금 증가의 또 다른 부작용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의 금융불안 심화
배당금 감소보다 절박한 게 팬데믹 최대 피해계층의 금융불안 해결책 마련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엔데믹(지역적 풍토병)으로 전환하자는 논의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자영업자·소상공인의 금융 불안 해결을 두고 금융권의 긴장감이 팽팽하다.
최근 금융당국은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영업자·소상공인 부실채권이 가져오는 금융 충격을 대비하기 위해 금융사들에게 대손충당금을 추가 적립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금융사들은 주주환원과 성과급 지급 등을 높여야 한다며 금융당국의 요구에 난처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채권을 부실채권으로 분류해 선제적 인 대응을 하라는 게 금융당국의 요구이지만, 대손충당금을 추가로 쌓을 경우 이익이 감소해 배당 여력이 줄어들게 된다. 결국 금융당국은 금융사들에게 배당 자제를 권고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금융사들로서는 난감한 일이다.
하지만 이 같은 신경전 속에서 소외되는 문제가 있다. 바로 자영업자·소상공인 금융 불안 문제이다. 금융사의 배당여력이 줄어드는 것보다 훨씬 절박한 문제가 팬데믹 최대 피해계층인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부채 부실화 해결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 팬데믹 직격탄 맞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은 대출여력 상실, 채권 부실화되면 생존 위기 처해
실제로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매출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들은 금융사에 돈을 빌려가며 근근히 사업장을 꾸려나가고 있는 처지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은 기대출과 매출 감소에 따른 신용도 하락으로 시중은행에서 더 이상 대출을 받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난해 SOHO 대출 비중이 급증한 A시중은행의 여신사업 구조를 보면, 부동산 담보 물건 없이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이 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은행의 SOHO 대출 중 81.2%가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이 이루어졌다.
시중은행은 상가 임대료 보증금을 담보로 대출을 하게 되면 부실채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해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또 집을 담보로 할 경우 부실채권 환수 시 주거권 위협 문제가 결부돼 이 역시 대출을 꺼리게 된다.
즉 자영업자·소상공인 중 집·점포가 아닌 여유 부동산을 갖고 있을 경우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들의 기존 채권이 부실화돼서 금융사의 대손충담금이 늘어난다면 더 큰 충격을 받는 쪽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이다. 이들 계층의 금융 불안을 완화시키려면 금융당국은 부실채권 처리와 2금융권 이하의 재정건전성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에게만 대손충당금을 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은 “NPL 수치 개선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NPL의 수치가 낮으면 은행에 부실채권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그러나 은행들이 주장하는 NPL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3개월간 역산한 부실채권을 말한다.
NPL 수치 개선으로 대손충당금 전입액을 더 이상 늘리지 않겠다는 은행들의 답변도 근거가 미약한 핑계에 불과하다. 시중은행들이 코로나19 상황에 자영업자·소상공인과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내놓은 것은 신용부 보증 대출 확대였다. 신용보증재단이 발급한 보증서를 갖고 오면 대출해 주겠다는 얘기다.
채무자가 돈을 못 갚았을 경우 채권 은행은 신용보증재단에 대신 갚아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결국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소상공인이 대출금을 못 갚아도 은행은 손해를 볼 게 아무것도 없다. 과연 이것이 자영업자·소상공인과 고통을 부담하겠다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 김대종 세종대 교수 "정부 손해배상이나 대출상환 유예 기간 연장 필요" / 서지훈 변호사 "부실채권 발생한 자영업자 등 신속한 회생절차 마련해줘야"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전문가들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위해 두 가지의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영국이 자영업자·소상공인 손실보존을 80%까지 올렸듯이 우리나라도 정부가 나서서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면서 "그게 아니라면 대출 상환 유예 기간이라도 연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지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는 “최후의 방법이지만, 사법당국이 부실채권이 발생한 자영업자·소상공인의 개인 파산을 신속히 처리해줘서 회생 절차라도 빨리 밟을 수 있는 여건이라도 만들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5월이면 새 정부가 들어선다. 수장이 교체될 것으로 유력시 되기에 아무 것도 안하는 금융당국의 현재 입장은 이해하려고 노력은 해볼 수 있다.
대출 상환 연기 기간이 종료된 후 3개월 후면 부실채권 발생 증가 폭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동안 금융당국이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자영업자·소상공인의 금융 불안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밀려드는 빚 독촉과 채권 추심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멸감을 감당하는 데는 상당한 맷집이 필요하다. 이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른다.
우리나라 최고의 금융 관련 연구단체 수장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대출 상환 유예 기간을 종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창궐 후 총 6번 연장해줬기 때문에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도덕적 해이(解弛)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당국과 금융사는 대손충당금 규모를 늘리는 것을 두고 줄다리기에 몰두하는 건 아마도 ‘바젤3’ 도입에 따른 금융사들의 재정 안전성을 놓고 입장 차가 발행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 전성인 홍대 교수 "채무자, 정부, 금융사가 분담하는 채무 재배정 프로그램 가동해야"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금융 불안을 해소를 위해 은행의 재정건전성 관리 정책을 쓰는 게 아니라 큰 틀을 갖고 접근해야 하다”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영업을 못한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채무 재배정 프로그램을 가동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이어 “채무 총액 중 30%는 국가가 부담하고 30%는 금융사가 부담하고 남은 부분은 원리금 분할 상환 방식으로 차주가 부담하는 식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면서 “정부가 돈을 풀 것이니 옛날 빚 갚아라 식의 대책은 결론적으로 금융사만 배불리는 꼴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를 대출 권하는 사회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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